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마법사 1
나루시마 유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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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는 애매모호하니 순정만화같기도 한데 항상 소년물 측에 끼어져 있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내용은 어여쁜 미소년들이 나와서 마법사가 되가는 과정, (쿨럭)이 아니라 이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을 잃고, 세상으로부터 배제되버린 세 소년(한명은 소년이라기엔 좀 나이가 많죠..) 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현대, 신전 기사단이라느니 귀노가라느니, 기타 등등 각기 표명하는 바가 다른 집단들이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며 존재하는 가운데 이능력자, 그것도 어마어마한 이능력자가 셋 등장한다. 그래서 그 오컬트 집단들은 이러한 이능력자를 각기 포섭하거나, 아니면 세계에 위험이 된다해서 제거하거나 하려든다. 하나는 신전기사단의 대사제, 레비이고... 또다른 하나는 귀노가의 양자, 천덕꾸러기인 카르노, 마지막 하나는 일본의 평범한 고교생을 가장한 풍수사(음양사랄까?), 이부키이다.

흔한 설정이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설정보다는 각 인물의 개성이다. 딱 보기에, 각 캐릭터는 살아 숨쉰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은 각각의 캐릭터가 지극히 인간답기 때문이며 적당히 감정이 절제된 컷과, 그리고 그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것 같다는 논리적인 설득력을 가진 내러티브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받으면서도, 고통스런 시간을 통해 성장해가는 그들의 인격이 그들이 바로 우리집 옆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다. 인간의 보편타당할 본성을 지니고 각기 개성에 따라 같은 감정을 가지고도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대응하며 성장해가는 인물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이란 것이다.

구성이 무척이나 탄탄하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쓴게 눈에 보인다. 또한 그림도 엄청 예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컷의 활용이나 움직임 면에서 어색함이 없어 몰입하기에 좋다.

아마도 읽으면 나루시마 유리라는 작가에게 푹 빠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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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전전야 1 - 드래곤 북스 031
진산 지음 / 시공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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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은 사천당문의 후속편이다. 하지만 나는 사천당문에서는 느끼지 못한 것을 여기서 느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그 서글픔, 죽음.. 무협이라는 장르안에서, 호쾌한 액션 안에서 나는 그런 것을 느꼈다. 그래서 너무나 서글펐다. 물론 마지막에는 해피엔딩이라고 할만 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어떠한 지위에 놓임으로서 그것에 속박되는 삶이란 것의 처절함.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다.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암시를 걸면서까지 적대시해야 하는 마음,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감사하면서도 냉정하게 뿌리쳐야하는 마음, 주군의 자유를 바라면서도 또한 속박의 대표자, 감시하는 자로서 남아야하는 충신의 마음... 미워하는 자를 죽이려던 칼날이 원하지 않게 사랑하는 자에게로 돌려졌을 때의 그 아픔, 그렇게 함께 죽어가면서 느꼈을 회한, 믿었던 자에게서 뻗어져 나온 비수, 그래서 믿었던 자에게 독을 내려야 하는 부담, 잔혹함, 믿는 자의 어미를 죽이리라고 결심할 때의 마음,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

어찌보면 이것은 인간관계를 통해, 관계를 통해 자아가 형성된다는 드래곤라자의 주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도 같다. 관계를 통해 자아가 형성되기때문에, 그 관계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인간. 그리고 그 관계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 하면서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하는 상황의 비극. 결전전야에서는 사천당문보다도 그러한 사유를 더 깊이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문무쌍영이 살아갈 수 있었을 때, 무가 탄 배를 향해 당군명이 뛰어들었을 때, 그들의 자유가 생겨났듯이 나또한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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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김소형 옮김 / 조은세상(북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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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번역이 라다가스트에 올라오던 걸 조금 봤는데, 요코의 어물쩍거리는 성격이 싫어서 처음에 때려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요코가 그렇게 씩씩하게 자라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믿음을 먼저주는 법도 배우고, 용기를 배워서 진정한 왕이 되어가는 게 너무나 기특했다. 훌륭하게 자라준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마치 일부러 그런 것을 노린 것처럼, 그렇게 훌륭해진 요코를 보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코우린-타이키... 나는 이녀석은 좀 싫어한다. 그리고 태왕도 별로다. 하지만, 타이키 녀석이 그렇게 어리버리한 주제에 도철을 사령으로 절복시킨 걸 보니 그것 또한 기쁘다. 십이국기는 아무래도 육성시물레이션과 같은 뿌듯함을 위한 소설 같다.(이건 내 주관적 생각일뿐...)

