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엄기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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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대해서든 교육에 대해서든 강의나 토론을 마치고 나면 "희망이 뭔가요?"와 마찬가지로 꼭 듣는 질문 있다. 대안에 대한 질문이다.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였다.

"당신이 말하는 문제점인지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런 사례들이나 분석 같은 건 이만 됐고, 그래서 대안이 뭐야?"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한다.

자기의 개별적인 사례를 개별적으로 풀고 싶다는 의지는 있을지언정 문제를 공통의 것으로 인식하고 더불어 해결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대안의 개인화"에 빠져 있다는 말이다.

대안에 대한 질문은 저사람의 운명이 나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면 저 사람과 나는 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나누고 토론하는 데서 대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얼굴을 쳐다보기는 커녕 내 얼굴 쳐다보기도 바쁘다보니 공감을 통해 대안을 나아가지 못하고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을 치료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자기계발서나 '위로'서들도 이 연장선 상에 있다. 이게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문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네 문제이니 네가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다. 그래서 위로는 오개가지 않는다. 한 친구는 이것이 '뽕'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다.

<중략>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절망과 불안을 집단적인 참여가 아니라 개인적인 위로를 소비하는 형태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럼 왜 집단적인 참여가 아닌 개인적인 위로일까? 우리는 생존과 실존의 모든 의미가 의문시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때문에 '내 것'에 대한 분명한 소유의식이 '공통의 것'에 대한 감각을 훨씬 앞지른다. 공통의 것을 만들고 거기에 참여하기보다 그나마 있는 내 것을 지키는 편이 중요하다. 

냉소가 아무리 마음의 철갑옷이라고 하더라도 가끔 우리 삶에는 통제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밤손님처럼 방문한다.

바로 삶을 삶답게 살고 싶다는 의지이다. 이 의지가 우리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눔으로 이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하는 가에 대해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희망이 보이고, 희망이 보여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래서 대안에 대한 이야기기는 앞서 말했듯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면 희망은 없는 것이고 희망이 없으니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덫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비록 저자는 대안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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