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와 다투었다. 여행계획 때문이다. 투정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여행계획은 아내가 주도했다. 교통, 숙박, 일정 등 복잡한 고민을 대신 했다.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따라가면 되는 거였다. 요즘 예전과 다르게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녀와 대화를 했어야 했다. 여행을 생각하게 된 과정들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다. 온갖 예기불안들을 처리하기 바빴다. 쳐내다 지쳤다. 결국 주장을 접었다. 그녀는 대안이 없는 반대를 싫어한다. 대안을 고민해야 했지만 더 이상 원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심리 검사를 받았다. 기질 및 성격에 대한 검사였다. 부부관계 상담 교양 프로그램에서 심리 평가할 때 자주 사용한다. 자주 보았던 검사였기에 결과가 궁금했다. 평가 항목들을 표준분포도로 표현했다. 대게 측정치가 평균 수준으로 나와야 했다. 대부분의 항목이 극단적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림이었다. 췌장염때문일까? 30대 중반 갑작스레 찾아온 췌장염으로 일상이 멈추었다. 네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위험을 극도로 회피했고 계속되는 수술로 인내력은 바닥을 보였다.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자율성을 잃어갔고 누구의 위로도 와닿지 못했다. 회복이 필요하다.
아내가 계획했던 여행은 갑작스럽게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갔어야 했지만 가지 못했다. 병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 속에 계획을 품고 기다렸던 것이다. 얼마나 가고 싶었을 여행이었을까? 수년을 미뤄온 여행이었다. 이제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미안했다. 쌓아둔 만큼 가야할 곳이 많다. 목적은 휴양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