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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책이 뭐길래. 애서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내뱉었을 말이다. 모든 '중독'이 다 그렇지만, 책이나 활자에 중독되는 것만큼 고약한 일도 몇 없다. 증상은 이렇다.
-책이 없으면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지하철에도 못 탄다.
-평생 안 읽을 지도 모르는 책을 몇 권씩이나 사들인다.
-남의 책에 욕심을 낸다.
-책 냄새를 맡으면 아픈게 낫는다고 믿는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자의로는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서재를 갖고 싶다는 이유로 아파트 전세 대출을 한다.
여기까지는 책 중독의 초기나 중기 증상일 뿐이다. 말기 증상은 이렇다.
-출판사에서 일하거나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
-도서관 사서와 결혼하거나 도서관과 결혼하고 싶다.
-서점에서 일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모든 치명적인 질병이 그렇듯 이 증상이 말기의 말기에 이르면 이 사람은 죽는다. 실제로 '책'이라는 산업에 몸 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나다.
책이 뭐길래. 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매일 몇 번씩 되내이는 말일 거다. 한 명의 독자로 남아 있는 것이 편했을 뻔 했다고 후회하는 순간은 분명 온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그 순간 '취미'로서의 여유와 재미는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일'로서의 피로와 열패감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온다. 모든 것의 안과 바깥은 다르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무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특히 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애서가에게 책은 취미가 아니라 삶이며 삶 이상이다. 따라서 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취미를 업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삶을 업으로 삼는 것이다. 당연히 삶에 매달리는 것처럼 업에 매달리게 된다. 책으로 살고 책으로 죽는다. 이 사람들에게 '책이 뭐길래'는 '사는 게 뭐길래'다. 그리고 그게 나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얼마 없는 줄 알았는데, 그건 우물 안 개구리 햇님 생각일 뿐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 천지다. 책을 좋아해서 책을 업으로 삼고, 책으로 먹고 살며 책으로 꿈꾸는 사람들. 책의 희망을 믿는 사람들. 책에서 세상의 미래를 읽는 사람들. 책을 쓰고 찍어내고 팔고 나누면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 세상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로라도 기꺼이 쓰이기를 원하는 사람들. 차라리 한 권의 책이었으면 싶은 사람들.
<노란 불빛의 서점>은 그 사람들을 대변하고, 나는 그 사람들 중의 한 명일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셰익스피어는 죽어도 햄릿은 죽지 않는다.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책이라는 마술의 일부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