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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위로할 것 - 180 Days in Snow Lands
김동영 지음 / 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서점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여행서 코너이다. 곧 터져 버릴 듯 부푼 풍선 같은 여행에 대한 열망이 현실에 안주하여, 위안을 얻는 곳이 책이였다. 이해되지 않아 몇 번이나 앞, 뒷장을 오가며 뒤적거릴 필요도 없고, 온전치는 않아도 글로나마 그 순간의 눈부심을 나는 공짜로 얻으니까. 그렇게 내게 '여행서'에 대한 농밀한 흠모를 시작하게 한 것은 오소희 작가였다.  아들 중빈군과의 여행을 기록하는 그녀의 글에서, 삶을 바라보는 그녀의 깊은 시선에서 나는 행복의 이유를 얻는다. 사담은 접고. 그렇게 여행서를 접할 땐 이미 하트 뿅뿅,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니 생선 작가의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를 기억하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집었다. 아이슬란드? 생소함으로 마주한 한장 한장들은 쓸쓸함, 으로 가득했다. 

나이 서른 일자리를 잃고 떠난 여행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고, 책을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출간되어 찔끔 찔끔 팔리던 책이 유명 여배우가 프로그램에서 책을 소개하여 미친듯이 책이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게 쏟아진 관심과 오해, 는 그를 다시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p.220 여행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 굴리고 있으면, 데이트 전에 애써 만진 머리를 한순간 헝클어뜨리며 스치는 한 줄기 상쾌한 바람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서 숨길 수 없는 작은 떨림 같은 게 느껴집니다. 세상의 끝에 선 그는 여전히 외롭지만 더 이상 그 외로움을 불평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여행의 길에서 마주한 낯선 이가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그는 말한다 이 길의 끝으로 간다고. 그는 가득한 염려를 담아 말해 주었다 . 이 길의 끝엔 아무것도 없다고. 굳이 가고 싶다면 태워다 주겠다고.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없는 그 길을 그저 걷기로 한다. 어느 순간부터 꽉 짜여진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그 공간 안의 사람의 움직임과 공기의 흐름, 을 온전히 느끼는 여행이 좋다. 그래서 사진으로 담을 것인가, 마음에 새길 것이가를 늘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같다.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그저 그 순간의 끌림으로 따르면 된다.  

P.225

"당신에게 여행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음...... 우리가 여행에서 얻는 건 기념사진이나 기념품이 아니라, 어쩌면 수레바퀴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여생을 버티게 해줄 추억의 보관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꼭, 더 이상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혼자로의 여행을 떠나야겠다. 혼자, 목적지를 결정하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오롯이 외로움 안에 나를 덩그러니 놓아 두어야겠다. 그래서 더 이상은 외로움이 두렵지 않도록. 그래서 온전히 나로 채워진 여행이 필요할 것 같다. p.171 지금에도 또 먼 훗날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지나간 시간들일 거야. 넌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이 많을수록 사람은 잘 살게 돼 있다는 걸 나는 믿어. 나이가 들면서는 현실을 지탱하는 저울보다 기억을 지탱하는 저울이 말을 더 잘 듣게 돼 있거든. 그렇게 채워진 나라야 당신을 더 깊이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p.61

" 젊음이 뭔지 아나? 젊음은 불안이야. 막 병에서 따라낸 붉고 찬란한 와인처럼,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넘쳐 흘러버릴지 모르는 와인 잔에 가득 찬 와인처럼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또 한편으론 불안할 거야.
하지만 젊은은 용기라네. 그리고 낭비이지.
비행기가 멀리 가기 위해서는 많은 기름을 소비해야 하네.
바로 그것처럼 멀리 보기 위해서는 가진 걸 끊임없이 소비해야 하고 대가가 필요한 거지.
자네 같은 젊은이들한테 필요한 건 불안이라는 연료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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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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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 침대를 창가 밑으로 옮겼습니다. 요 며칠은 비까지 내려주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책읽기가 더욱 달콤합니다. 가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는 책이 있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그러했습니다. 여기저기 인용된 글은 수없이 보았으나 이렇게 제대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접한 것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마음 그대로 글은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p.23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꽃이 지는 통증을 지나고 나야 열매를 맺듯이 소중함을 간과하기 쉬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따뜻한 음성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나를 몇번이나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그자리를 맴돌며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3년간의 암투병의 고통과 잇따른 지인들과 이별으로의 슬픔을 통하여 삶의 한가운데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 기쁨과 감사를 일상의 언어로 담담히 고백합니다. p.129 "자신의 삶이 어떻게 꽃피었는지, 또 꽃필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식물의 생명이 물을 요구하듯이 우리에게는 눈물이 요구된다. 흘린 눈물의 양이 사람을 승화시킨다." 그 마음의 맑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니, 나도 그 마음을 닮아야겠다는 무리한 욕심도 내어봅니다. 그리고 나는 유독 시가 어려워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해인 수녀님을 통해 시를 만나니 한결 가볍고 즐거움이 동합니다.

