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 -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
한국정신대문제책협의회정신대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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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일본군 중에서 성노예 분들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준 경우가 있었다. 모든 일본군이 이들을 고문하거나 잔혹하게 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몇몇 소수의 일본군들이 이들을 잘 보살펴주고 전쟁 후 아내로 삼았다거나 물질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군인이 성노예 분들에게 사랑을 약속한 후 돈을 가로채어 도주한다든지 하는 사례를 볼 때 이들이 사랑한 것은 단지 여성의 '육체'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일본군인들에 의한 구타나 잔혹 행위가 많았지만, 그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다. 증언자 중에는 구타나 잔혹 행위를 겪지 않은 분도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히 고문을 받지 않았더라도 이미 일본군 성노예로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는 할머니의 증언은 생각해 볼 만하다.대개의 경우 성노예로 끌려 온 여성들은 집이 가난하였고, 많이 교육받지 못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 이미 몸은 '망가져' 있었고 가족들은 죽거나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잦은 투병 생활과 사회적 냉대, 이들의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몸이 '더
렵혀졌다'는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관념) 때문에 사회 적응은 힘들었다. 심지어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있었다.

농촌에서 강제로 '사냥 당하듯이' 끌려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시에서 약간이나마 교육을 받았던 여성도 '돈을 벌게 해준다는' 말에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근로 정신대의 이름으로 먼저 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 전쟁이 격화되면서 성노예로 전환한 여성도 있었다. 식민지적 상황에서 최하층의 여성들이 많이 끌려갔다는 점과 비록 최하층의 여성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취직 자리나 미래가 보장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민족, 계급 그리고 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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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사
서진영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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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 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결하고 힘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왜 공산당이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약간 공산당을 옹호하는 듯한 입장인 것 같기는 합니다. 중국 (대륙)입장 뿐 아니라 대만의 입장도 같이 살펴 볼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사실 중국 국민당이 잘한 점은, 공산당의 그것에 비해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개석의 독재를 보면, 우리나라의 한 정치가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군대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사람.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고, 무엇보다 글이 비교적 쉽고 명확하게 읽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별로 많이 아는 것이 없는 사람도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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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광인일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5
루쉰 지음, 정석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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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큐는 중국 일반 평민, 민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우둔하면서도 허례허식에 가득 차 있다. 마을에서 조롱을 받으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큐는 성조차 불분명하다. 그가 짜오타이예의 아들이 급제했을 때, 짜오(趙)가를 자처하다가 짜오타이예에게 따귀를 맞는 모습은 그의 출신 성분이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게다가 이른바 명문가(名門家)의 개념이 그 당시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아큐의 '큐'자도 막연히 Q자로 시작되는 이름이라는 것을 암시할 뿐 어떤 이름을 지
칭하는 것은 아니다.

아큐는 집도, 직업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큐는 이러한 자신의 조건에 걸맞지 않게 자존심만은 매우 강했다. 그는 머리에 있는 탈모 흉터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건드리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실수든 간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곤 했다. 가진 조건에 걸맞지 않게 드높은 자존심-근대를 맞이한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건드리면 덤벼드는 모습은, 실제로 싸워야 할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는 중국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아큐에게 놀림을 당하였던 왕후가 오히려 아큐를 주먹다짐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절대우위에 있었다고 생각하던 청나라가 일본에게 패배하는 청일전쟁을 연상하게 한다. 일본으로 건너갔다 돌아온 이른바 '가짜 양귀신'에 대해서 아큐는 적대적이다. 그가 변발을 자르고 가짜 변발을 한 모습을 보고, 그의 마누라가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안된다라고 생각한다.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양적인 가치와 여성의 인권에 대하여 여전히 '전통적'인 중국 민중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왕후나 가짜 양귀신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 화를 약한 여성(비구니)에게 푸는 모습은 야큐의 지극히 모순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일본이나 서양세력에 당한 모욕에 분개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해서는 권위적이었고 각종 제도와 사상로 이들을 통제했다. 아큐가 혁명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사실 그는 혁명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처음에는 혁명군을 '반란군'과 동일시했으며 이들에 대하여 '이를 갈고' 있었다. 이전에 자기를 홀대하였던 짜오타이예가 아큐를 '라오Q'라고 높여서 불러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였다.

실현되지는 못하지만, 아큐는 그의 사적감정을 나타내며 혁명을 통해 자기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들을 처단하려고 한다. 또한 그들의 값비싼 물건을 탐내고, 심지어 여성들을 강간할 생각까지 한다. 중국 민중들은 진정한 '혁명'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오히려 처단 받아야 할 반동분자들은 재빨리 변발을 틀고 혁명에 '참여'하여 기회주의자로서 살아남는다. 아큐의 마지막은 비참하다. 영문도 모르고 짜오 가를 약탈한 모반자로 몰려 죽는다. 그는 종이에 서명을 하는 것이 자신을 죽게 만든 다는 것도 모른 채, 자신이 동그라미를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를 고민한다. 사람들은 그가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총살을 당해 죽었기때문에' 나쁜 짓을 한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큐는 자기 전통에는 긍정적이면서, 모든 것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이른바 '정신승리법'으로 실제로는 맞으면서도 자기를 합리화하여 패배하면서도 승리하고 있다고 자기를 위로한다. 이 소설은 단순히 아큐라는 한 인간을 통해 당시 중국의 모습과 중국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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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본질을 묻는다 창비교양문고 9
정경모 지음 / 창비 / 198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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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에 대하여, 구체적인 사례를 들며 비판하고 있다. 사실 조금 감정적인 글이다. 일본인 중에서 한국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한 글의 '선동적인' 문체가 오히려 한국과 일본의 감정 대립을 부추겨 양국간의 대립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 일본은 해방 이후 계속 사죄를 거부하여 왔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일본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쉽게 수용하고 전반적으로 개방적인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의 것과 거의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일본 대중가요, 서양인들처럼 노랗게 물들인 일본 젊은이들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일본은 오히려 자신의 문화를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조그만 편견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국적을 버리지 않으면 승진 심사 등에서 온갖 차별을 해대다가도 일본인으로 국적을 바꾸기만 하면 그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것이든지 철저히 '일본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야스꾸니 신사에 있는 2만 명에 달하는 우리 선조의 영령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의 이름으로 모셔져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글은, 서양인에 대하여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인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라는 글이었다. 그야말로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민족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본인으로의 귀화를 거부하는 재일 조선인 중의 한 명이 '내가 인도네시아인 혹은 미얀마인으로 되는 거라면 귀화해도 좋지만 일본에 귀화해서 일본인인 되는 것만은 싫다'라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단순히 국수주의적인 입장에서 일본에 귀화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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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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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게 있어서 서양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모든 사상이 정확하게 이해되었을지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만인이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데 '각자 알맞은 자리 찾기'에 익숙한 일본사회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뿌리내릴 수 있었을 지 의문이 든다. 또한 상인보다 무사가 우대 받았던 사회에서 자본주의의 돈을 중시하는 정신은 천박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이 계급간의 갈등을 '투쟁'이 아닌 '제휴'의 형태로 해소한 사실은, 극심한 계급 투쟁을 경험한 서양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 밖에 여러 서양의 정신과 이념들이 일본에 제대로 이식되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서양의 기술을 받아 들여 오히려 서양보다 더 뛰어난 기술 진보를 이루어 낸 일본인들이지만, 이러한 일본인들의 '비합리적'인 모습들을 볼 때, 그들의 몸은 현대에 있지만, 정신은 아직도 막부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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