연왕과 엔키. 참 씩씩한 녀석들이다. 여러가지 힘든 일들을 겪고도 절망하지 않고,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름답다. 게다가 그 엉뚱함이라던가 태평함도 좋다.

여기는 내 세계가 아니야. 하는 이야기는 이해되질 않는다. 다른 세계에 떨어져서 적응을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나라에 혼자 떨어진 것보다 더 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거짓된 삶일까. 그 세계에서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세계'가 아닌 것일까. 그건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도 내게 주어진 역할 따위는 없다. 우리는 그저 살아갈 따름이지만, 그것이 '거짓된 삶'일까? 그래서 '나의 세계'라고 부를 수 없을까? 소설에서는 왕이니 백성이니 주후니 신선이니 역할이 주어지지만 우리의 세계에서는 아니다. 역할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거짓에 불과하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세계에 가더라도, 그것이 '나의 세계'가 아니라고, 내가 살아갈 곳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거기서 왕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닐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삶인데, 그게 원래 다들 살아가는 방식인데, 그걸 거부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왕은 실도하지만 않으면, 영원하다. 영원히 옥좌에 앉아, 영원히 그 부담을 짊어지고 가야한다. 나는 왕이 실도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도 인간인데... 그 부담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연왕이 '심심해지면 나는 안을 부숴보고 싶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당연한 거다. 요코가 씩씩하게 자라준 것은 좋은데 사실 조금 무섭다. '왕'이나 '기린'은 결국은 희생양, 자기 스스로 살아가는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는 꼭두각시. '왕'이 아니고서는 생명을 이어갈 수조차 없는 그 것들은 사실은 잔혹한 족쇄인 것이다. 왕은 눈물을 마시는 새, 라는 건 정확한 말인 거다. 변화할 수 없는 건 인간에겐 아무래도 괴로운 일. 아무런 변화없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삶을 끊으려해도 .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다. 나의 죽음은 만민의 죽음. 십이국기의 이면, 불로불사의 이면을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도 더 끔찍한 패러독스에 말려 들어 있는 것이다. 십이국기란 세계는...

오노 후뮤미씨는 사실, 요코의 성장기같은 휴머니즘으로 포장해서, 끔찍한 패러독스를 가진 세계관을 통해 또다른 판타지 호러를 만들어내려던 건 아닌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멸망할 수 있기에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인데... 멸망할 수 없는데도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그 커다란 부담을 이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대단하다. 감동스러운 거다.

그러나 번역본 자체의 질은.... 말하기 싫을 정도로 엉망이니까 일본어를 공부해서 원서를 사서 읽는 편이 더 낫다. (게다가 원서가 훨씬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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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2 - 비천편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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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치한 특수효과의 영화를 보고나서, 도대체 원작은 어떤 소설일까 궁금해졌다. 세이메이를 그리는 소설, 만화 들이야 넘쳐나는데 어째서 유독 이 책의 이야기가 대중에 회자되는 것인가 궁금하였다. 사볼까, 말까, 요즘도 나오고 있긴 한건가... 기타등등의 생각을 하다보니 도서관 신간코너에 딱 꽂혀있는 음양사 두권, 그래서 집어와버렸다.

아담한 하드커버, 겉모양은 일단 합격, 겉표지를 벗겨낸 것이니 표지에 대해서 말할 바는 아니지만, 단단하고, 작은 촉감은 좋았다.

그리고 내용, 옛날 구전소설풍의 읖조림과 아름다운 시귀와 묘사, 그리고 멋진 두 콤비. 신비하고도 아름답고도 어딘가 쓸쓸한 각각의 에피소드까지... 맘에 들었다.

우선 히로마사군이 너무나 좋았다. 너무나 진실한 사람, 사랑할 줄은 알되, 미워할 줄은 모르는 참으로 좋은 사람이다. 요즘은 조금 악당이 좋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르다. 그저 성실하고 진실할 뿐인 그런 사람이지만, 매력있게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파의 비곡을 듣기위해 3년을 꼬박 매일매일 오사카까지 다녔다는 그 열정도 멋지고, 피리로 다른 세계의 것들마저 위로할 수 있음이 좋았다. 근데 히로마사의 인연은 영영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세이메이에 평생 묶여사는 것이야??

