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1일째. 도서관 첫 출근. 나는 인문실로 배정 받았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물먹는 하마를 도서관 벽장에 넣어두는 일이었다. 다 쓴 것을 벽장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기 때문에 칼로 찢어 물을 털어내는 작업도 같이 했는데, 그게 손에 묻었는지 하루종일 손이 쓰렸다. 오늘부터 읽은 책과 영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1. 밀란 쿤데라의 『배신당한 유언들』과 로쟈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었다. 배신당한 유언들은 쿤데라의 에세이집이기 때문에 편하게 목차를 보고 골라 읽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영화 비평 부분을 읽었다. 레오 까락스의 사랑이야기 3부작 중 <나쁜 피>에 관한 비평이 인상적이었다. 두 권의 책은 도서관 서랍에 놓고 며칠간 읽을 생각이다. 제프 다이어의『그러나 아름다운』을 빌려서 집으로 왔다. 재즈 아티스트들의 삶을 논픽션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다. 한유주 작가가 번역을 맡았다. 찾아 보니까 한유주 작가는 제프 다이어의 다른 소설도 제법 번역을 한 것 같다. 제프 다이어의 『지속의 순간들』도 곧 읽어볼 예정이다.
2. Life of Pi를 봤다.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얀 마텔의 <파이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이안 감독이 찍었다는 소식에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막 내렸던 영화인데 오늘 학교 DVD실에서 만났다. 보는 내내 영상미에 감탄했다. 3D로 봤으면 정말 환상이었겠다 싶어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중년이 된 파이가 작가에게 '신앙은 믿음의 문제'라고 얘기했을 때 나는 이 영화가 종교적으로 흐를까 걱정 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기우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영화는 상상력과 현실성의 경계에 서 있다고 본다. 파이가 맞닥뜨린 세계는 우리에게 낯선 세계임은 분명하지만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파이의 고뇌는 현실적이다. 이러한 현실성 확보에 한 몫을 했던 게 파이와 리처드바크(호랑이)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아니었나 싶다. 서로에게 위협을 하고 기선제압을 하려 애쓰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는 모습은 동물과 인간의 우정이라는 동화적인 훈훈한 결말로 흐르지 않게 했다. 그래서인지 기력이 완전히 쇠해진 리처드 바크의 얼굴을 감싸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파이의 모습이 더욱 진정성있게 다가왔다.
3. 운동을 해야겠다. 생활의 지구력을 위해서. 요새는 몸이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자꾸만 지쳐 쓰러져 잠든다. (좌절)
오늘부터 일찍 자려고 했는데, 또 한 시를 넘겨버렸다. 흑.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