p. 60 
커피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빠트렸군요.
 - 윤보영. 커피

수녀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윤동주님의 서시도 다시 읽어봅니다. 어린 기억 교과서 안의 지문으로 읽었던 밋밋했던 글자에 깊은 호흡이 담아집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얻어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하늘에서 미리 점을 찍어두지 않을까, 하고 쿡 웃어봅니다. p. 221 1998년 9월 17일 목 행여라도 편견을 갖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도록, 무심결에라도 무시하는 말이나 몸짓으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누구라도 단죄하거나 함부로 비난하는 독선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저입니다. 저는 약해서 두려우니까요. 자주 실수하니까요. 콧날이 시큰하고, 글씨가 흐릿해집니다. 타고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수녀님의 모습에서 발견한 약함은 이만큼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묵상이, 수행과 노력이 필요했을지 하고 짐작하며 감히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장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운 추모일기인데, 나도 그만 마음이 멍울멍울 하여 잠시 쉬어 갑니다. 피천득 선생님, 김수환 추기경님, 김점선 화가님, 장영희 선생님, 김형모 선생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 박완서 선생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별로 새겨진 이름에 그리움이 깊어 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그리운 사람이었을까요? p.60 가까운 이들과 화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겐 '백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하게 하기 어찌 이리 힘드오."라고 표현한 김초혜 시인의 <사랑초서>의 일절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한다. 늘 '시간이 너무 빨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인듯 살아갑니다. 그리 긴 세월도 아니었는데 등을 돌리고 걸어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부끄러움에 한숨이 깊어집니다. p.74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성격도 안 맞고, 하는 일마다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서 그것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승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아직 승리할 그릇이 못되니까 조금 더 기다려야 겠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요.

시간이 마음처럼 나지 않아서 토막토막 읽는 시간 내내 다음 장을 읽고 싶어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그래도 읽는 시간 동안 마음이 따뜻했더랬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시는 이해인 수녀님 닮은 고운 글씨가 너무 많아 읽는 내내 메모를 하며 감탄도 하고 찔림도 얻습니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 부디 건강하세요. 늘 수녀님의 삶이 좋아하시는 봄날 같기를 멀리서 기도합니다. 
 

+) 밑줄the 

p.24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못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p.113
행복의 얼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p.128
누가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해서 들뜬 마음을 갖지 않고 담담해지기……. 누가 나에게 근거 없는 험담이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고 담담해지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p.131
"성공하려면 반복된 생활을 계속하면 된다. 돈에 대한 욕심, 인기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다 버리고 '생활의 달인'처럼 살아가면 그게 성공인 거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내가 발전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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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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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동안, 1억 6천만명이 넘는 불가촉천민(달리트)들은 '아웃카스트'로서 식수도 함께 쓸 수도 없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 내겐 그저 교과서 속에 짧막하게 실린 먼 나라의 이야기였을 뿐인데, 새해의 첫 책을 즐겁게 시작하고 싶었던 마음에 묵직한 돌은 얹은 듯한 느낌으로 책장을 겨우 겨우 힘들여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속도도 나지 않아, 수도 없이 책장을 덮으며 '그만 둘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게 했던 이 책을 나는, 물도 없이 팍팍한 빵을 삼키듯 꾸역 꾸역 삼켜 냈다.    


P.246
나는 힌두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치욕과 모욕 속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얼마든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여러분 앞에서 힌두교도로 죽지 않을 것을 엄숙히 다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부족함을 느끼며 대상도 없는 원망을 부었던가. 또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거품 같은 열망으로 나의 청춘을 소모하였던가. 부끄러움조차 보이지 못할 만큼, 굳건한 다무는 내게 , 절망 뿐인 그 상황에서도 무지개를 꿈꾸는 그들은 내게 무거웠던 책장의 그 무게 만큼, 가볍지 않은 깊은 위로를 건넨다. 오히려 내게, 그들이 먼저 따뜻한 손을 내민다. P.293 "아빠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한 가지뿐이야. 뭘 하든 최고가 되라는 것. 도둑이 되고 싶어? 좋아. 하지만 솜씨가 대단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해. 온 세상 사람들이 너를 보고 '야, 진짜 훌륭한 도둑이다! 어쩜 이렇게 솜씨가 대단할까?'라고 감탄하게 만들란 말이야."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아버지도 이가 다 빠진 입을 벌리고 씩 웃었다. "그것보다 못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돼. 알아들었니?" 이 말을 할 때도 아버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그들은 그렇게 멈추지 않고 꿈꾸고 있었다.

Untouchables 1. (사람을) 건드릴 수 없는   2. (남이) 손댈 수 없는   3. (과거 인도 계급제도에서) 불가촉천민의 . 식수조차 마음껏 마실 수 없고, 개·돼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오직 구걸 할 권리 밖에 갖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만큼 절망적이고, 그만큼 간절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당연함으로 누리고 살았던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목표이며, 희망이였다는 것을.  



p.45 "소누, 무지개가 뜨려면 비와 햇살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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