세이메이를 보면, 정말로 영화에서 잘 캐스팅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박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미소와, 하얀 얼굴, 하얀 손, 우아한 몸놀림까지 그는 참으로, 소설에서 말하듯 구름같은 남자다. 이면의 세계에 있는 것을 알고, 반쯤은 초월한 듯, 반쯤은 사람에 머무는 듯 사는 그 모습은 물에 비쳐 흔들리는 달 그림자 같기도 하다. 그리고, 셜록홈즈같기도 하다.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콤비플레이를 보며 내내 떠올린 것은, 셜록홈즈와 왓슨. 세이메이는 아무말도 안하고 히로마사를 미끼로 삼거나, 모든 사건이 해결된 뒤에야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곤 한다. 마치 셜록홈즈가 왓슨에게 아무말도 안한 채 범인에게의 미끼로 삼거나, 다 끝난 후에야 이러이러하여 이렇게 추리하였다고 사건경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시대다운 인물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인 히로마사와 왓슨과 이단아같은 세이메이와 셜록홈즈라는 구도까지. 엮으려고 하니 한없이 엮어진다. 물론 그러한 추리장르의 틀을 지키는 바람에 더 흥미진진하고, 캐릭터간의 대비적인 성격을 통해 각각의 캐릭터를 더 잘 살린 건 사실이다. 사실 이런 구도에는 아무 불만도 없다. 게다가 세이메이가 셜록홈즈처럼 모든일에 척척인 것도 아니고, 히로마사가 없으면 세이메이가 없고, 세이메이가 없으면 히로마사가 없는... 마치 음양의 조화와 같은 콤비이기도 하니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콤비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음양사에서는 그걸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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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의 여행 5 - NT Novel
시구사와 케이이치 지음, 김진수 옮김, 쿠로보시 코하쿠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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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자자하던걸 1편을 본 순간 바로 빠져들었다. 너무 사색적이라거나 모든 걸 설명하려든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긴 했지만, 우화로서 보아주기엔 충분했다. 사막의 몽롱하고 갈증이 이는 분위기, 아무도 없는 나라의 텅빈 허전함,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며 떠돌면서도 그 자유로 인한 고독으로 허망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어린 소녀(여자로 구분하기엔 확실히 너무나 어린.)가 등장하는 이상한 이야기였다. 읽다보면 나조차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괴하고, 그리고 슬프고, 따스하고, 차가운 이야기들이 시간순서에 관계없이 계속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두개 있는데 하나는 콜로세움이란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3일 후면 없어질 나라의 이야기이다.

콜로세움의 이야기.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자는 자신의 아들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며, 그로인해 원한을 품은 아들은 다시 왕을 죽인다. 순환고리. 파괴에 물든 마음은 다시 그 순환고리를 이으려했다. 멋진 총격전 끝에, 아들은 왕을 노릴 수 있는 자리 앞에 섰다. 그러나 키노는 그가 어찌하기도 전에 일그러진 얼굴로 웃어제끼는 왕의 얼굴에 마지막 총알을 날린다. 피로 이어지는 악연의 순환... 안타까운 마음.. 높은 희망.... 한 없는 좌절.... 제대로된 문장으로 표현할 수도 없는 이상하고 미묘한 감정의 그림들이 이어진다.

두번째 이야기. 한번도 떠나는 것을 주저해본 적이 없는 키노가 떠나갈 것을 머뭇거릴때는 오히려 머물 수 없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죽음을 알면서도 재앙을 알면서도 마을을 떠나 살고 싶지 않다고 죽음을 선택해버리는 그들은 난 이해할 수 없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멍청해서 그 죽음을 초연하게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화가나서.... 난 울어버렸다. 키노도 여관일을 하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마을의 그 아이와 키노는 너무나 다르다. 키노는 자유를 원했고 그 아이는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키노는 그 겹쳐보이는 모습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른이 되는 수술을 받지 않은 건 잘 한 걸지도 몰라. 광기어리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키노의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도 너무 서글프다.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보였던 그마을이 용암에 덮여 사라져버림에 내가, 키노가 울부짖은 것은 아마도.... 비뚤어진 세상에서 자유로운 만큼 잃어야했던 사랑이라던가, 정겨움 같은 것들을 마지막으로 찾아볼 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키노의 여행은 시간순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니 이 여행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보는 키노의 여행은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제는, 키노가 머물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키노는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여행은 목적지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키노는 이제 그것을 잃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결정할 권한을 져버렸다. 아이들에게는 마을의 종말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고 마을에서 내보내려 애썼다. 자신들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다른 어딘가에서 평온하게, 아이만은 평온하게 살아주기를 바랬겠지. 그러나 아이는 알았다. 그리고 가족과 함꼐하기를 선택한다.

어리석지만,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찌했을까. 비뚤어진 결정이지만 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키노의 여행은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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