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 -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기록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 한정주, 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북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애써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레 꽃을 얻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나무의 뿌리를 북돋아주듯 부지런히 실천하고 수양하고, 진액이 오르듯 독서에 힘쓰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듯 널리 보고 들으며 두루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것을 헤아려 표현한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이요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문장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약용 선생이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중 일부분이다. 글쓰기를 나무에 피는 꽃에 비유했다. 무척이나 멋지고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우연히 본 이 책의 소개 문구를 읽고 이 책을 빨리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 지식인들의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그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내가 처음으로 읽는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니다. 전에 글쓰기 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문장강화>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문장강화>를 나는 그 당시 어떤 의무감 같은 걸로 읽었던 거 같다. 그리고 <문장강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문장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이 예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그러나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는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글쓰기에 대한 조선 지식인들의 사유가 담긴 기록이다. '사유'라는 말에 나는 꽂혔던 거 같다. 조선 지식인은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글을 썼을까, 글쓰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담긴 행위였을까 하는 궁금증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내 손에 쥐어졌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당대 유명했던 문장가들(예를 들면 정약용, 홍석주, 허균, 박지원, 이덕무 등등)의 저술이나 문집 중 글쓰기에 관한 부분들만 옮겨다 실었다. 그리고 그다지 길지 않은 그 글(짧으면 한 쪽, 길어야 서너 쪽을 넘지 않는)들 아래에 꼭 한번 생각해 보고 넘어갈 만한 것들을 짧은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해 놓았다. 생각날 때마다 책을 막 뒤적이다가 아무데다 펴서 몇 쪽만 읽어도 전혀 부담없을 책이다.

 

주옥 같다는 식상한 표현이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글들이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다산 선생의 글들이 마음에 참 많이 와 닿았다. '좋구나'를 연발하고 고개를 끄덕여가며 읽어 내려간 글들 중에는 다산 선생의 글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문장은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의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한결같이 과거 시험이라는 격식에 몰아넣고 마구 짓이겨 놓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장이란 학식이 마음속에 쌓여 있다가 바깥으로 드러나 나타나는 것이네."

 

"시란 뜻을 표현한 것이다. 본래 뜻이 저속하면 일부러 맑고 고상한 말을 늘어놓아도 이치에 닿지 못한다. 또 본래 뜻이 편협하고 누추하면 일부러 넓고 통달한 말을 늘어놓아도 일이 이루어지는 형편이나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다.(중략) 이것은 타고난 자질에 가까워서 배운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문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특히 뜻을 표현하는 시를 쓰는 사람들은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룻밤새 장문의 글을 쓰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는 일화를 읽고는 그것이 얼마만한 고통이 수반되는 일일지 선뜻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쉽게 읽히는 글은 있어도 쉽게 쓰는 글은 없는 법이구나 생각했다. 조금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나쁘네, 별로네 그런 평가를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글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다시 다듬고 고치라는 권면이 있었는데 심지어 어떤 이는 몇 년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옛날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글 속에는 그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견문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많이 읽고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지식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글만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나는 문득 신영복 선생이 생각났다. 삶과 글이 일치하는 혹은 말과 행위가 한결같은 또 다른 사람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고 좋은 독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겉만 화려한 글과 웅숭깊은 글을 분별할 줄 아는 그런 독자가 되고 싶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울렁거리게 하는 책들에 대해서 아낌없는 찬탄을 해주고 싶다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일렁거리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으니 이 책 역시 좋은 책임에 틀림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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