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 한국 사회문화사 01
이효인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모든 예술 작품은 창작되는 시대의 향을 품고 태어난다. 작품을 보면, 작품을 품었던 그 시대의 자궁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영화도 그렇다. <위대한 독재자>와 <시민 케인>을 당대의 역사적 정황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작품이 당대를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당대에만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예술적 성취가 뛰어난 것일수록 작품은 스스로를 오래 지속하며, 그 향을 새로운 시대의 수용자들에게 전파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의 수용자들은 하나의 예술 작품 속에서 두 가지 역사와 대면하게 된다. 하나는 그 작품 내부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수용자 내부의 역사이다. 이 두 역사는 서로 길항하기도 하고 접촉하여 충돌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역사의 만남, 그리고 서로간의 의미작용이 수용자가 예술작품을 즐기면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한편 대개 모든 영화는 암실에서 다수를 대상으로 상영된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밝은 스크린 뿐인 암실 안에서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우리가 그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결국 그 영화가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의 이야기는 하나지만 관객은 여럿이다. 결국 다수의 관객이 하나의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적응하거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은(다시 말해 그 영화가 재미있다, 재미없다, 라고 여기는 것은) 그 관객들이 무언가 비슷한 판단 체계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판단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관객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 그 자체, 즉 관객들이 몸담고 있는 역사이다.

이효인은 여기에 착목한다. 근대의 한국 영화는 결국 근대의 한국 역사다. 영화는 한국의 근대를 어떻게든 지나갈 수 밖에 없다. 다만 어떻게 지나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결국 파란만장했던 한국의 근대를 한국 영화가 어떻게 지나가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관찰기록이다. 그리고 그가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산출해낸 사고틀의 범주는 쾌락, 근대, 강박, 여자이다.

한국의 근현대는 난맥상이다. 일제의 억압에 해방되고 나서 친미/친일 정부가 들어섰고, 처절한 전쟁을 보낸 뒤에는 군사정권의 반공 파시즘이 득세했다. 헐벗고 굶주리던 나라가 몇십년 만에 흥청거릴 만한 경제수준을 지닌 국가가 되었고, 쫄딱 망해버릴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나와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었다. 대책 없고 정신 없는 역사였고, 그만큼 야만적인 역사였다.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멘탈리티는 이리하여 기형적으로 형성될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그 과정은 이렇다. : 그들은 이 잔혹한 "근대"의 역동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쾌락"을 희구했다. 하지만 그 쾌락은 시대의 암흑 속에서는 언제나 "강박" 밑에 존재하는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강박적 쾌락의 대상이 되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이 책은 그 과정들을 당대의 영화를 들여다봄으로서 증명한다. <우묵배미의 사랑>에서는 당대의 잔혹함에 비해 턱없이도 무력했던 한 지식인(장선우)의 자기 변호를 읽어내고, <쉬리>에서는 전쟁의 본질을 정면돌파하지 못하고 멜로적 장치와 스펙타클로 우회하려는 영화의 전략을 읽어낸다.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면서 남성 관객들이 "지켜주지 못한 공통의 '누이'"에 관한 강박을 씻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박하사탕>을 통해 역사에서의 전면적인 여성 배제를 통찰한다.

저자의 전작인 <한국영화역사강의 1>의 속편으로 기획되었다는 이 책은, 결국 이 땅의 영화들이 이 땅을 살아온 모든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변절과 저항, 혁명과 좌절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웅변해준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에서 그치치 않는다. 그는 시대의 질곡을 정면에서 파헤친 영화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음을 계속해서 지적한다.

모든 영화는 시대와의 대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다. 관객이 의도하는 바와 영화가 담고 있는 바가 일치했을 때 관객들은 즐거워하겠지만, 그 즐거움은 결국 현실 외면의 죄책감을 가릴 구실이 될 뿐이다. 솔직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불편한 영화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역사가 생산적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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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2005-04-1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교적 최근의 영화까지 나오나 봅니다. 내가 본 영화가 얼마나 거론됐는지 궁금한데.. 영화갖고 이야기하면 참 재미있을것 같고 흥미있습니다. 이 책이 궁금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