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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인지자본주의』저자 조정환   

* 인지혁명을 위한 테제. 저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조가 될 거 같습니다^^
 


 

 

축적을 위한 인지혁명을 공통되기를 위한 인지혁명으로,
인지자본주의에 맞서 절대민주주의를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에 즈음하여

 
조정환(『인지자본주의』, 『아우또노미아』저자,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새로운 노동 형태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수탈체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을뿐만 아니라 ‘인지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혁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로『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해주시는 일곡기념사업회와 일곡학술상 심사위원 여러분, 이 책을 만들고 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온 정성을 기울인 도서출판 갈무리 출판활동가 여러분, 맑스의 혁명정신을 기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참가하신 맑스코뮤날레 회원/참가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인지자본주의에 대항하여 고난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국내외 수많은 노동형제 여러분, 사실상 이 책의 공동저자들인 여러분들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구상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 안후이성의 17세의 한 청년은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고 36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중국’은 조반니 아리기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이며 친환경적이고 인적인 자원에 의존해 보다 평등한 분배를 실현할 새로운 문명으로 기대한 거대 주권국가입니다. ‘아이패드’는 자본주의적 미디어, 정보, 인지혁명의 총아입니다. 그 청년이 제공한 ‘신장’은 현대의 첨단 생명공학이 돼지와 인간 사이의 이종간 이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몰입하고 있는 바로 그 생명기관입니다. ‘사고파는 상품’은 맑스가 부르주사 사회의 ‘세포’라고 불렀던 것, 즉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구성단위입니다.
 
