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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반양장) -전16권
박경리 지음 / 솔출판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박경리씨의 <토지>와 조정래씨의 <아리랑>은 정말 똑같은 시기를 다루면서도 참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갑오 동학혁명 이후에서 해방까지 우리나라 장편소설 아니 대하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두 저자에게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저자의 환경에 따라 책 내용을 평가한다면, 참 편견이 많이 작용하기는 하지만 오늘 그렇게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 면에서 좋은 비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라는 것을 들 수 가 있지요. 조정래 씨 말대로 전라도가 '항상 억압을 많이 받아오고 그래서 욕도 거친 곳'이 맞다면 소설 내용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토지>에서 주인공들이 일제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고민고민하다가 겨우 꺼내 놓는 것이 '친일파 돈을 훔쳐 독립군에게 주기'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서술하고 참 길상이나 기타 인물들이 '독립운동 열심히 했다'는 인상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나 경상도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방법이 전라도에서는 가장 '개량적이고 편의적인(?)'방법이 됩니다. <아리랑>에서는 돈 훔치는 것은 예사고 일본인들을 상시로 죽이고 습격하는 것이 거의 소설의 다반사입니다. 이것을 양 지방의 기질차이로 돌린다면 글쎄 저는 너무 편견이 지나친 것인가요?

남자와 여자의 차이 - 그것도 조정래씨는 정말 절에서 태어난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올라온' 남자이고 , 제 생각이지만 박경리씨는 어느 정도 부유한 집에서 교육을 잘 받은 (그시절에 진주여고를 졸업했다는 것은 상당히 교육수준이 높은 것 아닌가요)집에서 태어난 것이라 생각합니다. 생각해봅시다. <아리랑>에서는 여자들이 하나같이 '수준이 낮거나 거만한'여자입니다. 조금 예쁘다 싶으면 강간을 당해 천박한 위치에 서게 되거나(수국이) 교육을 잘받은 여성은 이른바 신여성이라 하여 (아 이름이 생각 안나네, 왜 일본유학 가서도 사치스럽고 거만한 태도로 지내는) 여자들만 나와요. <토지>의 서희같이 완벽한 여자(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착하고 그러나 사회계급도 높고 사람들의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는 한 사람도 안보입니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을 보아도 <토지>의 서희와 같은 당차고 완벽한 여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지숙이 조금 가까울까? 한국전쟁시 피난을 가면서도 김범수와의 성관계에 집착하는 여자(역시 이름을 까먹었어요, 죄송...) 무당 소화, 강간당한 외서댁 등 모두다 한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토지>에 대해서 상당히 제가 부정적인 것 같은데 일단은 맞습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시대 특히 1890 - 1910년 대의 농촌 특히 경상도 농촌에 관해 묘사한 것은 정말 그 때의 농토에 제가 땡볕에서 일하고 있지 않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냉철한 묘사로 너무 감동적입니다. <토지> 16권중에서 사실 제일 핵심은 1부의 경상도 하동군 평사리 그 곳에서의 삶이 정말 이 소설을 한국문학 대하소설의 결정체로 올려놓지 않았을까요? (물론 간도와 만주에서의 김두수와 길상 등이 펼치는 숨막히는 첩보전 및 대결도 참 재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면, 전라북도 전주를 아시죠? <토지>에서는 전주가 '기생 봉순이가 창을 배우러 가는 문화적이고 양반적인 도시'로 묘사됩니다. 아주 적은 분량으로. <아리랑>에서는 전주는 (전주 근방에 완주나 그 근방을 포함해서)소작인과 지주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전주의 학생들이 수업거부등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지역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차이들은 저의 그냥 쓸데없는 편견때문에 생기는 것일까요 아니면 진정 두 작가의 가치관에 따른 차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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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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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정합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특유의 시원한 말투와 객관적이고 냉철한 사료를 바탕으로 풀어내는 역사 사실에 대한 소화력 등 제가 알기로는 <로마인이야기>를 고등학교 때 읽고 사학과에 지망하려는 수험생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일본인이 쓴 로마역사는 어디까지 '객관적'일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을 지배하려고 하면서'너희 갈리아인들은 어차피 게르만에게 지배를 받을 것이니 차라리 우리가 너희를 지켜주고 (게다가 로마화:문명화의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그러니 우리에게 지배받지 않겠느냐 하는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지금 세계는 서구 열강들에게 강탈당하고 있다. 인도를 보아라. 영국인들에게 무슨 수모냐? 차라리 같은 동양인인 우리에게 지배를 받아 문명의 혜택도 받고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여 서구에 대항해야하지 않겠느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며칠 전에 일본 우익단체가 교과서를 자기들 중심으로 왜곡한 것이 신문에 나왔습니다. 잘은 기억을 못하지만, 위의 내용과 비슷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다른 나라로 팽창해나가고, 군사력에 신경을 많이 쓰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얼핏 자연스럽고 멋있어 보이는 이런 로마역사를 조금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고대의 먼 유럽에서 벌어진 예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몇십년전 일본이 아시아로 침공할 때 그리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하려고 할 때 많이 쓰여진 문구라고 생각합니다.(책에서도 나오지만, 영국이(같은 제국주의 국가로서) 로마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요?)

저는 로마인이야기의 풍부한 사료와 높은 역사적 상상력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시오노나나미 여사의 글을 읽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저자의 글 속에 숨어있는 제국주의적 해석에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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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세상의 중심에 두었다
안드레아 헨스겐 지음, 김미영 외 옮김 / 이끌리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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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출판사도 저자도 모두 낯설고 변변한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처음 50여쪽을 읽고 난 다음에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습니다. 줄거리를 나열하는 것은 지루할 테니 제 느낌을 나열해보면 먼저 페미니즘과 르네상스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고 그것을 아주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고등학생이라는 주인공들의 고민도 생생하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연극 발표를 통해 이루어지는 르네상스의 역사, 철학은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보다 훨씬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아! 제가 감히 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처음 보시는 분들이나 어려운 것을 싫어하신다면 이 책이 별로 의미가 없을 거에요(어려울 뿐이겠죠) 하지만 서양사나 혹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적극 정말 적극 권해드리고 싶어요 읽고 난 다음에는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서술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답니다.(잘 썼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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