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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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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단편 소설보다 더 짧은 분량 개념인 꽁트로 창작 역량을 체크당하곤 했던 것 같다. 콩트나 단편소설은 시처럼 한 문장도 낭비해서는 안 되면서도 읽고 난 뒤 독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겐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쓴 콩트는 대부분 주제가 모호했고 흐지부지 끝나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가끔씩 참고용으로 모파상의 짧은 소설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모파상의 짧은 소설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거창한 비밀을 담고 있지 않았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들, 간혹 예외적이고 낯선 사건 또한 인간 전형의 굴레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문장의 끝인 마침표에서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다 읽고난 다음 한 번은 숨을 고르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고 구석 언저리에 박아둔 삶의 파편일지도 몰랐다. 모파상은 우리가 언젠가 경험해본 감정을 기억의 수면 위로 호출한다. 독자가 어떤 위대한 작가의 폐부를 찌르는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에 '나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어!'라면서 무릎을 치듯이 말이다. 그러나 쉽게 지나칠 만한 감정을 붙잡아 기록하는 것, 그 노력만으로 모파상 같은 작가의 자질이 완성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독심술은 오직 관찰과 의지로 가능하다"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문장처럼, 위대한 작가란 지독할 정도로 끈질긴 관찰자가 되어 인간의 한 가지 행동에 내포된 수 십 개, 수 백 개의 감정의 결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모파상의 소설들은 분량이 짧고 진부하지 않아서 금방 속도가 붙었다. 아무리 단편이라고 해도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이 이토록 속도가 붙은 적은 처음이라서 신기했다. 유독 기억에 남은 단편들은 <의자 고치는 여자>와 <29호 침대>다.

        <의자 고치는 여자>는 한 남자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느껴본 의자고치는 직업을 가진 여자가 평생 그 남자를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단조로울 수 있는 내용인데, 마지막 부분이 강렬하다. 의자 고치는 여자가 돈을 주면서까지 사랑을 갈구하던 남자는 의자 고치는 여자의 사연을 제3자인 의사를 통해 듣게 된다. 자신을 향한 절절한 사랑의 사연을 들으면 연민의 감정을 느낄 것으로 예상했지만, 남자는 크게 분노하며 불쾌해한다. 그의 아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의자 고치는 여자가 그의 앞으로 남긴 돈이 있다고하자 그와 아내는 반색하며 그 돈을 받아든다. 한술 더 떠서 그는 그녀의 유품 중 쓸만한 것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물건까지 찾으러 온다. 이처럼 사랑은 너무나도 쉽게 권력화된다.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그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인간이 사악해지기도, 한없이 미련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자 고치는 여자가 사랑한 그는 악인이고, 그녀는 단지 연민의 대상일 뿐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끝내 거부당했다는 것을 연민할 게 아니라 그녀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엾게 여겨야 할 것이다.

        <29호 침대>는 잘생기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모든 여자가 한 번쯤 흑심을 품을 만한 만인의 연인인 에피방 대위가 주인공이다. 그는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 미르바와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들의 사랑은 지속되지 못한다. 전쟁이 발발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에피방 대위는 훈장까지 수여받으며 명예롭게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미르바는 전쟁 와중에 프로이센 군에게 강간을 당하고 매독이 걸린 채로 병원에 입원한 신세가 되어있다. 그런 미르바를 본 에피방 대위가 처음 느낀 감정이 당혹스러움, 거부감이라는 게 놀랍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에피방 대위가 보이는 행동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을 그 지경으로 만든 프로이센 군에게 복수를 하고자 마음을 먹은 미르바가 병에 걸린 것을 숨긴 채로 여러 프로이센 군인을 상대하며 그들을 죽이는 내용을 전해들으면서 에피방 대위는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녀에게 잘했다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미르바의 이야기가 자신의 연대까지 소문이 퍼져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자 미르바에 대한 격한 분노를 느낀다. 미르바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지만, 미르바에게 더한 말을 들을 뿐이다. 그리고 며칠 뒤 미르바는 결국 죽고, 소설은 끝이 난다.

 

        모파상은 사랑과 삶, 사람에 대한 판타지를 만들지 않는다. 인간 이면에 있는 사악함과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심도 있게 관찰한 것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매력이 있다. 모파상의 작품은 옮긴이의 말처럼 특정한 유파로 구분하기가 힘든 것 같다. 모파상의 소설을 <자연주의>로 보기도 하고 <사실주의>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자연주의>보다는 <사실주의>에 더욱 가까운 것 같지만) 이 구분이 유의미할 것 같지도 않다. 이 책에 실린 65개의 단편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모파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너무나도 소설창작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야기'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었다. 모파상의 이 책은 오래도록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꺼내 보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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