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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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색다른 호러이야기였다. 9편의 단편을 모은 <피의 책>은 살육과 인육, 피 칠갑은 기본인데다 잔혹함의 농도도 짙은 책이다. 무서웠다. 잔인해서 무서웠던 게 아니라 단편들 속에 담겨진 공포에 대한 은유가 섬찟했다. 개인적으로 호러영화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즐기는 건 아니지만 보고서 진심으로 무서움을 느낀 적이 없다. 사실 조금 우습기도 하다. 여름에는 오싹함이 최고지. 그러면서 이맘 때쯤 개봉하는 "나는 공포영화예요"라는 이름표를 달고 개봉하는 영화들, 정말 무서울거야. 무섭게 만들려고 우리가 얼마나 진을 뺐는데. 그러면서 변죽은 잔뜩 올려놓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관객들 수준을 젖먹이 아이 수준으로 무시하는 헐거운 내러티브의 영화들. 복수심을 품고 죽은 관심받지 못한 귀신의 한풀이쯤은 이제 살짝 지겨워주시고, 남보다 책상에 조금 오래 앉아있었고 성격까지 적당히 사이코였던 전교1등의 자살로 인한 학교괴담은 이제는 진부하다.

스티븐 킹이 호러소설의 본좌에 오른 건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기도 하지만 그는 대놓고 '공포'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읽고 이렇게 섬세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였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따뜻한 감성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차갑고도 섬찟한 공포스런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거라고. 단지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클라이브 바커는 스티븐 킹보다는 좀더 저돌적이다. 더 화끈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근한 소재들에 공포심과 잔혹함을 가득 심어 놓는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공포와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을 등장시켜 현실을 고통 속으로 몬다. 정체는 매우 모호한데다 인간의 살덩이를 갖고 노는 정도도 매우 잔인한 이들의 존재는 이 소설을 조금 특별하게 만든다.

공포는 특별한게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포의 은유들과 마주한다. 지금이라도 24시간 뉴스채널을 틀어보시라. 집밖도 집안도 안전하지 않다. 테러와 전쟁, 가난과 죽음, 성폭행, 살인, 유괴, 납치, 폭력, 불의의 사고, 겉잡을 수 없는 인간의 '광기'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나 한 많은 귀신이 아니다. 불행의 주인공이 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영악한 우리는 불행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었음에 안도하며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겪은 공포에 대해 얘기한다. <피의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포만큼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또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것이 남의 일이라면 더더욱.

