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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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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일요일들│은희경│달│2011.07.20

 

제일 처음은 <새의 선물>이였어요. 오래전이라 내용은 희미하지만, 그때의 느낌은 남았어요. 그녀가 다루는 언어는 시리도록 예뻐서 역시 소설가,는 다르구나 했거든요. (생각이 난 김에 그녀의 책을 다시 들춰봐야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주인공 이름이 같았죠. 진희, 새의 선물에서 어른들의 마음까지 꿰뚫어보면 당돌한 진희가 성장한 모습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진희와 같지 않을까 했어요. (그냥 제 추측이예요) 사랑을 믿지 못하던 그러나 사랑에 살던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으며 왜 그랬을까, 적잖이 실망을 해서 그녀의 책에 더이상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알라딘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로 받게 되었네요. 다행인지 주변의 평도 좋았고, 한동안 책장이 너무 무거웠으니 조금 가벼운 마음이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저자소개부터 참 좋은거예요. 정장이 안 어울린다는 핑계로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다. 하이힐을 신고도 웬만한 등산에 지장이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자주 낯선 곳에 가고, 도착하면 맨 먼저 커피집과 산책로를 알아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마시며 여행계획 짤 때가 가장 즐겁다. 은작가님 쉰을 넘긴 나이거든요.(나이는 숫자라지만 꼭, 우리 또래의 취향이랄까) 조금 가까워질 수 있겠구나, 첫 느낌이 좋았어요. 그리고 어딘가 에쿠니가오리와 닮았구나, 하고 스치는 생각. 요즘은 에쿠니가오리 책을 읽지 않지만, 이십대초반에는 그녀의 책들은 컬렉션하듯 섭렵했죠. 얇았고, 얇은만큼 적당히 가벼웠고, 가벼웠지만 날라가지 않을 적당한 무게감이 좋았는데 요즘은 점점 가벼움만 더해지니까 시들해졌어요. 나라면 불같이 화를 냈을 상황인데, 남의 일인듯 웃어요. 뭐랄까. 나의 자아와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느낌? 그리고 한가지 더! 젊고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는거? (낄낄낄)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며 함께 썼다는데, 내용의 중간중간 연재의 통증을 호소하죠. 새발의 피에도 못미치겠지만 리뷰가 안써질때, 그러한 통증이 조금 강도를 높인거겠지요? (뭐, 은작가님은 직업이 소설가니까 어쩌면 나보다 훨씬 쉽게 쓸지도 모르죠) 소설은 항상 정확하고 빈틈없이 쓰려고 노력하기에 조금 느슨해진 글들. 그녀가 다루는 언어는 여전히 예뻐요. 아마도 작가들은 그들만의 언어사전이 따로 있는걸까요?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이구나 새삼 느낍니다. 그저 의미없는 반복으로 스쳐지났을 일상에 언어를 더하는 일은, 그만큼 모든 순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일일테니까요. 우리가 소유한 모든 감각들이 항상 깨어있는 상태, 생각만해도 피곤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정말 쉽게 얻죠. 우리는 그냥 스쳤지만, 그녀의 언어로 만나는 감정의 소요(逍遙).

p.115 

위약과 편견

격국 난 균형을 찾은 것 같아. 나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지만, 그 닥쳐온 일을 다루는 건 나 자신이지. 그리고 그 일이 내 삶에 행운인지 불운인지는, 닥쳐오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어덯게 다루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거 아닐까.

위약은 수줍음 탓이었고 냉소는…그러니까 하나의 태도죠 뭐. - 이런 대답 이제 지겹다.

조금 가벼운 마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미안해질만큼 그녀의 이야기엔 삶의 질곡(桎梏)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해주니까, 우리도 웃으면서 읽을 수 있거든요. 나이를 먹는 다는 일이 그런걸까요. 삶에 유연해지는 일. 적절히 용해된 그녀의 소탈함과 진진함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나와 닮은 점들을 발견하며 반가워합니다. 반갑잖아요. 호감이 있는 상대에게서 나와 닮은 점을 발견하는 일. p.131 더욱 나쁜 것은 내가 좀처럼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과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사실. '고친다'와 '꾸준히 관리한다'와는 영 거리가 먼 것이죠. 게으름이 닮았군요. 나는 그럴때가 많아요,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을 입 밖으로 내는 것이 귀찮은 순간, 대화의 연속성의 부담스러운거죠. (이쯤이면 게으름도 병)

그리고, 여행을 계획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소설가의 삶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서울의 작업실과 원주, 그리고 잠시 머물다 온 독일과 시애틀에서의 그녀는 부럽네요. 부러워. p.161 여행에는 그게 있어요. 돌아오면 역시 또 그 사람으로 살겠지만 나, 떠나기 전과 100퍼센트 똑같은 사람은 아니예요. 우리, 어제같은 오늘을 살고 있지만, 내일도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우리 100% 똑같은 사람은 아닌거예요. 사실 요즘 일주일단위로 감흥없이 지난가는 시간들이 살벌했거든요. 주변에서 '곧, 서른'을 자꾸 주입시키는 것도 못마땅했는데,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누군가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인정받는 것, 그래야만 괜찮아지는 것, 아직 내가 어른이 덜 된 탓이겠지요.

p.303 트윗. 어떤 때는 내 편을 들어달라고 털어놓는 거고, 어떤 때는 내 생각이 맞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밤샘하면서 뱉는 건, 그냥 말 거는 거지요. 누구라도 대답해주면 어두운 계단을 가는데 센서등이 켜진 것처럼 잠깐은 주변이 환해지거든요. 한동안 미투데이에 빠져 살았는데 그때 그랬어요.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공감의 위로, 어쩌면 우리 세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로 얽혀 있지만 사실은 철저히 고립되어 소통의 부재안에 이렇게 몸부림치나 봅니다. 무어라 콕, 찝기 어려울만큼의 아쉬움을 남기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은작가님 반가웠어요.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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