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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밀란 쿤데라 지음 / 청년사 / 1992년 1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을 이야기한다. '불멸'에서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이 아주 다양한 주제(성, 육체, 삶, 죽음 등)로 확대되어 간다. 언니 아녜스와 동생 로라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모습에서 너무나 대립적이다. 조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인간은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가진 존재이다. 가벼움 혹은 무거움의 가치 중 어느 하나가 우선한다고 만은 볼 수 없다. 로라처럼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무질서하고 안정감이 없다. 아녜스의 조용하고 정신적인 삶은 안정적이고 도덕적이지만, 그것은 행복하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듯 싶다. 305쪽에 나오는 그림은 이 소설의 주제를 단순하면서도 명확하게 나타낸다. 로라의 형상은 꿈으로 가득 찬 머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육체는 땅으로 끌리고 있다. 둔부는 물론 묵직한 두 젖가슴도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로라는 불멸하기를 원한다. 그녀의 육체는 철저히 현세 지향적이다. 로라에게 육체는 곧 성과 이어진다. 다른 사람과의 성 관계, 사랑은 그들에게 로라의 존재를 인식시켜 주는 일이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로라는 영원히 살아 갈 수 있다.
대조적으로 아녜스의 육체는 불꽃처럼 위로 올라간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머리는 언제나 살짝 수그러져 있고 땅을 바라보는 회의에 차 있다. 아녜스에게 육체적인 현세의 삶은 별 의미가 없다. 아녜스의 정신은 그러한 육체적인 삶을 회의한다.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처럼, 아녜스는 정신(혹은 이성) 그 자체이며 육체는 없어도 되는(땅이 아니라 하늘로 사라져 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즉 아녜스는 '삶' 보다는 '존재'와 '존재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서양 철학은 논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 신과 인간,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정...그리고 이것은 아녜스와 로라가 고민한 가벼움과 무거움의 문제와 연결된다.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의 대립은 단순한 창작 기법을 넘어서, 인류가 항시 고민해 왔던 주제들의 대립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