주권-인지-생명-상품이라는 역사적 형식들이 서로 교직되고 있는 이 징후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역사가 우리에게 물려준 모든 공동체 형식들이 사실상 끝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와 사찰은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혈연의 공동체인 부족이나 씨족이나 가족은 잔재만 남고 해체되었습니다. 정치의 공동체를 자임했던 국가는 대중 위에 군림하면서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흡혈기관으로 변했습니다. 저항의 공동체인 노동조합도 정규/비정규/실업, 남성/여성, 내국인/이주민, 장년/청년 등 고용형태, 성별, 국적, 세대 등에 따라 갈라진 현재의 노동분할체제를 유지하면서 특권을 사수하는 기관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전설의 상아탑처럼 시장과 거리를 두는 지성 공동체를 자임했던 대학은 오늘날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그 정점에 이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지식공장으로 되면서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름은 ‘우리’를 ‘타자들’과 대립시키는 낡고 협소한 집단심리를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되고 있고 ‘자유’라는 이름은 개인주의와 경쟁을 자극하면서 우리들을 더 깊숙이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미사여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름마저 평등하게 가난한 인민들과 노멘클라투라들의 가족적 집단권력 사이의 저 섬뜩한 대비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권력 장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실존하던 공동체 형식들의 이러한 붕괴와 해체와 변질과 좌절은, 삶의 수준에서 전개되는 현기증나는 변화와 결합되면서, 우리들을 유례없이 깊은 고립감과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더 이상 대안은 없다”는 절망의 감정이 확산되고 “대안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냉소주의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절망감과 냉소적 태도에 그 나름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며 제안되는 대안들이 새롭다기보다 낡은 것들을 반복하는 것들이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자연으로 돌아가자”, “전통적 공동체 형식들을 수선해 보자”는, 이른바 ‘진보파’가 내놓는 보수주의적 대안들과, “테크노토피아”, “디자인시티”, “환상여행”, “우주이민” 등 이른바 ‘보수파’가 내놓는 진보주의적 대안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판타스마고리아[환등상]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화성편도탐사자’ 모집공고가 나가자마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모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이 지구상의 절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는 지표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인지자본주의』는 우선 인간들의 지적 정서적 인지활동이 폭증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것이 자본의 핵심지대로 강제편입되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합니다.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는 세계에 대한 낡은 인지양식들을 쓸모없게 만듭니다. 감각, 지각, 정서, 기억, 지식, 추론, 판단, 결정, 소통 등 낡은 공동체들에 의해 규정되어온 우리의 개체적 및 간개체적 언어활동의 혁신 여부가 인류의 진화 가능성을 결정지을 기준으로 부상합니다.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새로운 인지적 활동양식들이 창출될 필요성은 그만큼 커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독, 냉소, 절망, 공포 등의 인지적 감정들은 단순히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간을 경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관적 통찰이 정서적으로 발현되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커다란 고독과 공포 속에서 홀로 생각하면서 누구에게 수신될지 모를 언어적 신호들을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게는, 파업, 집회, 시위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호소의 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인터넷, 스마트폰, SNS는, 새로운 인지적 공동체를 향한 사람들의 추구와 모색이 드러나는 다른 장소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한편에서, 이 절박한 생명의 아우성과 몸부림이 축적의 회로를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자본은 사람들의 삶의 의지, 욕망, 생명의 약동에 운하를 뚫어 그 에너지를 이윤의 곳간으로 흐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대지를 부동산 및 금융 투기의 싸움판으로 만들고, 생명의 그물망을 특허, 상표, 사유물로 조각조각 찢고 사회적 노동의 세계에 보장(정규직), 비보장(비정규직), 추방(실업)의 장벽을 설치하고, 빚쟁이가 되지 않고서는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들며, 특이한 언어적 나눔들을 프로토콜로 표준화하고, 무수하게 겹치고 다시 나뉘는 소통의 오솔길들을 정보고속도로로 대체하고, 사람들의 독특한 인지적 소통능력을 전화기, TV, 자동차가 갖는 스마트함(영리함)인 것처럼 사물화하며, 인지활동이 넘쳐 흐르는 바다에 방화벽을 쌓고, 사람들의 신체적 언어적 협력이 이루어지는 실제적 공동체를 금융공동체로 시뮬레이션합니다. ‘자본의 공동체’는 이런 방식으로 한편에 거대한 금융적 정보적 스펙타클을 만들고 다른 한편에 신용불량자, 테러리스트, 디지털문맹자 등의 이름을 갖는 그 ‘외부’를 만들어내 추방함으로써 생명과정의 부단한 이윤화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전환의 시간이 도래한 것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촛불봉기가 폭발한 해이자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이 그것입입니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경제위기로 실제화되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모든 기술적 조치들은 더 큰 악순환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과 사기, 정치와 협잡(挾雜),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들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최근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같은 것이 전 세계적으로 예외가 아니라 정상임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자본이, 특이한 개체되기와 협력적 공통되기를 두 측면으로 삼는 다중의 끊임없는 공통적 생성을, 그 끝을 알기 어려운 갖가지 인지장치 사슬망을 통해 수탈하는 환상장치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이 게임의 끝이 자신들의 죽음이자, 인류의 죽음이고, 생태계의 종말일 수 있음을 집단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해 이후로 우리는, 2005년의 프랑스 방리외 봉기가 일과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슬란드, 그리스, 영국 등 유럽을 순환하는 다중의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2011년 겨울 튀니지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을 휩쓴 혁명의 파도를 목격했습니다. 