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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로그(십계) 박스세트 - 인피니티 할인행사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Henryk Baranowski 외 출연 / 인피니티(Infinity)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사랑은 '그대와 함께 내가' 존재하도록 만드는 존재이며,
'자기복종'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게 하는 길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연작 영화 십계(Dekalog)는 내가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고 두 손으로 치받들어 추종하는 영화이다. 그를 숭배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영화. 비디오로 모으다 디비디가 출시된다는 얘기만 듣고 목이 빠져다 기다리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구입했었다.
사실 많이 어렵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십계가 가장 어렵다.
제목처럼 성서의 십계명 하나 하나의 철학적 사유를 영상으로 담은 것이라 특히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아쉽다. 그가 그렇게 일찍 가지 않았다면 천국/연옥/지옥 삼부작으로 그의 인생에 대한 철학을 좀 더 가까이 접하고 소통할 수 있었을텐데... 그 생각만 하면 온 몸이 저릿해지며 늘 아쉽다. )
영화를 보고 나서도 디비디와 함께 들어있는 김용규씨의 해설서를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참 어렵다.
그의 설명을 보고 다시 영화를 보면 느낌이 얼마나 다르던지.
한 시간짜리 영화지만 보고 나서 아주 오랫동안 곱씹고 곱씹어 생각하게 만든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7번째 계명이면서 이 연작 영화의 7번째 이야기이다.
구약 성서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인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와 동어 반복이 되는데
성경연구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사람 도둑질을 하지 말라로 해석된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노예가 있었고,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고 비쌌기에 이런 일이 종종 있었단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나올 수 있으므로 그런 것 싫어하시는 분들은 읽지 말아주세요.)
키에슬로프스키는 이런 의미에서 7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를 접근해갔다.
노예라는 것은 없지만 현대에서 사람을 도둑질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간혹 뉴스에 나오는 잔혹한 범죄인 유괴, 납치, 감금 그리고 살인을 의미하는 것일까.
보는 내내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그의 사유가 흘러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그 의미를, 그의 해석을
그동안의 내 경험을 통해 그나마 정확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바, 마이카, 그리고 얀카.
어머니란 존재, 그리고 모성애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개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통 모성애는 추앙받아야 할 최고의 사랑으로 묘사된다.
조건 없이 받아들여주고, 감싸주고 보호해주는,
사회에서 상처받고 치이고 지친 우리의 영혼이 마음 편히 안주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가페적인 사랑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고등학교 시절이나 대학시절에 헷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만큼이나 필독서였던 책이 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재미없어서 끝까지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뭐... 철학서라는 게 다 그렇겠지만.)
하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시간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었다.
사랑에 있어서 소유와 존재만큼
그 사유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 마음의 발전에 있어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떨구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을 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에리히 프롬이나 키에슬로프스키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그의 존재만으로 행복해지며 사랑을 느낀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나를 알고 있다는 것.
김춘수의 꽃처럼 의미없는 몸짓이 아닌 서로에게 아름다운 꽃이라는 것.
그와 5분간 나눈 친밀한 대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친 온갖 의미가 부여되는 우연,
그의 손때가 묻은 작은 메모, 그리고 같이 먹는 밥.
그런 사소한 모든 것들에서 그의 존재의 의미를 찾으며 우리는 행복감에 빠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곧 그의 존재가 마음에 뿌리내리면서
복잡하게 얽히고 고통스러워진다.
우리는 점점 그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나만의 특별한 사람으로.
다른 그저 그런 누구와 철저하게 차별되는 존재로서 자신을 강렬하게 드러내며
그를 얽어매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만의 것이 되길 바란다.
노래에서처럼 아름다운 구속이라고 외치면서.
그래서 고통스러워진다.
나만의 것이 아닌 그의 존재 때문에.
내 경우에는 이 과정이 모든 인간 관계에 해당된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난 그를 도둑질하고 싶어진다.
드라마에서도 종종 나오는 말처럼 그의 마음을 빼앗아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투쟁이 시작된다.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자라는 소유에 대한 욕망과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유지되는 존재에 대한 존중
이 둘 사이에서 말이다.
그것이 내게 피를 흘리게 한다.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한다.
하지만...
다행히, 그나마 아주 다행히
난 알고 있다.
이것이 극복되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노력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나 다행히도
난 그 투쟁에서 겨우 겨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내가 주체가 되지 않는,
내가 객체가 되어버리는 이 감정에 대해서 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이 그를 괴롭히는지 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 감정은 스스로 깨닫고 인지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이다.
심지어 인식하고 있다해도 극복하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감정이다.
에바, 마이카, 그리고 안카.
에바는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과 잔인함을.
마이카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알면서도 그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소유하려 했다가 실패했고 상처를 받았다.
안카는 어떻게 될까.
그녀는 어리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과연 그녀는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사랑은 '그대와 함께 내가' 존재하도록 만드는 존재이며,
'자기복종'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게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