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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는 사회학 - 인문학적 사회학의 귀환 ㅣ 현대의 지성 161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어쩌면 김경만 선생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대척점에 서있는 책이 정수복 선생의 '응답하는 사회학'이다. 김경만의 지적도발 이후 정수복 선생은 비판사회학회의 경제와 사회라는 저널을 통해 김경만의 주장에 대해 약 40여 쪽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수복 선생은 로컬 지식장을 강조한다. 한국적 사회학의 특수성이 세계적 사회학의 보편성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현실에 관여하고 동료학자들(로컬 지식장)의 지적 결과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정수복 선생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학에 대한 해답은 주변의 삶에, 사회에 '응답하는 사회학'이다. 정수복 선생은 작년 12월에 있었던 한국사회학 대회 중 문화사회학회 세션에서도 '사회학회가 너무 사회에 유리되어있다. 아무리 높은 학문적 성과가 있어도 그것이 대중들에게 읽히지 않고 몇몇 사회학자들에게 읽히는 것은 안타깝다.'는 논지의 이야기를 했고 또 사회학자들이 글을 너무 못쓴다는 지적도 했다.
정수복 선생의 책은 크게 1부에서는 예술로서의 사회학, 즉 실증주의 이후의 사회학, 사회에 응답하는 사회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2부에서는 사회학자로서의 자기분석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동시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삶에 대해 서술한다. 또 3부에서는 한국 사회학자들의 저서를 평가한다.
이 책에서 정수복 선생의 주된 논지는 사회학이 전문성에만 매몰되어 대중성을 잃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학이 그 연구 대상인 사회적 사실(Social Fact)을 사물처럼 다루는데 몰두하고 과학으로서의 사회학, 근대적이고 실증적인 사회학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능케하는 인문학-해석학적 사회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정수복은 실재의 사회적 재구성이라는 현상학적 사회학으로 유명한 피터 버거의 말인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을 인용하면서 결국 사회학은 사회에 말을 건네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수복 선생은 책에서 사회학은 복수 패러다임의 학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수복 선생은 절대 과학주의 사회학을 무시하는 입장이 아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정수복이 피에르 부르디외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정수복은 피에르 부르디외, 미셸 푸코, 롤랑 바르트, 자크 데리다, 밀란 쿤데라 등이 교수로 있었던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EHESS)에서 박사학위를 한 분인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부르디외 서술은 꽤 재밌다.
정작 정수복은 당시 프랑스 사회학계를 4등분 했던 네 가지 전통, 피에르 부르디외의 발생론적 구조주의, 발랑디에와 알렌 투렌의 동태적 사회학, 레이몽 부동의 방법론적 개인주의, 크로지에의 전략적 접근 중에서 알렌 투렌의 지도로 학위를 했고 의외로 EHESS안에서도 부르디외와 대척점에 있는 투렌의 제자로서 프랑스에서 부르디외를 만나본 적은 없다고 한다.
정수복은 2000년 초반 방한한 부르디외와의 인연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부르디외는 2002년에 타계한다. 그 이후 정수복은 프랑스에 가서 20세기 최고의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그에 대한 글을 써내려간다.
구체적인 서술도 재미있지만 여기서 정수복이 이야기하는 바는 이렇다. 글로벌 지식장에서 사회과학 피인용지수 2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상징자본을 축적하고 상징권력을 가진 부르디외의 학문적 작업도 결국 그의 '삶'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정수복 선생은 아마도 삶과 주변자리에서 유리되어 단지 더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일에 몰두하고 전문성에 함몰된 사회학을 삶과 주변자리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최고의 학자가 된 부르디외를 통해 '응답하는 사회학'이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