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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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시각적 자극에 아주 민감한 모양이다. 작년쯤 돌이 갓 지난 어린 조카가 컴퓨터로 실행되는 만화 동영상에 빠져서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여달라고 조르는 것은 물론이고 한번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 이상 꼼짝 않고 눈을 못 떼며 볼 정도였다. 결국 적절하게 조치를 취해서 컴퓨터 중독을 고치긴 했지만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어 동생 부부는 늘 신경을 쓰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컴퓨터' 라고 하는 문명의 이기에 빠져 있다면, 옛날 아이들은 바보 상자라 불리는 tv에 쉽게 빠져 들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tv가 없었다. 하루 세 끼 밥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 tv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이었다. 동네에 tv가 있는 집이 몇 안 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 7살쯤 되었을라나. 어느 날, 저녁을 먹은 후 어린 내가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하면서 슬그머니 집 밖으로 나가더란다. 그 때만 해도 으레 화장실 하면 몇 개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옥외 공동 화장실뿐이었다.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난 지 한참이 지나도 화장실 간다고 나간 내가 돌아오지 않자 모친은 이내 나를 찾으러 나서셨다. 내 평소 활동 반경을 잘 알고 계시던 모친은 곧바로 평소에 내가 마실 잘 다니던 집으로 가셨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식사 중인 남의 집에 가서 그 집 식구들과 같이 tv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실 수 있었다. 내 또래의 그 집 아들이 자기 집에 tv 보러 오는 나를 달가워 안 해서 얻어맞고 울며 쫓겨 온 지 채 하루도 못 돼 벌어진 일이다. tv에 대한 나의 열정이 얼마만 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결국 모친께서는 얼마 후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tv를 한 대 놓으셨다. 대한전선에서 나온, 다리와 미닫이가 달린 전형적인 구식 tv였다. 처음 tv가 우리 집에 온 '역사적인 그 날' 미닫이를 열었다 닫았다, tv를 켰다 껐다 그리고 몇 개 되지도 않는 채널을 이리 저리 돌려가며 엄청 좋아했던 기억은 난다. 또 이런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자다가 가위에 눌려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깨어났는데, 깨나 보니 내가 tv 다리 밑에서 팔,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지 뭔가. tv만 보면 바보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여러 면에서 모자라는 건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줄기차게 보아 온 tv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tv보다는 책에 빠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은 바로 우리네(30대 이상)의 향수 어린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물신 풍기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연령과 상관없이 예전 어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달고나, 쫀쫀이, 눈깔사탕, 아이스케키 등 달콤한 먹거리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놀이터 대신 골목길에서 했던  다양한 놀이들, 소풍, 수학 여행, 운동회 때 벌어진 웃지 못할 정경 등 저자의 향수 어린 글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무성 영화나 흑백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경험했거나 봐왔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도 재미있었지만 그 외 다른 여러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 1970, 80년대는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금지곡이 된 노래들이 많았는데, 그 면면을 살펴 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유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라는 노래에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면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거냐, 행복의 나라가 북한이냐며 금지시켰다. <거짓말이야>는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배호의 <0시의 이별>은 0시부터 통금인데 그 때 이별하면 어떡하느냐는 이유로, 심수종의 <순자의 가을>은 대통령 부인의 이름을 썼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다.(p.162, 163}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참 많은 것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시절의 낭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고단했던 그 시절의 삶이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마도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몇 번 입지도 않은 옷을 쉽게 버리고 새로 사는 요즘 아이들에게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꿰매서 입던 그 시절 이야기가 낭만적이기는 커녕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때가 있어서 지금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부인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대학 때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됐다. 결혼해서 서울 근교 소도시에 살고 있는 그 친구와는 꽤나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됐었다. 그런데도 통화를 시작하자 마자 봇물 터지듯이 할 말이 생기고 스스럼없이 삶을 나누게 되었다. 사회 생활하면서 만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학창 시절 그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들이 그리워진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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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클리닉 - 비뚤어진 조선사 상식 바로 세우기
김종성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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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뭐에 대한 책일지 감이 딱 왔다. 나 자신에게 잘못된 역사 상식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자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시 보는', '뜻밖의', '바로 읽는', '미처 몰랐던' 조선사 상식이라는 네 항목의 대단원 아래 여러 개의 소단원을 두는 형식으로 편집해 놓았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각 대단원의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전체를 크게 4개의 항목으로 나눈 것에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또 대단원 아래 여러 개의 소단원은 일정한 서술 형식을 가지고 있다. 소제목은 항상 질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질문 형식의 긴 제목은 글의 내용을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해주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본문은 기사문처럼 리드하는 부분이 맨 앞부분에 놓여 있고 이후 설명적이거나 혹은 설득적인 논지의 글이 흐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따로 박스를 마련해서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있거나 혹은 참고할 만한 또 다른 상식 이야기를 수록해 놓았다.

