-
-
눈먼 자들의 나라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5년 7월
평점 :
👁️ 『눈먼 자들의 나라』 – 정상성의 폭력을 묻는 고전, 지금 우리의 이야기
🔺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
🔻 옮긴이 : 차영지
🔺 출판사 : 내로라

📌 H.G. 웰스의 이름은 이미 익숙합니다. 《타임머신》, 《우주 전쟁》 같은 공상과학 소설의 거장으로 알려진 그는 언제나 “미래를 예언하는 작가”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지요. 『눈먼 자들의 나라』는 그가 남긴 짧은 단이지만, 짧음 속에 담긴 울림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에 차영지 번역가의 매끄러운 문장으로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시각이 없는 공동체와 시각을 가진 한 이방인의 충돌을 통해 “정상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날카롭게 던집니다. 저는 책장을 열기 전부터, ‘혹시 지금 우리의 온라인 세상과 겹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와 긴장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 눈먼 나라의 첫 장면 – 설원의 고립 ❄️
안데스 산맥 깊은 곳, 인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마을.
“Three hundred miles and more from Chimborazo... there lies that mysterious mountain valley, the Country of the Blind.”
첫 장면부터 독자는 차갑고 신비로운 설원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눈보라 속 추락, 사라져 가는 탐험대, 홀로 살아남은 한 남자의 고립. 독자의 감정은 모험의 긴장감에서 곧 불안과 경이로움으로 흔들립니다.

🔖 보는 자의 충돌 – 규범의 낯섦 ⚡
시력을 가진 이방인은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보는 능력’으로 우월함을 증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눈먼 공동체는 오히려 그를 미성숙한 존재, 치유가 필요한 환자로 간주합니다.
“그의 경험은 ‘치유가 필요한 질병’으로 취급된다.”
이 장면은 낯설고도 충격적입니다. 다수의 규범 속에서 ‘다름’은 배척당하고, 새로운 시각은 위험한 것으로 치부됩니다. 독자는 ‘내가 믿는 정상성은 과연 절대적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지요.

🔖 사랑과 체념 – 정상성을 향한 강요 💔
주인공은 공동체의 규율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하기 위해 눈을 없애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사랑과 자유, 체념 사이의 갈림길에서 그는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내일이면, 전 더는 볼 수 없게 되겠군요.”
이 짧지만 절절한 대사는, 정상성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의 감정은 절정에 이르며, 분노와 슬픔이 교차합니다.

🔖 열린 결말 – 자유를 향한 퇴장 🌄
마지막 장면, 주인공은 결국 공동체를 떠나 험준한 산맥을 홀로 오릅니다. 그는 끝내 살아남았는지, 아니면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자유를 향해 나아간 그 결연한 뒷모습입니다.
“붉게 물든 석양, 고독한 실루엣, 그리고 끝내 뒤돌아보지 않는 남자.”
읽는 내내 가슴이 서늘해지며, 동시에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 오늘 우리의 이야기 – 알고리즘 사회와 필터 버블 🌀
『눈먼 자들의 나라』는 1904년에 쓰였지만, 오늘날에도 무섭도록 유효합니다. 다수가 공유하는 감각이 곧 ‘진실’이 되는 세상, 그리고 다른 의견을 지닌 자는 배제되는 사회. 웰스가 묘사한 눈먼 공동체는 오늘날 알고리즘이 만든 필터 버블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SNS 속 ‘추천 피드’, 확증편향의 굴레, 그리고 보지 못하게 되는 진실들. 이 책은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 ‘보는 자는 눈먼 자들 사이에서 왕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사실 ‘다른 눈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지점을 찌르는 책. 가볍게 읽되,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전해주는 책.
당신도 언젠가 자신만의 ‘눈먼 나라’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