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SE - 비트윈 2disc, 할인행사
미하일 하네케 감독, 이자벨 위뻬르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 피아니스 - 하네케 감독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봤다. 우연히 얻게 된 영화였고 깐느 그랑프리라는 브랜드 네임에 혹해서 보기 시작한 영화였다. 그리고 맨 마지막 화면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을 크게 뜨고 옆에 앉은 오존을 멍하니 바라봤을 뿐이었다. 그만큼 몹시나 당혹스러웠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이해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수십번을 반복해서 본들 완전한 이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답을 여전히 멍한 얼굴로 대답하리라.

그럼에도 감상을 쓰는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흥미를 끄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기에 내가 느꼈던 단상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에는 한계를 느껴 그저 느낀대로 나열해보겠다.


주인공 에리카는 슈베르트가 전공인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교수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무서우리만큼 엄격한 완벽성, 그리고 언제나 얼굴을 꼿꼿하게 세운 신경증적인 자존심, 질끈 잡아매서 정리된 머리칼과 흰색과 검정색조의 변하지 않는 보수성의 상징같은 옷차림등... 처음 화면에서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추악한 속내를 감춘 지성이라 불리는 것의 클리셰적인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심리학이나 이런 류의 인물을 다룬 문학이나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전형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허울 안에 가려진 것의 진실에 대해 어렴풋하게 나마 눈치를 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클레메와 만나서 나누는 슈베르트와 슈만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예상처럼 그녀의 숨겨진 또 하나의 모습은 일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씩 드러난다. 엄격한 얼굴로 마치 병원에 진찰을 받으러가는 사람처럼 섹스숍에 들러서 방안에서 포르노를 보면 어떤 남자가 토정해낸 정액이 뭍은 휴지를 장갑을 낀 손으로 잡아 냄새를 맡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던 모습은 정말 강렬했다. 그리고 클레메의 등장과 함께 그녀의 욕망의 대상이 구체화되면서, 그것은 표면으로 솟아나기위해 꿈틀거린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클리셰화된 에리카의 캐릭터처럼 그녀의 내면의 변화를 전통적인 상징인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파격적이고 대담한 성애와 욕망에 대한 묘사에 대한 아이러니한 도구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과잉적 해석일 수도...). 전반부 내내 변하지 않던 그녀의 레인코트와 금욕적인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루는 옷차림은 클레메에게 그녀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그를 지배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붉은 계열의 현란한 옷차람으로 바뀐다. 질끈 매었던 머리는 풀어서 부드럽게 웨이브를 주고 화장기 없던 얼굴에 붉은 볼터치가 등장한다. 오렌지색 블라우스, 그리고 붉은 코트와 푸른색의 치마는 그녀의 감정의 변화를 나타낸 것일 것이다. 그리고 클레메에게 거절당하고 매도당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에리카의 옷차림. 마지막 장면에 나온 그녀 옷에 드러난 피 얼룩은 그녀에게 있어 클레메가 미친 변화의 정도를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저 옷에 묻은 피 얼룩같은 정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물 정도의 상처 정도. 역시 재미있는 것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적극적으로 접근하며 화장실에서 그녀와의 정사(?)에 욕망과 수치심, 그리고 모멸감을 한꺼번에 드러냈던 클레메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옷차림에 있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입으로 행동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사랑을 끊임없이 증명하려는 클레메의 경우에 전혀 변화가 없는 그 모습은 어쩌면 단순히 에리카의 상상속의 사랑을, 그녀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즉, 클레메와의 만남에 있어서 변화는 오로지 그녀안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 비극(?)을 암시하는 장치였을 지도 모른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클레메의 취미이다. 그는 원래 공학도이다. 그런데 작은 살롱 음악회에서 에리카를 만나고 그녀의 음악적 재능에 반해 그녀가 교수로 있는 학교로 들어온다. 그에게 피아노, 즉 음악은 그가 즐기는 아이스 하키만큼 정도의 취미인 것이다(주변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들은 손가락이 상할까봐 설겆이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스하키라니!!!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들어온 학생이???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감독의 의도적인 배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즉, 음악이 피아노가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인 에리카와 피아노가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정도인 클레메 사이의 그 넘을 수 없는 간격이 드러난다. 그들의 매개는 바로 피아노이고 슈베르트이다. 그 매개에 대한 기본적인 사상의 차이. 그리고 아이스하키가 상징하는 폭력적이고 남성적인 것들. 순수하게 에리카에게 다가간 클레메, 처음에 드러난 슈베르트와 클래식에 대한 그의 뛰어난 이해와 교양과 함께 공존하고 있는 지독하게 마초스럽고 폭력적인 성정의 상징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에리카가 초반에 그를 지배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환타지를 이루려고 할 때, 그의 분노와 경멸은 어쩌면 공존하고 있던 그의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함의 반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 주도권이 그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암시.

그리고 에리카와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은 그들의 또 다른 투영인 안나와 안나의 엄마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그들의 관계가 안나 모녀와 비슷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서로 공생하고 희생하며 증오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그 모순된 복잡한 감정이 어떻게 자라났는지, 그들의 상식을 넘어선 비틀린 유대관계가 에리카에게 미쳤던 영향들은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클레메가 에리카의 게임에 대해 분노와 경멸을 바치다 오히려 그것을 넘어 서 폭력의 주체로 설 때 그것은 에리카와 단 둘의 상호작용이 아닌 그녀의 엄마와의 삼각구도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멍들고 초췌한 얼굴로 콘서트 장에서 클레메를 기다리던 에리카. 친구들과 함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들석하게 그녀 앞을 지나가며 "교수님의 연주 기대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고 가는 클레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핸드백에서 꺼낸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에리카... 낡은 블라우스 위로 얼룩져 번지는 핏자국. 그대로 연주장을 빠져나가 거리로 나가는 에리카. 그리고 잠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그녀가 향한 곳은 어딜까?

난 섹스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
어쩌면 감독은 결국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는 욕망이나 환타지는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즉 클레메와의 이야기는 에리카의 환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 서로가 주고받는 감정의 떨림 정도는 존재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실체화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래서 결국 에리카에게 남은 것은 이전과 다름없는 현실과 가슴의 핏자국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 쥔공 이름은 웰테르 클레메인데... 자꾸 헷갈려서 웰베르라고 쓰게 되서 걍 클레메로 전부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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