사람들을 겨냥해 휘둘러지고 돌진하고 발사되고 날아드는 곤봉, 낙타떼, 총, 전투기에 맞서 자유, 존엄,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우리는, 이곳의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노동불안정, 고물가, 빈부양극화, 부패 등의 문제를 확인합니다. 모로코에 인접한 유럽 국가인 스페인의 다중들은 지난 5월 15일, 존엄, 자유, 민주주의는 분노 없이는 쟁취할 수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분노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제안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공명되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랍혁명에 이어 유럽혁명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어떤 시위자는 "겨울에는 북아프리카, 봄에는 중동, 여름에는 유럽, 그리고 이후에는 전 세계!"라는 희망의 일정표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촛불집회 당시에도 집단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했던 한국의 청년대학생들이 등록금, 법인화 등을 이슈로 거리투쟁과 점거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역사종말론과 포스트모더니즘론이 쓸고 가버렸던 혁명의 기운이, 1848, 1871, 1917, 1968 년에 이어 새롭게 약동하고 있는 이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새롭게 사유하도록 자극합니다.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한 전위정당 건설과 이것을 통한 노동계급 정치행동의 통일"이라는 레닌의 생각은, 오늘날 아랍과 유럽에서는, "인터넷과 SNS, 핸드폰 등을 통한 투쟁공동체의 구축과 이를 통한 다중적이고 삶정치적인 집단지성, 집단행동, 집단윤리의 생성"으로 번역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일한 목적을 갖는 이념적 통일"이라는 문제의식은 생태적 문제, 사회적 문제, 성적 문제, 문화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다양한 지각들, 감정들, 사유들, 행동들 사이의 인지적 소통과 인지적 조정"의 문제의식으로 전화하고 있습니다. 5회 맑스코뮤날레 주제가 ‘현대자본주의와 생명’인 데서 나타나듯이, 지난 날 "역사의 발전"의 문맥 속에서 고려되었던 정치적 변혁은, 오늘날, "생명의 진화"라는 더 근본적인 문맥에서 고려되고 있습니다. 역사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근대성을 이끌어온 과학과 지성이 그 역설과 한계를 드러내는 것도 바로 생명의 진화라는 문맥에서입니다. 원자들, 세포들, 유전자들, 뇌들은 생명의 그물망의 마디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갖가지 생물, 화학, 물리 실험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잠재공동체의 부설연구소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지적 혁명들은, "과학과 철학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자!", "지성이 지혜의 안내를 받도록 하자!", "정치가 윤리에 의해 이끌리도록 하자!" 등의 제안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2011년의 정치혁명들은 지난 세기의 역사적 체험들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이 심원한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피께떼로들은 "모두 다 꺼져버려! 우리 삶은 우리가 책임진다"고 외쳤습니다. 10년 후인 2011년 5월 15일 스페인의 시위자들은 이것을, "모두 다 꺼져버려!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로 번역했습니다. 언제든지 "너의 부는 나의 재산이요, 나의 손실은 네가 져야 할 짐이다"는 신조에 따라 움직이면서, 인지혁명의 에너지까지 축적의 곳간으로 운하화하려는 자본에 맞서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온갖 가짜 민주주의들, 껍데기 민주주의, 상대적 민주주의들을 꺼지게 만들, 진짜 민주주의, 실질 민주주의,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절대적 민주주의. 이 민주주의는, (1)사회적 부의 증대가 개체들의 희생의 심화를 의미하는 적대적 사회를 폐지하면서 특이한 개인(각개성)의 발전이 사회의 공통적 물(Ding=assembly=assemblage)적 진화와 상생하도록 만들고, (2)삶과 동어반복이 된 노동과정 그 자체가 (교환과 화폐에 의해 매개되는 경제적 가치과정을 거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실현되는 가치로서 기능하도록, 즉 그 자체로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3)타인에 대한 권력행사로서 기능해온 정치를 서로간의 활력의 교류로서의 언어과정으로 대체하고, (4)계급을 차이들의 놀이로 역동화하며, (5)인종이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인류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표현으로 기능하게 만들고, (6)착취공간인 메트로폴리스를 자유와 창조의 공원으로 전유하고, (7)지성을 직관의 동무로 만들며, (8)타자의 존재를 배제와 갈등의 조건이 아니라 사랑과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만듦으로써, (9)축적 대신 축제가, 강제노동 대신 놀이노동이 일상으로 자리잡도록 만들어 가는, 우리들 모두의 집단적이고 항구적인 운동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 자본주의가 낳는 이 미친 혼돈 속에서 새로운 조직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이 절대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운동 대열에 섞여 여러분들과 ‘함께 물으면서 걷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얻고 있는 것을 더 없는 기쁨으로 느끼며 둘 도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6월 4일
조정환
 

