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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혈압이 떨어졌다.
동반하는 증상은 어지럼증, 대략의 무기력증.
집에서 쉬면서 논문 몇 줄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냥 잡히는 책을 펼쳐들었다.
처음 읽는 심윤경의 글.
감상적기가 미묘하다.
일단은 열광하는 사람들처럼 열광은 안된다는 사실.
아아, 역시나 나이가 먹으면서 참으로 글에 대한 열광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건 분명하다.
굳이 흠을 잡으려고, 보려고 하는 건 아닌데 툭툭 드러내며 보이니...
이를 어찌하리.
좋은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고, 설익어 세상에 나온 칠삭동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수많은 한자 조어들, 명문종가가 가지는 품격의 허와 실, 비밀과 거짓말, 이 모든 것을 다루지만
풍요로운 한자의 어휘가 명문종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명문종가를 다룬다고 해서 빠른 변화의 시대에 정체되어 있는 정지된 이질적 세상의 정취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구나, 씁쓸하게 느꼈다.
외려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펼쳐든 성석제의 '참말로 좋은 날'이 고어를 사용하지도, 드러내고 옛것에 파묻힌 인간을 소재로 쓰지도 않았지만, 그의 글에서 심윤경의 바랐던 쿨함이 아닌 끈적끈적한 옛날식 정서를 자연스레 발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침대에 앉아있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달의 제단'도 아니고, '참말로 좋은 날'에 대한 것도 아니고,
과연 작가가 육성으로 말하는 글의 힘, 글쓰기의 어려움이 새삼 사무쳤기 때문이라면 건방은 건방일 것이다.
개인을 변화시키고, 더 넓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뭐야, 이미 그런 것을 글에서 바랄 수 없다고 현대문단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목청껏 외치지만,
쯔쯧,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혹은 따라가지 않으려 버티는 나를 포함한 몇몇 이들은 여전히 이것을 믿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혁명이나 전복이 아니더라도, 시선을 환기시키고, 다르게 하여 경계를 확장시키고 이전과 같되 더 이상 같지 않은 어떤 것을 발아시키는 힘.
역시나 그런 힘은, 그저 흉내내기만으로는 차마 바라지도 힐끗 엿보지도 못할 그런 숭고한 것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심윤경의 '달의 제단'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었고 재밌기도 했지만,
그것은 육성이 아닌 어디서 들은 것을 흉내내어 중얼거린 것처럼 들렸다.
공감을 얻지 못한 치열함은, 필연적으로 조소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체화되지 못한 작가의 흉내낸 옛날식의 진지함은 독자를 그저 멀뚱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게 했다.
주제 역시 심화되지 못하고 껍데기만 어설프게 빚다 그쳐졌고, 동일한 주제라면 은희경의 '비밀과 거짓말'이 전달력이 더욱 좋다고 할 수 있다.
글에 들인 노력이나 시도는 좋았지만 아쉽게도 결과가 성공적이라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지켜볼만한 작가.
그저 확실한 것은 앞으로가 기대가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