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언덕에 가면 보일까? ㅣ 소원우리숲그림책 25
한라경 지음, 무운 그림 / 소원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어떤 관계는 말보다 온기가 먼저 다가온다. 서로의 발걸음이 닿는 작은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달언덕에 가면 보일까?》는 바로 그 깨달음을 섬세한 그림과 포근한 이야기로 전해 주는 동화이다. 토끼와 두더지가 함께 떠나는 짧은 여행 속에는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두 친구의 깊은 시선이 담겨 있다.
달이 환하게 떠오른 어느 밤, 토끼는 하늘에서 내려앉은 빛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아름다움을 친구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두더지는 눈이 나빠 달빛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누군가는 이 차이를 ‘단점’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이야기는 이 다름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어떻게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토끼는 두더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마음을 기울이고, 두더지는 토끼가 전하려는 마음을 느끼며 용기를 낸다. 결국 두 친구는 ‘달언덕’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향해 나아가기로 한다.
달언덕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높은 다리를 건너야 하고, 깜깜한 터널을 지나야 하며, 때로는 겁을 주는 그림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친구는 길 위에서 서로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다. 평소에는 소심해 보이던 두더지가 어둠 속에서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길을 안내하고, 토끼는 놀라움 속에서도 두더지를 신뢰하며 함께 걸어 나간다. 친구가 가진 한 가지 약함은 다른 순간에는 강함이 되기도 하고, 그 강함은 함께 있을 때 더 큰 힘이 된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일깨워 준다.
여정의 한가운데에서 두더지가 토끼에게 건네는 진심은 독자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적신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아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작가는 그 단순한 진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동시에 어른의 마음까지 울리는 방식으로 표현해 낸다. 그림 속 작은 흔들림, 달빛이 비치는 질감, 친구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표정 하나하나가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삶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달언덕에 도착한 순간, 두더지는 마침내 밝은 달을 바라본다. 그 빛은 단지 달이 비춘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건넸던 용기와 신뢰가 쌓여 만든 빛처럼 느껴진다. 두 친구는 비로소 깨닫는다. 함께 걸어온 시간 그 자체가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였음을. 우리는 삶 속에서 때때로 두더지가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 이끌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걷느냐’, 그리고 그 길에서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정성껏 살피느냐일 것이다.
이 동화는 아이들에게 우정의 소중함을 알려 줄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거창한 말도 큰 용기도 필요 없다. 그저 곁에서 손을 맞잡고, 조용히 걸음을 맞추어 주면 된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이전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달언덕에 가면 보일까?》는 그런 변화의 순간을 담아낸 책이다. 어둠 속을 지나 달빛 아래에 서기까지,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함께 길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함께 걷는 삶의 의미가 한층 더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달이 크게 보이는 곳이 어디든, 그 자리에는 늘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우리를 더 나은 길로 이끌어 준다. 작은 용기와 따뜻한 손길로 서로를 비추는 삶—그것이 이 동화가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