 

350여 페이지에 달하는 가볍지 않은 두께의 책의 형식이 위에 설명한 방식대로 똑같이 편집돼 있다. 각 소단원의 제목을 보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을 거 같은데(실제로 흥미로운 부분도 상당히 많기는 하다.) 읽다 보면 지루해지는 부분도 적지 않다.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도 재미를 반감시키는 부분으로 지적할 수 있다. 원래 한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한 글을 모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신문이나 잡지의 한 코너로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책으로 묶어서 쭉 읽어가기에는 조금 답답한 부분들이 있다. 딱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별 의미없어 보이는 제목으로 묶기보다 연대별로(조선 초, 중, 후기) 묶었다면 조금은 더 나았을 거 같다.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는 제 1장에 다른 하나는 제 4장에 나오니 영 이상한 느낌이 든다.

 

지루한 감이 좀 있기는 해도 이 책과 조우하는 동안 놀라운 사실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인물만 소개해 보자. 그는 바로 청백리의 상징 황희 정승이다. 혹시 황희, 그가 두 차례에 걸쳐 변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첫 번째는 고려 - 조선 교체기에, 두 번째는 양녕 - 충녕 세자 교체기였다. 작가는 이를 줄을 잘못 섰다는 말로 표현했는데 실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황희는 두 번이나 줄을 잘못 선 것이다. 그럼에도 이후 그의 관운이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진정 아이러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여러 요인을 지적했는데, 궤도 수정을 재빨리 한 점, 미시적 판세를 잘 분석한 점, 입이 무거워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사에 전해져 오는 대로 성격이 둥글둥글 원만한 사람이었다는 점 등이다. 성격 좋은 사람치고 비빌 언덕 없는 사람 못 봤다. 황희의 모나지 않은 성격이 그의 관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역사를 전공했거나 따로 공부하고 있거나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 대중들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할 수밖에 없다. 과학도가 아닌 사람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과학에도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역사만큼 우리의 관심이 요구되는 분야도 없다. 바른 역사 세우기가 없다면 미래는 모래 위에 쌓은 집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역사 전체를 통찰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을 키우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고 마치겠다. 혹자들은 사극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 문제를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픽션일 뿐이다. 그냥 즐기면 된다. 다만 실제와 유사를 혼동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드라마를 보면서 꼭 이런 책들도 함께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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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보는 우리 역사 - 단군에서 전태일까지 새롭게 쓴 한국사 서해역사책방 4
역사학연구소 지음 / 서해문집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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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에서 전태일까지 새로 쓴 한국사'라는 부제가 달린 책. 새로 쓴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어떻게 다른가? 어떤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새로 썼을까? 책 겉표지를 보니 이런 의문들이 생긴다.

 

지금껏 역사와 관련해서 읽어본 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끄럽고도 아쉬운 일이다. 학창 시절 국사는 나에게 외워야 할 것이 많은 지겹고 재미없는 과목이었다. 특히 고교때 차별이 심하셨던 국사 선생님을 나는 무척 싫어 했다. 그래서 수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형식적으로만 참여했던 거 같다. 그 이후로도 역사에 관심을 가질 만한 계기는 나에게 없었다. 그러다가 올 초 친구가 선물해 준 '강의'를 읽고 신영복 교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이력을 통해 나는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리영희님의 '대화'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한 큰 원동력이 되었다. 카페에서 여러 역사서들에 대한 서평을 읽으면서 역시나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한 달에 한 권은 역사 관련책을 읽어야지, 결심했는데 실천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며칠 전 구입한지 석 달이나 된 이 책을 나는 손에 잡았다. 다른 책에 밀렸던 이 책이 '책'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한 주일 전에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을 읽은 덕이다. 이윤기님과 한홍구님의 강의에 고무된 결과다. 역시나 책은 책을 낳는다.

