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트는 어머니에게 새벽 3시 반에 들판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 시간에 깨워달라고 부탁한다. 누구보다 강하고 줏대있던 여성이었던 어머니 시도는 두말없이 3시 반이면 콜레트를 깨운다. 콜레트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

해 뜨기 전의 그 푸르스름한 미명 속에서 ‘대지와 대기와 나무와 꽃과 벌레와 새와 낯선 동물들과의 교감’. <슬픔의 긍지>는 그 순간의 교감과 희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날개를 지닌 산문. 단어들의 속살. 살아있다는 기쁨’ 콜레트는 평생, 그 생의 기쁨을 위해 싸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그 전에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어머니 시도는 매사에 간섭과 잔소리가 심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콜레트가 어머니 장례에 가지 않은 것은 바로 생과 죽음의 대한 콜레트의 고집(!)이기도 하다. "La mort ne m'intéresse pas, et surtout pas la mienne." (죽음에 관심없어, 특히 내 죽음은 더 아니지)

콜레트의 어머니는 적대적인 마을 사람들에게서 문을 걸어 잠그고는 콜레트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잘 봐." 바로 창 밖의 정원, 그리고 들판과 숲.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한 관찰의 기술은 어머니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콜레트가 죽음으로 향하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한 것이리라.


클로딘 연작은 사실 첫 남편 윌리의 그림자 속에서 콜레트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것일 뿐이다. 아버지와 함께 고전을 탐독했지만 글을 쓰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글을 쓰는 건 남성의 일이었다. 글쓰기가 고역이었던 콜레트, 남편 윌리의 치밀한 상업적 계산과 또 콜레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앗아간 시골 작은 마을 주민들에 대한 복수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콜레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슬픔의 긍지>에서 부터다. 클로딘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 콜레트만의 글쓰기가 시작된다. ‘모든 찌거기가 제거된 상상력과 정취’, 콜레트는 ‘지적인 방식이 아니고 지각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탐험한다’.

‘온전히 자기 세계를 지닌 작가는 사실 드물것이다. 콜레트는 그 드문 작가에 속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만큼 그의 삶 또한 매혹적이었던가. 글쓰기에 관능을 부여하는 작가. 콜레트.


스무 살에 결혼한 남자는 음악평론가이자 소설가. 출판사를 운영했다. 클로딘 연작은 콜레트에게 일종의 작가 수업인 셈이다. 과정이 어떻든 나중에 콜레트는 첫 번째 남편이 없었다면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빈털털이로 혼자가 된다. 콜레트는 스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방편으로 마임배우, 무용수로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비로소 콜레트가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여전히 궁핍했지만 버텨나갈 수 있었던 건 동성의 연인 마틸 드 모니의 경제적 도움이었다.

<슬픔의 긍지>에서 당시의 무용수, 배우로서의 생활을 볼 수 있다. 지저분한 극장 대기실, 가난하고 처량한 상황이지만 자신을 놓지 안으려 발버둥치는 콜레트... 그리고 극장 주변의 여성들과 소녀들의 애뜻한 풍경.

[마지막 불] [춤추는 여인] [흐린 날] 등은 책이 최초로 출간된 1908년 전후로 쓰인 글들로 모두 마틸 드 모니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강렬함과 연약함, 나와 타자 사이의 근본적인 틈, 그 틈을 메꾸려는 갈망과 포기, 쓸쓸함이 복잡하게 얽혀나간다. 낭만적으로 사랑을 그려낸 마지막 작품이 1902년의 <파리의 클로딘>이라 말한다. 콜레트는 한 때 이런 말을 남겼다. "남자는 끔직하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남편은 귀족이자 언론인이었던 남자, 콜레트의 기자 경력의 시작이다. 이 시기 천 여편의 기사와 평론을 썼다. 콜레트는 평생 6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 글을 쓰는 게 고역이었던 사람치고는 엄청난 생산성이었다. 남작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콜레트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보러 전선으로 향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남작은 정치에 뛰어든다. 사랑을 잃고 우는 박새, 콜레트는 또 다시 복수를 감행하듯 남자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 열 여섯 소년. 5년 동안의 관계는 남작과의 이혼으로 끝을 맺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대공황의 시기엔 역시 생계를 위해 파리에 미용샵을 연다. 화장품과 향수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브랜드화 시킨다.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 광고와 홍보 문구를 쓰고, 지방으로 방문 판매를 나서고, 샵에 온 손님들의 얼굴을 만졌다. 이 때의 이야기가 [화장]이라는 짧은 이야기다.

[지금의 우리는 화가들도 열광할 만큼 다양한 색조를 보유하고 있다. 미용술, 화장품 산업은 거의 영화 제작에 버금가는 자본을 움직인다. 여성에게 어려운 시대일수록 여성은 자신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려고 노력한다. 고단한 노동은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가 “연약한 생물”이라고 부르는 여성들에게서 짧은 휴식마저 빼앗아 간다. 오렌지 색조 화장과 커진 눈, 창백한 입술 위로 채색된 붉고 조그마한 입술로 대담하게 자신을 감춘 여자는 일상의 눈속임과 하루 분량의 인내, 그리고 절대 고백하지 않는 자존심 덕분에 자신을 되찾는다.](화장 중에서)



콜레트는 1925년 52세에 인생의 사랑을 만난다. 16세 연하의 남성. 10년 후엔 결혼을 하고 이 남자는 콜레트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유대인인 남자가 게슈타포에 끌려가 수용소로 향할 처지에 놓였을 때 콜레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구출해왔다. 그는 콜레트와의 삶을 자기 삶의 황금기이자 가장 찬란했고 축복받은 시기라고 말한다. 고관절염으로 거의 불구로 지냈던 콜레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아래의 사진으로도 충분히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제 한 해는, 계절에서 계절로 물결치며 리본처럼 풀어지는 길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