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였다. 그 책을 통해서 희망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을 만났다는 것은 너무나 기쁘고 나에게도 살아간다는 것의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번역한 '사람아 아 사람아'라는 책에서도 체제는 다르지만 역시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었고, 번역자를 보고 그 책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었다. 그리고 '사람아 아 사람아'랑 비슷한 말투의 이 책을 통해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서 세상을 자유롭게 거닐때 그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지 말하면서 그의 여행기, 아니 '여행지에서의 사색'이 시작되었다. 전에는 그의 사색의 편지를 가족에게 보내주었다면 이번에는 중앙일보에 보내게 되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내 어찌 그분의 큰 뜻을 비판하겠는가. 하지만 출판사가 돌베개라는 친근한 곳에서 발행함이 감사했다. 중앙일보에서 이 책이 나왔다면 그를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서운했을 것이다.

갇혀본 자만이 그 자유를 알고 진리에 목마른 자만이 진리가 얼마나 귀한지 아는 것처럼 그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어렵지만 그는 희망을 볼 수 있고, 우직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는 그는 편지를 보낸다. 중앙일보가 아닌 이 글을 읽는 젋은 당신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한다. 때로는 허준에게 자신의 늙어 죽은 몸을 맞긴 유의태처럼 자신을 밟고 가라고, 때로는 자연속에서 기품을 잃지 않고 언제나 동일한 나무들처럼 살아가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었던 어느 여자후배는 허난설헌의 무덤을 보고 쓴 글이 가장 감명깊었다고 한다. 얼마전 강릉 경포 초당동에 가서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에 다녀왔다.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앞에는 경포호수가 있고 뒤에는 소나무들이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집안도 소박했다. 그 집안을 채우는 것은 지금 집안에 적어놓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시처럼 그들의 학문과 인품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아는 허난설헌은 아주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까지 그의 글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지식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찍 죽었다고 해서 나는 미인박명과 천재박명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이야기,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어선 그녀가 재주를 다 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쉬움보다는 한 여인으로서, 여자로 태어나서 겪은 그녀가 애설프게 느껴졌다.

"사랑했던 오라버니의 유배와 죽음 그리고 존경했던 스승 이달의 좌절, 동시대의 불행한 여성에 대하여 키워온 그녀의 연민과 애정. 남편의 방탕과 학대 그리고 연이은 어린 남매의 죽음, 스물일곱의 짧은 삶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그녀에게 이러한 고통이 있었던 것일까? 시대를 잘못타고나서, 여자이기때문에. 신사임당처럼 현모양처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자가 나서서 집안이 망한 것일까? 그리고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여자후배에게는 허난설헌이 어떻게 다가왔던 것일까? 허난설헌이 너무 똑똑했기때문에 그녀의 남편은 부담스러워 그녀를 괴롭히고 다른 여자를 찾았던 것일까? 그녀의 짧은 인생만이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었던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힘들지만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여성들을 보면 허난설헌은 부러워할 것 같다. 나 또한 이 땅의 허난설헌들이 비극이 아닌 해비엔딩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꿔 본다.

세상에는 많은 사색이 있다. 사람들은 올바른 사색의 길로 독서와 여행을 이야기 한다. 많은 사람에게 여행은 사람을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나도 여행을 갔지만 깊은 사색보다는 그곳에서 경치구경과 경험에 한정된 사색을 할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한 시간이었지만 값되게 쓰지 못한 아쉬운 시간이었다. 여행지에서도 이런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다듬어지지 않았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희망찬 그런 생각을 하는 그런 여행을 가고 싶다. 푸른 경치도 좋고, 파란 하늘과 바다도 좋고, 황금 들판도 좋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자연이 있고, 사람이 주인공인 그곳에서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