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적인 지적 악(惡)은 ‘무지‘ 가 아니라 ‘무시‘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에서 이를 ‘자기 무시‘ 라고 말한다. ‘나는 이해못하겠소.‘ 란 말은 ‘나에겐 그것이 필요 없소.‘ 라고 토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나는 나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자리에 부합하는 것을 알면 충분할 뿐 그 이외의 것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사회에서 배분된 자리들이 우연적이고 자의적이며,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피지배자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네 자신/자리를 알라‘ 가 아니라 ‘네가 다른 모두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알라‘ 를 쉬지 않고 빈자들에게, 나아가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요컨대 지적인 평등이란 ‘아무나가 가진 능력‘ 이다. 바로 그 평등한 능력, 능력의 평등에 기초할 때에만 ‘민주주의’로서의 정치는 가능하다.

-옮긴이의말 중에서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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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 ‘어쩌면’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견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그 의견을 믿는 자들과 함께 우리는 그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쩌면’ 덕분에 인간 사회가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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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악의, 다시 말해 게으름에 의하지 않고서는, 또 이성적 존재가 자신을 바쳐야 할 것이 하는 말을 더는 들으려 하지않는 욕망에 의하지 않고서는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악의 원리는 행위의 목적인 선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있지 않다. 그것은 자기에 대한 불성실에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더 이상 플라톤의 방식으로 너의 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라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 자신에게 돌아가라, 네 안에서 너를 속일 수 없는 것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너의 무능은 걷기를 게을리 하는 것일 뿐이다. 너의 겸허함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머뭇거리는 오만한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악은 헤매는 것,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 자기가 말하는 것에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가 무엇인지를 잊는 것이다. 그러니 너의 길을 가라.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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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배우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의 욕망의 긴장이나 상황의 강제 덕분에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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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에 대한 내 태도는 다음과 같다. 희망 없이 지속하기.

너무 맥없이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게 나와 내 친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훌륭하지도 비참하지도 않고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으며 세계에 맞서거나 세계에 종속되지 않은 상태로(또는 둘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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