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헤어졌어요
신경민 지음 / 북노마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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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마당에는 철마다 꽃이 피고 지고 나무가 자랐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 꽃을 보며 자랐다. 꽃은 예뻤고, 화려했고, 탐스러웠고, 또 향기로웠다. 아빠는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꽃이름을 알려주소 향기를 맡아보라고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예쁘다"고 말하면서 손을 먼저 내밀었다. 그러면 아빠는 깜짝 놀라시며 그렇게 하면 "꽃이 아야 한다"고 "아파서 운다"고, 그러니까 "눈으로만 보고 눈으로만 예뻐해줘야 하는"거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마음보다 몸이, 한 두걸음 먼저 움직였다.
예쁘니까 만져보고 싶었고, 예쁘니까 움켜쥐고 싶었고, 예쁘니까 갖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계산하거나 따지지도 않았고, 그래서 때론 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행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꺾어온 꽃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시들어 버린 것을 눈으로 보고 난 후에야 나는 아빠가 말하는 "꽃이 아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정말 예쁜, 그래서 아껴주고 싶다면, 그저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것라고, 살다보면 그런 때가 온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꽃이 예쁘다"고 말하면서 꽃을 꺾었고, 그렇게 '꺾어진 꽃'은 물기 하나 없고 볕도 잘 들지 않는 내 방 어딘가에서 조용히 시들어갔다.

 

그런데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그 순간부터 나는 절대로 꽃을 꺾지 않게 되었다. 꽃의 화려한 빛깔이나 매혹적인 향기에 쉽게 마음을 주지도, 보이는 모습이 전부일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앞서지도 않았고,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즈음 나느 예쁜 게 좋아서 다가선 마음이 상대방을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과 반대로 예쁜 게 좋아서 다가온 마음이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불편한 진실을 느꼈던 같다.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했을 때,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몰라서 섣불리 내민 마음에 다쳤을 때에도 가끔씩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정말 예쁘고 그래서 아껴주고 싶다면, 그저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 거라고, 살다보면 그런 때가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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