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공제控除의 비망록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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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영원하다

 누군가 나를 오해해서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나는 좀처럼 그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숱한 이를 겪으면서 얻은 내 나름의 미립인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오해를 모르는 체 방치해서 역시 숱한 이들과 변변한 애도조차 없이 헤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내가 오해를 대접하는 방식이며, 마찬가지로 세속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으니, 마치 상처가 영원하듯이 오해도 영원한 것이다. 오해한 죄, 그것은 최초의 죄이며 가장 중요한 죄다. 오해의 빚은 이해로써 상환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결별로써만 그 비용을 지불하는데, 오해는 완벽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오해여 영원하라ㅡ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279쪽

어느 글에선가, 벤야민은 독서와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보는 것은 '직관적으로' 동류(同類)의 쾌감이라고 적었다. '아무리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썼던 이 고독한 비평가의 비밀은 이렇게 풀려간다.

내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가ㅡ만ㅡ히 바라보는 일보다 더한 쾌락은 없다. 그런데 그 쾌락의 중요한 부분은 솟아오르는 직관을 사냥한 짐승의 모가지를 누르듯 지그시 밟는 일이다. 글(읽기)은 정화된 욕심 곧 의욕이며, 뼈에 가해지는 순결한 고통이다. 오직 지겨운 연극만이 볼만하듯이, 이해할 수 없는 글들만이 내 시간을 연극(게임)처럼 '의심할 수 없이' 가득 채운다.

그러나 아샤(Asja)와의 연애가 난해하게 꼬이자 벤야민의 열정은 하릴없이 텍스트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결국 벤야민의 쾌락은 여인과 문자 사이에서 부침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아샤(=성가신 난해함)같은 독서를 견디지 못한 셈인데, 내 느낌으로는, 독서에서 얻을 수 있는 지고의 쾌락은 곧 아샤 같은 것!
-133쪽

글 쓰는 법, 한 가지



가령 백양사나 천은사 주변을 무엇인가 미안하고 부끄러운 듯 멈칫거리면서, 한순간 지성에 얹힌 표상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여보면, 어떻게 좋은 글이 써지는지, 환히, 다가온다. 좋은 곳이나 물건을 공대하는 일은 관념의 골수(骨髓)를 바스라뜨려 하아얀 의욕 속으로 들어가는 노릇인데, 그제야 낮아진 글들이 손가락으로 모여 관념을 통하지 않고 저절거린다. 그것은, 사양(斜陽)의 나무를 소리 없이 만지는 심경이다.
-215쪽

J에게

생각이 좋은 사람보다 글(쓰기)이 좋은 사람이 되십시오. 글이 좋은 사람보다 말(대인대물 상호작용)이 좋은 사람이 되면 더 좋지요. 말이 좋은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면 생활양식이 좋은 사람일겝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좋은 것은 '희망'이 좋은 사람이니, 그런 사람이 되도록 애쓰십시오. 물론 이중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희망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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