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블로그씨
봄 소풍하면 떠오르는 잊지 못할 추억을 들려주세요.
절대 잊지 못할 추억 하나.
지금은 까마득한 초등학교 3학년 시절입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봄소풍은 늘 전교생이 마을에 있는 공원?박물관?연구소? 그런 곳에 갔습니다. (1학년만 버스탈 수 있고 2~6학년은 전부 길게 일렬로 걸어가는 전통이었죠.)
아무튼 봄소풍을 가서 재밌게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소풍이 끝날 때 가족이 마중나온 경우에는 선생님께 말하고 가족과 차타고 갈 수 있었는데요. 그 외에는 남아있는 친구들을 다 점검하고, 쓰레기 청소를 하고나서야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물론, 걸어서)
다행히 그 날 교회 소풍이 겹쳐서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잠시 들렸습니다. 그런데 한바퀴 돌면서 구경을 하고 간다는 겁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의 사고회로 ↓
1. 구경하고 돌아오면 걷는 것보다 더 늦을 거다
2. 학급별로 걸어가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3. 혼자 걸어가는 게 최고다)
결국 꼼수를 부렸습니다.
아빠께는 걸어간다고, 선생님께는 아빠가 태워주신다고 말씀을 드린 후....... 혼자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엄청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신나서 막 걷기 시작하는데 가다보니 은근히 오래 걸리는 겁니다! 더군다나 뒤에서는 이제 가족과 차를 타고 내려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면서 "00야 안녕!!~"하고 휙 지나가는 몇몇 아이들, "00야 왜 걸어가고 있어?" 라며 뜨끔하게 만들었던 친구의 말!!!!!!!!! 에 괜히 얼굴은 빨개지고 더 늦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던 "빵빵" 하는 자동차 소리.
무시하고 가는데 계속 들려오길래 뒤를 돌아봤습니다. 이런. 자동차 크락셕을 누르며 느리게 제 뒤를 따라오고 있는 아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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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에 그저 멎쩍게 웃으며 조용히 열려진 문에 올라탔습니다.
그러고는 교회 집사님들도 많았던 자동차 안에서, 왜 혼자서 걸어가고 있냐는 물음을 흐지부지 얼버무리며 집까지 오는 내내 구석에서 쥐죽은 듯 조용히 쳐박혀 있었답니다.
아마 그때 절 보았던 친구들, 아빠, 선생님에게는 기억조차 없을 일이겠지만 저만은 사건의 진상을 알기에, 그 봄소풍.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종종걸음을 내딛으며 괜스레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던 그 떨림,
친구들이 이름을 부를때마다 흠칫놀라고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웃는게 웃는게 아니었던 그 겸연쩍음,
혹시나 나를 본 아이들이 나중에 선생님께 이르진 않을까 하는 섣부른 그 두려움,
아빠 차가 뒤에 있었을 때의 그 당혹감,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는 일말의 그 기대감,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까지 걸었던 건 뭐가 되냐는 그 허탈감,
정말 자동차로 한바퀴 돌아볼 거였으면 그냥 아빠차를 타고 갈 걸 하는 그 후회,
왜 이렇게 빨리 내려온 것인지 괜한 그 빈정거림,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 아까우니 그냥 걸어가야겠다는 0.1초간 고민했던 그 자존심,
당당히 걸어가겠다고 말해놓고 다시 차에 올라설 때의 그 민망함,
왜 혼자서 걸어가냐는 물음에 얼버무리면서 혹시라도 자세히 물어볼까봐 긴장했던 그 조바심,
10분이 한 시간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졌던 자동차 안에서 숨막히던 그 압박감,
집에 도착했을 때 어느 순간보다 더 컸던 그 안도감.
그 후, 다행히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혼자만의 비밀로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랬는지, 내가 참 영악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며, 해마다 봄이면 그 당시의 치기 어린 행동이 생각나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교훈: 꼼수부리지 말자, 몸소 뼈저리게 느낀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