원문링크 :  http://amelano.net/23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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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 부르디외 사회이론으로 문화읽기
김동일 지음 / 갈무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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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2시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출간 기념 저자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책 출간과 함께 저자 강연 이벤트를 준비한 건 이번이 세 번째인데요. 출판 활동을 하면서 가장 설레는 일이 있다면 독자 분들과 저자 선생님을 잇는, 저자 강연을 준비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AIS(270).jpg(2010.12/ 갈무리/ 김동일)

책을 서점에 보내고 나면, 어떤 독자 분들이 갈무리 책을 읽으시고, 갈무리 책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되시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강연회에 오시는 한 분, 한 분을 뵐 때마다 살짝 긴장이 되기까지 합니다.*_*!

special_lecture(550).jpg 

오늘 이벤트의 조금 더 특별한 점은 정말로 많은 독자 분들이 참석해주셨다는 것인데요. ‘예술은 사회에, 그리고 사회는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고민되고 있고, 그만큼 삶의 중요한 문제 인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의 참여를 통해 갈무리 책의 츨긴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분들께서 이러한 고민들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자리였기를 바랍니다. 

오늘 김동일 선생님의 강연 가운데 특히 와 닿은 부분이 있었는데요. 예술을 본질로서 파악하지 않고 실천(practice)으로서 사유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을 평가하기를 거부하고 작품의 시 ․ 공간적 맥락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를 짚어 주셨는데요. 지배계급이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동질화 되고, 하나의 가치를 위해 삶을 경쟁시키는 맥락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국내 미술관들이 대변하고 있는 사회계급들을 분류 하시면서, 대안 공간이 더 적극적으로 철거민들, 이주민들과 같은 다중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장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장내 투쟁이 사회공간의 권력관계를 역전하기 위한 분투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많은 분들과 대화하지 못한 게 아쉬운데요.^^;  또 준비했던 저자 사인회를 깜박하고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ㅠ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 행사이지만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오늘 참석해주신 독자 분들께 정말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신청하시고 미처 오시지 못한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다음 행사 때 다시 뵙겠습니다.*_*!매일 매일 활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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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제국주의 - 개정판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 김성곤.정정호 옮김 / 창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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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왔네요! 분위기 있는 책표지가 우선 눈길을 끄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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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아우또노미아총서 20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 / 갈무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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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올해 11월 26일(금) ~ 27일(토) 백남준 아트센터 국제 예술상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브뤼노 라투르의 수상연설문이자 Making things public 전시회 도록의 서문이기도 한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어떻게 사물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가」(백남준아트센터 팜플렛, 2010)에 대한 조정환 선생님의 해석입니다.
원문 주소: http://amelano.net/?document_srl=21135&mid=filozo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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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갈 무리, 2009)의 저자이자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의 수상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수상연설문이자 Making things public 전시회 도록의 서문이기도 한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어떻게 사물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가」(백남준아트센터 팜플렛, 2010)에서 물정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그가 이해하는 물(物)정치Ding-politik는 Ding, thing을 그 어원인 모임 혹은 집회assembly로 해석함으로써 성립된다. 그는 정독을 요하는 긴 논의 후에 자신의 물정치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한다.
 


a)정치가 단지 인간에게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문제들이 서로 엮인 상태로 혼재하고 있을 때

b)객체가 물이 될 때, 즉 사실의 문제들이 그것들의 복잡한 얽힘에 길을 비켜주어 공동관계concern의 문제로 될 때

c)모임이 더 이상, 가상 의회를 건설하는 초기 전통에서의 기존의 구체globe나 돔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때

d)언어 손상, 인지적 취약성 및 온갖 종류의 장애에 의해 부과된 내적 한계들이 더 이상 부정되지 않고 인공보철물이 받아들여질 때

e)모임이 협의의 의회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고 정당한 모임을 추구하는 수많은 다른 아상블라주들로 확장될 때

f)모임이, 더 이상 신체, 리바이어던, 혹은 국가 등과 등가적이지 않은, 임시적이고 깨지기쉬운 유령대중(Phantom Public) 아래에서 이루어질 때

g)그리고 끝으로 정치가 연속의 시간에 대한 강박에서 해방되어 물정치가 가능하게 되었을 때

에 도입되는 등급의 리얼리즘realism이다.(p. 30;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번역을 포함하고 있는 한글번역문을 무시하고 다시 번역했다.-조정환)



라투르의 논의는 더 이상 신체로서의 민중이 불가능하고 의회는 물론이고 노동자들만의 평의회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며 재현과 매개의 가능성이 새로운 조건하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공산주의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공동체를 추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되어야 할 공통세계Common World가 무엇인가를 상상한 성급한 방식에 있다"(p. 29)는 단언은 이것을 증언한다. 
 