나는 공포영화야. 나는 한 많은 유령이야.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피도 눈물은 당연히 없지. 지금부터 몇명의 주인공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될거야. 긴장 좀 해야할 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공포는 무섭지 않다. 나에게 진짜 공포로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스크린 밖에 있는 나는 그 누구보다 안전하다. 내 손에는 갓나온 따끈따끈한 캐러멜팝콘과 콜라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너무 여유있게 앉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그 느낌이 다르다. 나는 안전하지 않다. 공포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느끼는 불안감의 진짜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불안, 그 자체를 공포의 진짜 소재로 사용한거라면 이건 정말 다른 얘기가 된다. 정말 한여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걸. 선선한 저녁에 읽으니까 그냥 무섭기만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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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5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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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라임' 시리즈로 잘 알려진 제프리 디버가 1995년에 발표한 독립형 스릴러인 <소녀의 무덤>은 12시간동안 벌어진 인질극을 담고 있다.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농아학교 교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인질범은 교도소를 탈옥한 탈주범들이다. FBI의 베테랑 인질협상가  아더 포터와 인질범의 리더격인 루 핸디, 인질로 잡힌 농아학교 교사이면서 그녀 자신도 농아인 멜라니. 이 세명의 캐릭터가 이 책의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주요인물들이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한 인질극이 얼마나 까다로운 사건인지, 거기에 인질범들이 살인 그 자체를 즐기는 살인귀라면 더더욱 그들의 행동을 종잡을 수 없다. 협상가로서 아더 포터가 짜증날 정도로 신중했던 이유는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귀한 목숨 하나가 사라지는 끔찍한 결말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제프리 디버는 아더 포터와 핸디의 협상 대화 속에서 이런 복잡하기만한 아더 포터의 갈등과 고뇌를 설득력있게 그려놨다. 끊임없이 선택의 문제에 놓이게 되는 아더 포터와 이런 포터를 시험하는 인질범 핸디와의 눈치싸움은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종잡을 수 없는 핸디의 의도를 궁금하게 바라보며 도대체 이 인질극은 어떻게 끝이 날지 궁금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멜라니'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좀 특별하다. 그녀는 주변의 상황과 인질범들의 행동만으로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누구보다 내적인 갈등을 많이 겪는 인물로 작가도 특별히 멜라니의 심리묘사 부분에 특히 더 공을 들인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멜라니의 특별한 상황이 특별하게 와닿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한번 스치듯 본 아더 포터를 농아들의 성인겪인 에페로 묘사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 때문이었다. 상상속의 에페에 의지하며 심적인 갈등을 드러내는 부분은 그녀가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멜라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생각 속에서 그녀만의 논리를 펴나가며 그 누구보다 집중력있게 상황을 관찰하게 된다. 그녀의 시선과 그녀의 짐작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소설의 원제인 <A Maiden's Grave>는 사실 멜라니의 이야기다. 그녀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콘서트장에서 들으며 처음 그녀의 장애를 고통스럽게 실감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A Maiden's Grave의 사연을 알아가는 동안 마음에서 약간의 울림이 느껴졌다. 인질극에 대한 스릴러를 그리면서 이런 감성적인 부분을 녹여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동을 했다. 인질극 하면 생각나는 '스톡홀롬 신드롬'이 <소녀의 무덤>에서는 방향을 조금 튼다. 짐작하지 못했던 곳에서 싹트는 이런 우연적인 변형과 그것을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과 설정이 꽤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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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2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빈 2008-08-22 10:16   좋아요 0 | URL
ㅎㅎ 광군님 알라딘 서재도 구독해서 읽고 있지요 ㅋㅋ
뭐, 어디든 맘 편한 곳에서 머물고 계시는게 낫겠지요^^;
대출서적(?)은 천천히 주세요~ㅋㅋ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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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다보니 몇 년전에 꽤 재밌게 봤던 영화 <패밀리맨>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따수운 가족영화라고 기억하는 그 영화를 나는 선택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월스트리트의 잘 나가는 사업가 잭(니콜라스 케이지)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퇴근하는 길에 그의 운명을 바꿔놓을 사건과 마주치게 된다. 우연히 들른 식료품점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물론 잭은 위기를 모면하고 페라리를 타고 자신의 고급아파트로 돌아가 넓다란 침대에서 잠이 들지만 아침에 그는 전혀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뉴욕 교외의 어느 가정집 안방의 소박한 침대에서 눈을 뜬 그는 옆에서 잠든 여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는 자신과 십여년전에 헤어진 옛 여자친구다. 거기에다 더 기절할 일은 그들은 부부이며 자신에게는 딸과 아들까지 있다는 사실이다. 알고보니 그는 십여년전 자신의 성공인생의 계기가 됐던 영국행을 포기하고 여자친구와 결혼했다는 거다. 그가 하지 않았던 '선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감동적인 영화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이브에나 다시 보기로 하고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로 돌아오면, 이 책도 역시나 '선택'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다. 날 때부터 이 모양 이꼴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나'의 파란만장한 대학생활 2년여간의 이야기가 4개의 챕터로 나눠 펼쳐진다. 비슷한 골격에 선택만 차이가 나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는 건 결국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입생 때 그를 유혹했던 수많은 동아리들 중 하나를 선택했건 혹은 아무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건 그는 만날 사람들은 만나게 되고 겪어야만 했던 일은 겪는다는 결론이다. 앞서 얘기한 <패밀리맨>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패밀리맨은 하지 않았던 선택을 긍정하는 이야기인 반면에 이 이야기는 하지 않은 선택도 '별 수 없다.' 어차피 운명이다.라고 얘기하는 책이다.

이 책은 꽤 능청그러운 문체로 쓰여져 있다. 나의 취향에 대해 조금 밝히자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그런 글이다. 나는 이렇게 비뚤어지고 능청스러운 글이 좋다. 웃음이 이어지는 문장과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독특한 사고를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나와 웃음코드가 맞는 책을 읽었다.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겉모습에 비해 조금 심오했지만 오히려 아닌 척 능청스럽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도 충분히 매력있다.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선택'들이 있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결정했을 때 -내가 사는 동네는 뺑뺑이가 아니라 시험을 쳐야했다. 일명 (고입연합고사)- 그리고 평소보다 잘 나왔던 수능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고깝게 여기고 재수를 선택했을 때, 그리고 내가 인생의 멘토라고 여기는 사장님을 만난 계기가 됐던 일, 내가 기억하는 나의 선택들이다. 그 일들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나의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됐고 하지 않아도 될 방황과 아픔을 겪었고 편협하고 나밖에 몰랐던 철부지에서 조금 철이 들 수 있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그 경계도 모르겠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그 모든 것들이 예정된 운명을 위한 길이었다면 조금 힘빠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난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람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나의 선택은 내 주변을 변화시켰을 것이고 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전과는 다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아쉽고 헛된 얘기다. 과거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재주가 없는 한 이렇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 이건 인간의 운명이다. 이건 정해진 거니까. 아니 순리니까. 물론 과거에 대한 아쉬움도 크고 후회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아놨지만 이렇게 견뎌온 시간도 값지고 대단한 것이다. 얼마전에 든 생각인데 인생을 100살까지 산다고 봤을 때 (물론 가정!) 나는 지금 딱 1사분기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나이가 한국나이로 2*이니까. 친구녀석들이랑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올 연말에 정산 한번 해야겠다고. 짧지 않은 그 시간동안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결과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기회가 되면 친구와 여행도 다녀올 생각이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바다 건너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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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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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짐은 실은 그저 네가 떠맡은 거야. 아무도 네게 떠맡긴 일이 없는데 말이야. 내가 떠맡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짐들은 아마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길거리에 버려져 있다가 바람에 구르고 짐승에 뜯겼겠지. 그렇게 한 조각씩 한 조각씩 부서지고 사라졌을 거야. 그래서 지금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 거거든. -중략- 그러는 바람에 그 짐은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서, 네 뒤로 누군가가 떠맡아주기를 뻔뻔하게 기다리고 있구나." -216p-

