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 이청준 문학전집 연작소설 2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이청준 선생님의 서편제를 읽고 있다. 짤막한 옴니버스 식 단편으로 완성되어 이어지는 소설의 형식이 어쩐지 소재로 삼고 있는 판소리의 '마당'과 유사한 것 같아 부담없는 마음으로 시간 날 때마다 한 편씩 읽는다.

책의 표지와 뒷 표지를 보면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사는 것이 바로 한을 쌓는 것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한, 삶으로 맺고, 소리로 풀고'

그다지 한 많은 인생을 산 것도 아닌데 소설을 읽기도 전에 이 문구에서부터 찌르르 감전된 것처럼 올라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 많은 한국인인 것일까?

맨 처음 실린 단편 '서편제-남도 사람1'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 여인이 제 아비를 용서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을지 모르는 노릇이지. 아비를 위해서도 그렇고 그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여자가 제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건 바로 원한이지 소리를 위한 한은 될 수가 없었을 거 아닌가. 아비를 용서했길래 그 여자에겐 비로소 한이 더욱 깊었을 것이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서 한을 쌓고, 그 죄를 용서하면서 한을 쌓고....

슬픈 내용도 아닌데, 참을 수 없이 애절한 사연도 아닌데, 소설을 읽는내내 울컥울컥한 기분이 들어 눈시울을 적셨던 것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는 잘못을 하고 용서를 받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치유해가고... 하는 과정들이 나 자신도 모르는 한을 쌓는 행위였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성찰은 '한'과 '원한'에 대한 화자의 말이었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행위는, 아비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원망,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한과 삶이 어우러져 소리라는 한 단계 차원 높은 경지로의 깨달음에 이르러 삶을 계속하는, 처연한 받아들임, 수용의 철학이었다.

사는 게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일.
비루한 삶에서 한을 쌓는 것이 피할 수 없고 당연한 일이라면... 부디 원한은 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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