신체, 리바이어던 방식의 모임을 통한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다중 개념은 라투르의 유령대중과 보조를 같이한다. 하지만 다중 개념은 살을 통한 새로운 몸의 구축을 전망한다.(네그리와 하트의 『다중』 2부 참조) 이러한 다중 개념은 라투르가 인식하고 있는 시대 개념과 정치 개념에 대해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라투르의 물정치 개념은 다중 개념이 빠지지 말아야 할 어떤 경계선을 알려주면서 그것이 나아가야 할 침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벗어나야 할 것은 인간주의이다. 인간, 기계, 자연 등이 물Ding로서 서로 관계하고 얽혀드는 현실에 대한 유물론적 통찰이 필요하다. 둘째로 벗어나야 할 것은 이성주의이다. 의회, 평의회의 방안은 이성에 의한 재현, 즉 이성의 궁전을 통한 재현을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제 물정치적 모임은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처해 있는 언어장애, 인지장애 등 다양한 장애에 대한 승인 위에서 그것들을 배제하기는커녕, 그 장애에 인공보철물을 장착하여 보정하는 것을 정치의 본령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보정이자 치유로서의 정치) 셋째 정치가 단일한 공동체의 구축으로 구심화되지 않고 다양한 아상블라주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하며 집회들의 모임뿐만 아니라 해산의 움직임까지 모으는 Commonwealth(공통체)의 구축으로 방향잡혀야 한다. 넷째 그러므로 다중은 하나로 묶인 실체적 대중이 아니라 유령 대중으로서 구성될 수 있다. 다중이 유령대중이라면, 그 주체는 진보와 연속이라는 연속의 시간 속에 살지도 않고 혁명과 대체라는 단절의 시간 속에 살지도 않는다. 라투르는 모든 것을 동시에 다루는 일련의 동시성으로서의 동거의 공간이 바로 그 유령대중의 활동공간이라고 말한다.(p. 29) 이것은 시간에 대해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결과적으로 어떤 진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시간의 화살이 앞으로 쏘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화적인 것이나 혁명적인 것과 같은) 매우 단순한 동거형태로부터 훨씬 더 충만한 동거형태로, 더욱더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는 동거형태로 서서히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 29; 번역은 조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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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열전, 2010년 서울의 모습을 투사하다
뉴욕열전 - 저항의 도시공간 뉴욕 이야기 아우또노미아총서 25
이와사부로 코소 지음, 김향수 옮김 / 갈무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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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maringo 님의 서평(http://blog.aladin.co.kr/mediabus/4267770)에 조정환 선생님이 엮은 글 입니다. 
원문 주소: http://amelano.net/kulturo/20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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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go 님은 『뉴욕열전』(갈무리, 2010)에 대한 서평 「뉴욕열전, 2010년 서울의 모습을 투사하다」에서 사부 코소의 생각을 읽어낼 하나의 중요한 해석틀을 제시한다. 그것은 도시재개발(젠트리피케이션)과 그것에 대한 저항의 맥락에서 『뉴욕열전』을 읽는 것이다. 이러한 독해법은 뉴욕 이야기를 현재의 서울 이야기로 흥미있게 번안할 수 있도록 한다. 용산, 두리반, 그리고 권선3지구 등은 이런 의미에서 살아 있는 뉴욕적 사건이다. 

녹색평론의 김종철은 오늘 아침 한겨레 칼럼에서 "용산참사란 무엇인가. 도시 재개발이니 뭐니 하는 온갖 거짓언어를 배제하고,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이 사회의 지배층이 서민들의 생활터전과 생계수단을 강탈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참사였다고 할 수 있다." (http://is.gd/haNJh)고 직언한다.  

이 정확한 직관에서한 가지만 수정하고 싶다. 도시재개발이란 말은 거짓언어라기보다 그 자체가 수탈을 표현하는 말이다. 역사에서 개발(발전)이 착취와 수탈을 표현했듯이. 사부 코소가 바라보는 뉴욕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맨하튼을 세운 바로 그 젠트리피케이션(재개발)의 산물이다. 그리고 도시주민운동과 도시를 무대로 전개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 예술운동들은 바로 이 재개발 과정에 대한 다중의 저항을 보여주며 이것이 다른 뉴욕을 구성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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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23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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