 

책의 구성은 크게 원시공동체, 고대사회, 봉건사회, 근현대사회의 4단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헌과 자료가 비교적 풍부한 봉건사회와 근현대사회 부분이 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우리 역사 왜곡을 생각하면 고대사 문헌 부족이 안타깝기만 하다. 책의 지면 중간중간에는 유적이나 유물 사진, 지도나 간단한 연표 혹은 통계표가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고 때로는 삽화를 끼어 넣어 본문 이해를 돕고 있다. 간혹 시나 노래 가사를 중간에 삽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딱딱한 느낌의 책 속에서 잠시 쉬고 의미를 더 깊게 하는 효과를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북한의 역사에 관해 다룬 부분이었다. 비록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맥락을 훑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의 뒤쪽에는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서양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된 연표가 있고 고대부터 시대별로 정리된 왕조 계보와 찾아보기가 있다. 표지와 속지 디자인이 무척 고급스럽다. 내 역사 공부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기 때문에 책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할 정도는 못된다. 다만 서해문집에서 나온 책들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디자인과 이 출판사에 대한 다른 분들의 평가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서평도 책을 간략히 소개하는 수준밖에는 못된다. 그럼에도 부족한 서평을 쓰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이 서평을 읽고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저 개인적인 욕심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책은 한 개인이 쓴 책이 아니다. '역사학 연구소'에서 여러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펴낸 책이다. 머리말에 말하기를 1980년대까지의 격동의 세월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좁은 연구소 공간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쓰고 돌려 읽고 고치기를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민중의 역사'로 세상에 선 보인 것이라 한다. 과거로 돌아가 민중의 피와 땀의 역사를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일이 오늘을 사는 지혜와 내일에 대한 교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91년 초판이 발매된 이후 10여년만인 2004년에 개정을 한 책이기에 1990년대 이후의 역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 점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적 안목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미래의 발전된 역사를 위해서다. 이 책은 역사가 움직여 나가는 원리와 법칙을 바르게 인식함으로써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는 세상을 바로 보고 올바로 살 수 있는 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역사에 대한 무관심만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또 국정 교과서가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교과서 역사는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다원적 진실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역사관과는 거리가 먼, 거짓과 기만에 가득찬 지배계급의 역사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국사 교과서는 어떤지 몰라도 확실히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역사 교과서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과 사뭇 다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지금까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_- 역사는 발전이 가능하다. 그러기에 변화, 발전의 법칙성을 알아야 하고 실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은 물론 역사 발전의 주체가 누구인지 꼭 알아야 한다고 이 책은 역설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탕이 되었을 때 우리는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군에서부터 전태일까지. 민중의 역사는 처절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들꽃이다. 억눌리고 짓밟히면서도 끊임없이 피고 또 피어났던 '민중'이라는 들꽃이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너무도 눈물겹다.(이런 상투적인 표현 밖에 쓸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견과 고정관념,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의 부족 그리고 잘못된 역사 인식이 얼마나 무섭고도 엄청난 결과를 불러 오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 줄을 긋거나 메모를 자주하는 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메모를 하고 줄을 그어댔는데 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이토록 감정적인 메모는 해 본 적도 없고 이렇게나 자주 줄을 그은 적도 처음이다. 줄을 그을 때마다 메모를 할 때마다 뒷골이 뻣뻣해진다. 감정적이 되어 버린다. 감정적인 것은 어떤 일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안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내 사고의 지경地境을 넓히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인식을 변환시키는 일이 최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실천의 문제에 대해 나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책을 읽는다. 깨달음과 작은 실천, 사람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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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수수께끼 - 흥미진진한 15가지 쟁점으로 현대에 되살아난 중국 역사
김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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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지도, 사진, 그림 등 실제적이면서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물론 다양한 보조자료들이 글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참 좋다. 막힘없이 술술술 읽게 만든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신나게 질주하는 것처럼 활자들이 눈에 확확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중국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겨우 우리 역사와 관계된 아주 단편적인 몇 부분 정도만이 내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중국와 관련해 읽어본 책이라고는 기껏해야 삼국지와 사기열전 정도다. 제대로된 통사 하나 읽어보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던 건 재미있을 거 같아서다. 어렵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전히 감으로 고른 것이다. 그런데 기쁘게도 내 예감이 잘 맞아 떨어졌다.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읽기는 쉽고 생각할 거리들은 풍부한 좋은(내 관점에서는) 녀석이었다.

 

우선 이 책은 일반적인 통사와는 차별된 서술을 하고 있다. 중국사를 15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다. 교과서적인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특히 중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와의 비교점을 제시하는 부분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중국 역대 황제들에 대한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정리하면서 우리 역대 왕들과 비교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혹시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많은 왕을 배출한 왕조가 어떤 왕조인지 아는가. 정답은 상왕조로 470년간 30명의 임금을 배출했다. 우리는 신라 왕조로 992년 동안 56명의 왕을 배출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 근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국의 사막 면적만 남북한 총면적의 6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중국 땅이 과연 넓기는 넓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작가가 제시하는 여러 정보들을 섭렵하면서 때로는 놀라기도 했고 때로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고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나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

 