이현의 사랑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구도 그에게 이진과 결혼을 하라고, 이진을 위해 그의 인생을 걸으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현은 이진과 결혼했어요. 그들의 결혼은 일종의 '계약'이었지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담보로 건, 이진이라는 차가운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을 사랑한, 계약이 '종료'되는 날까지 이진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진의 아름다움에 취해버린 사랑에 눈 먼 남자가 택한 농노의 길~ 아, 그 길은 실은 자신에 대한 200%의 확신과 여러번의 이혼경력마저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고 말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이현'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지요. 사실 이진같이 몽환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매일 안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남자의 '로망'이 아닐까요. 그녀의 서툰 삶의 방식, 익숙하지 않은 상황들에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습조차 졸라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이진'이라는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이 남자에게는 살며시 조여오는 그녀와의 계약 종료일은 현실이 아닌 일인 것 같았겠지요.

하지만 이진에게 정신줄을 놓아버린 이 남자도 아주 가끔 현실로 돌아올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하필 그럴 때 이진과 약속한 '금기'를 깨버리다니요. 비극을 향해서 -슈퍼스타 칼 루이스를 가볍게 제칠 정도의- 미친 속도로 달려가다니요.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죠. 그런 이현의 배신을 기록할 또 다른 이진이 태어나잖아요. 만 세살이 되기 전에 누가 글도 가르쳐주기 전인데도 연필로 기록을 해나갈 아이, 어린이들의 친구 뽀로로보다 지나가는 할매, 할배, 아재, 아지매 영혼들을 친구로 삼을 아이죠. 세월이 흐른 뒤, 이세 공과 이현처럼 또다른 누군가도 이 치명적인 이진의 아름다움을 닮은 아이가 타고 있는 운명의 수레 위에 사뿐히 올라타겠죠. 자신은 조금 다를 거라 오만떨면서 말이죠.

사실 이현이 뭘 그렇게 잘못했나 생각해 봤어요. 이진에게 아낌없이 주기만 했는데 왜 이런 가혹한 운명의 굴레가 그에게 머무는지 말이죠. 분노의 게이지를 다스리지 못해 영혼의 기록이 담긴 이진의 노트를 조금 찢었을 뿐이잖아요. 만3년이라는 기간동안 그렇게 잘해줬는데 하루동안 그에게 일어난 일들은 범인(凡人)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아내를 상처한 홀아비에 졸지에 싱글파파가 되어버린. 거기다가 그는 자신의 미래와 아이의 미래도 짐작할 수 있잖아요. 미래의 사위는 이진과 결혼하기 전의 자신처럼 당당한 혈기만 믿고있을 거고 이진을 닮은 이 아이도 이진처럼 순진무구한 얼굴의 아름다움으로 여러 남정네를 홀리며 적당한 농노 하나가 나는 당신의 사랑의 노예~ 매일 밤 당신에게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주겠어요. 나와 결혼해주세요~그러면 엄마를 닮은 팜므파탈 기질로 그 남정네를 정신없이 녹여버릴테니 말이죠. 하지만 이현은 앞선 이세 공과는 다를 거라 다짐했으니 한번 기대해 보죠.

