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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갇힌 호랑이가 야생의 자유로운 호랑이를 흉내낸 것이듯, 인간 전시장에서 전시된 야만인은 야만인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이 야만인에 대해 품고 있는 선입견에 맟춰 연출된 것이었다. 동물 전시가 되었건 인간 전시가 되었건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흥행을 목적으로 조정된 혹은 조작된 현실을 현실인 양 제시한다. 조련이나 연출은 뒤로 감춘 채. 인간 전시회가 성공을 거둔 것도 그것이 현실인 양 제시되었기 때문이며. 시청자들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의 진짜 현실을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스펙터클은 자유롭고 다양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환상을 심어주지만, 사실은 예견 가능하고 인위적인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문자아동이 개선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혹시 개선 불가능한 아동이 있더라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겠는가? 실제 현실처럼 극적인 사건이라곤 일체 일어나지 않는 밋밋한 일상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겠는가?
저 자는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길들이기 장치를 통해 스펙터클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부각시키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현실을 다듬고 유형화와 분류가 가능한 틀에 박힌 표본들을 제시하며. 관객은 자신을 그 표본과 동일시하거나 구분지음으로써 스펙터클에 길들여진다/ 우리는 동물원에 갇힌 야수성잃은 맹수에 길들여지듯. 리얼리티 TV가 제공하는 야성성잃은 현실, 모조 현실에 길들여지고, 동물원 동물을 보고 맹수를 보았다고 착각하듯이 모조 현실을 현실로 착각한다. 일찍이 기드보르도 스펙터클을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오인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하며 스펙터클의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는가. 이렇듯, 동물원이나 TV화면앞에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전시물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보는 것은 스펙터클이 보여주고 싶은 대로 배치한 현실인뿐이다. 따라서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것, 낯선 것, 동화될 수 없는 것이 혀용되지 않는 세계다. 다른 것이 철저하게 배척당하는 세계인 것이다. 바로 이점을 저자는 리얼리티 스펙터클의 가장 큰 위험으로 보고있다. 맹수가 모두 길들여진 짐승으로 바뀌는 세계, 다른 것이 모두 닮은 꼴로 환원되는 세계라니 참으로 섬뜩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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