세기적인 보물로 손꼽히는 진시황릉은 오랜 세월동안 한번도 도굴된 적이 없다고 한다. 우연히 발굴된 병마갱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있는 그대로 자연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은 이 어마어마한 보물창고의 발굴에 대해서 아예 생각조차 없다. 하루 늦게 파는 것이 하루 빨리 파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우리 상황과 비교했을 때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났다. 우리는 문화재 보호법이 느슨해 아무나 발굴할 수 있는 반면 중국은 관련 규제가 무척 심하다고 한다. 발굴은 영원한 파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제 6장에서 2,200년 동안 대운하를 파내려간 중국인들의 무서운 집념을 엿볼 수 있었다. 물을 다스리느냐 못다스리느냐가 왕조의 흥패를 좌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필자는 말한다. 운하 사업은 그만큼 중요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농업, 상공업의 발달은 물론 외국과의 교류 확대에도 운하의 역할은 매우 컸다. 게다가 다양한 민족을 융합하고 통합시키는 구심점 역할까지 운하는 역대 왕조들의 명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운하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다. 1134년 고려 인종부터 최근 1965년에 논의된 사례까지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작가는 실효성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에게는 운하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운하사업이 과연 이뤄질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외에도 내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읽었던 쟁점은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기원전 2333년이 위험하다'이다. 56개의 다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은 정국의 안정과 민심을 잡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만 했다. 소위 말하는 '공정'이 그것이다. 중국 고대사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연표를 채우기 위해 역사 왜곡까지 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역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우리 주류 역사계의 수수방관이 자칫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중국에 헌납할 위기를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우리다.'라는 작가의 마지막 외침에 나도 모르게 부르르 몸이 떨려 왔다.

 

작가의 내공이 상상 이상이다. 16년간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고 100여 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며 현지조사를 해서 중국을 우리에게 알리는데 크게 일조한 역량있는 작가이다. 그러기에 책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진다. 이 책을 읽고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욱 솟구치는 느낌이다. 이 양반의 다른 저서를 찾아서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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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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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부지런히 실천하고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 선생이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중 일부분이다. 글쓰기를 나무에 피는 꽃에 비유했다. 무척이나 멋지고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우연히 본 이 책의 소개 문구를 읽고 이 책을 빨리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그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는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전에 글쓰기 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문장강화>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장강화>를 나는 그 당시 어떤 의무감 같은 걸로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문장강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문장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이 예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글쓰기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가 담긴 기록이다. '사유'라는 말에 나는 꽂혔던 거 같다. 조선 지식인은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글을 썼을까, 글쓰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담긴 행위였을까 하는 궁금증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내 손에 쥐어졌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당대 유명했던 문장가들(예를 들면 정약용, 홍석주, 허균, 박지원, 이덕무 등등)의 저술이나 문집 중 글쓰기에 관한 부분들만 옮겨다 실었다. 그리고 그다지 길지 않은 그 글(짧으면 한 쪽, 길어야 서너 쪽을 넘지 않는)들 아래에 꼭 한번 생각해 보고 넘어갈 만한 것들을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해 놓았다. 생각날 때마다 책을 막 뒤적이다가 아무데다 펴서 몇 쪽만 읽어도 전혀 부담없을 책이다.

 

주옥 같다는 식상한 표현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글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산 선생의 글들이 마음에 참 많이 와 닿았다. '좋구나'를 연발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어 내려간 글들 중에는 다산 선생의 글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한결같이 과거 시험이라는 격식에 몰아넣고 마구 짓이겨 놓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시란 뜻을 표현한 것이다. 본래 뜻이 저속하면 일부러 맑고 고상한 말을 늘어놓아도 이치에 닿지 못한다. 또 본래 뜻이 편협하고 누추하면 일부러 넓고 통달한 말을 늘어놓아도 일이 이루어지는 형편이나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중략) 이것은 타고난 자질에 가까워서 배운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문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특히 뜻을 표현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룻밤새 장문의 글을 쓰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는 일화를 읽고는 그것이 얼마만한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지 선뜻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은 있어도 쉽게 쓰는 글은 없는 법이구나 생각했다. 조금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쁘네, 별로네 그런 평가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글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다시 다듬고 고치라는 권면이 있었는데 심지어 어떤 이는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옛날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견문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글만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나는 문득 신영복 선생이 생각났다. 삶과 글이 일치하는 혹은 말과 행위가 한결같은 또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고 좋은 독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겉만 화려한 글과 웅숭깊은 글을 분별할 줄 아는 그런 독자가 되고 싶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울렁거리게 하는 책들에 대해서 아낌없는 찬탄을 해주고 싶다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일렁거리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으니 이 책 역시 좋은 책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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