인간은 너무 쉽게 맹세해요. 한계를 모르고 너무 쉽게 자신의 운명과 인생을 걸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요. 가끔 그 대가는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죠. 없던 것도 있던 것처럼 만드는 기록의 절대적인 힘을 알았어요. 이진, 그녀의 말처럼 기록은 정말 중요한 것이죠. 특히 이진이 남긴 영혼의 기록은 생령의 기록,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이죠. 그런 것을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느냐며 갈기갈기 찢어버린 이현은,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뭉개버린 것이겠군요. 그래서 아마 평생을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포스처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나 봐요. 참. 이번에 태어난 이진2는 영혼의 기록을 쉽게 찢어질 수 있는 '노트'에 하지 말고 노트북같은 걸 이용하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이현은 딸내미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거지요. 마치 신탁을 하는 것처럼. "언젠가 너의 낭군되시는 분께서 짜증을 만땅으로 내시며 너의 기록을 훔쳐봤노라고 고백해올 것이다. 그러면 너도 끝이고 그 남자도 끝이니까 바로바로 백업이 가능한 노트북을 이용해 보렴. 어색해 하는 영혼들에게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그래. 이런 분위기에 차차 적응하시는 게 좋을 거라고. 아빠는 더이상 이현2를 바라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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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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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과 영어 철자는 다르지만 우리말로 발음이 같은 이언 피어스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피어스의 작품 중 가장 재밌게 읽었던 작품은 <핑거포스트 1663>이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힘을 실어 말하는 네명의 목격자들의 서로 다른 증언. 그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이견없이 사실을 말하기란 '일본이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다. 대한민국 반자이~'라고 고백해 올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속죄>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세명의 등장인물, 같은 일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엇갈림과 기다림, 평생에 걸친 속죄와 남은 자의 이야기.

'이해'와 '오해'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잦은 반목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걸까.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넘기기엔 그 여파가 잔혹할 정도로 끔찍했던 일이 일어난다. 브리오니가 본 것은 상상하기 좋아하는 아이가 말그대로 '지 좋을 대로' 해석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어른들은 비이성적이었다. 마치 뭐에라도 씌인 것마냥 사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한다. 젊은 청춘들의 마음이 썩어 병들어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이 일로 장미빛 미래를 꿈꾸었던 성실했던 청년 로비는 인생을 짓밟혔으며 그를 사랑하는 여인 세실리아는 동생과 가족에 대한 원망 속에서 전쟁터로 떠난 로비를 기다린다.

로비에게 보낸 편지 속 "사랑해. 기다릴게. 돌아와...." 가슴 저민 세실리아의 다짐. 닳고 닳아 꼬깃꼬깃해진 편지지를 가슴팍에 품으며 오직 그녀에게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는 남자. 그리고 브리오니는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시선이 성숙해지면서 속죄의 길로 들어선다. 이 소설이 단순히 브리오니의 속죄記에 머물렀다면 조금 따분한 이야기로 비춰졌을 것이다. 아마 읽는 독자에게는 충분히 전달되는 그녀의 마음을 후에 가서는 지루한 변명쯤으로 퇴색해서 받아들일 수도 있었을 거다. 용서를 구하러 찾아온 브리오니가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사죄하는 장면에서 세실리아가 간소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래도 나의 몫이 준비되고 있음을 알게 되며 느끼는 브리오니의 묘한 안도감, <속죄>는 이렇게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낸다. 흐트러진 생각의 단편들을 모아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가는 인간의 복잡한 의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세밀한 묘사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만연체의 문단들은 독자의 호흡은 배려하지 않은 듯한 긴 글이라 조금 힘들게 읽히기도 했었지만.

소설가가 된 브리오니는 허구와 사실을 섞으며 미처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현실이 그녀와 우리의 바람과는 달랐기 때문이었고 그녀가 평생에 걸쳐 속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인간은 나약하다. 쉽게 상처받지만 상처에서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원한과 분노를 품으며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도 인간이다. 폭력이라 일컬어지는 수단들도 다양하다. 언어폭력과 육체적인 폭력은 기본 베이스로 깔고 근거없는 카더라식 루머. 대놓고 따돌리는 것보다 더 치사한 은근한 따돌림. 오해와 몰이해에서 빚어지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상처들. <속죄>는 그 중에서도 이기적인 시선이 낳은 오해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엔딩보다는 해피 엔딩을 더 좋아한다. 사실 현실에서 엔딩은 없지 않은가.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건이 이어지고 가끔 해피엔딩이라 믿었던 과거의 일들을 뒤엎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게 삶이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나는 해피엔딩을 바란다. 그곳은 나에게 일종의 도피처다. 이곳에서 나는 이기적인 시선으로 허구 속 인물들의 삶을 지켜봐도 죄책감은 느끼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오해해서 미안하다 사과할 필요도 없으니까. 책의 말미에 나오는 브리오니의 직접적인 고백에 뒤통수를 맞아 조금 서운했지만 사실 그런 게 소설이다. 나는 그녀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다. 허구임을 알지만 이야기 속에서라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한 희망을 보고 잡다. 행복을 상상하고 싶고 나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살아갔다 믿고 싶다. 절망과 비극은 현실에서 충분히 되풀이 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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