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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인지자본주의』저자 조정환   

* 인지혁명을 위한 테제. 저자의 문제의식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조가 될 거 같습니다^^
 


 

 

축적을 위한 인지혁명을 공통되기를 위한 인지혁명으로,
인지자본주의에 맞서 절대민주주의를
-일곡 유인호 학술상 수상에 즈음하여

 
조정환(『인지자본주의』, 『아우또노미아』저자,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새로운 노동 형태들에 대한 자본주의적 수탈체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을뿐만 아니라 ‘인지혁명’이라는 새로운 변혁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로『인지자본주의』(조정환 지음, 갈무리, 2011)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해주시는 일곡기념사업회와 일곡학술상 심사위원 여러분, 이 책을 만들고 알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온 정성을 기울인 도서출판 갈무리 출판활동가 여러분, 맑스의 혁명정신을 기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참가하신 맑스코뮤날레 회원/참가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인지자본주의에 대항하여 고난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국내외 수많은 노동형제 여러분, 사실상 이 책의 공동저자들인 여러분들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구상 가장 빠른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중국 안후이성의 17세의 한 청년은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고 360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중국’은 조반니 아리기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이며 친환경적이고 인적인 자원에 의존해 보다 평등한 분배를 실현할 새로운 문명으로 기대한 거대 주권국가입니다. ‘아이패드’는 자본주의적 미디어, 정보, 인지혁명의 총아입니다. 그 청년이 제공한 ‘신장’은 현대의 첨단 생명공학이 돼지와 인간 사이의 이종간 이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몰입하고 있는 바로 그 생명기관입니다. ‘사고파는 상품’은 맑스가 부르주사 사회의 ‘세포’라고 불렀던 것, 즉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구성단위입니다.
 
주권-인지-생명-상품이라는 역사적 형식들이 서로 교직되고 있는 이 징후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역사가 우리에게 물려준 모든 공동체 형식들이 사실상 끝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와 사찰은 기업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혈연의 공동체인 부족이나 씨족이나 가족은 잔재만 남고 해체되었습니다. 정치의 공동체를 자임했던 국가는 대중 위에 군림하면서 한 줌도 되지 않는 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흡혈기관으로 변했습니다. 저항의 공동체인 노동조합도 정규/비정규/실업, 남성/여성, 내국인/이주민, 장년/청년 등 고용형태, 성별, 국적, 세대 등에 따라 갈라진 현재의 노동분할체제를 유지하면서 특권을 사수하는 기관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전설의 상아탑처럼 시장과 거리를 두는 지성 공동체를 자임했던 대학은 오늘날 국립대학의 법인화로 그 정점에 이르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통해 지식공장으로 되면서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민족’이라는 이름은 ‘우리’를 ‘타자들’과 대립시키는 낡고 협소한 집단심리를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되고 있고 ‘자유’라는 이름은 개인주의와 경쟁을 자극하면서 우리들을 더 깊숙이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미사여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이름마저 평등하게 가난한 인민들과 노멘클라투라들의 가족적 집단권력 사이의 저 섬뜩한 대비를 ‘지도자에 대한 충성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권력 장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실존하던 공동체 형식들의 이러한 붕괴와 해체와 변질과 좌절은, 삶의 수준에서 전개되는 현기증나는 변화와 결합되면서, 우리들을 유례없이 깊은 고립감과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더 이상 대안은 없다”는 절망의 감정이 확산되고 “대안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다”는 냉소주의가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 절망감과 냉소적 태도에 그 나름의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며 제안되는 대안들이 새롭다기보다 낡은 것들을 반복하는 것들이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자연으로 돌아가자”, “전통적 공동체 형식들을 수선해 보자”는, 이른바 ‘진보파’가 내놓는 보수주의적 대안들과, “테크노토피아”, “디자인시티”, “환상여행”, “우주이민” 등 이른바 ‘보수파’가 내놓는 진보주의적 대안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판타스마고리아[환등상]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화성편도탐사자’ 모집공고가 나가자마자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모했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이 지구상의 절망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는 지표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여 『인지자본주의』는 우선 인간들의 지적 정서적 인지활동이 폭증한다는 사실에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것이 자본의 핵심지대로 강제편입되고 있다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합니다.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는 세계에 대한 낡은 인지양식들을 쓸모없게 만듭니다. 감각, 지각, 정서, 기억, 지식, 추론, 판단, 결정, 소통 등 낡은 공동체들에 의해 규정되어온 우리의 개체적 및 간개체적 언어활동의 혁신 여부가 인류의 진화 가능성을 결정지을 기준으로 부상합니다.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새로운 인지적 활동양식들이 창출될 필요성은 그만큼 커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독, 냉소, 절망, 공포 등의 인지적 감정들은 단순히 부정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시간을 경과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관적 통찰이 정서적으로 발현되는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커다란 고독과 공포 속에서 홀로 생각하면서 누구에게 수신될지 모를 언어적 신호들을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게는, 파업, 집회, 시위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호소의 장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인터넷, 스마트폰, SNS는, 새로운 인지적 공동체를 향한 사람들의 추구와 모색이 드러나는 다른 장소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른 한편에서, 이 절박한 생명의 아우성과 몸부림이 축적의 회로를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자본은 사람들의 삶의 의지, 욕망, 생명의 약동에 운하를 뚫어 그 에너지를 이윤의 곳간으로 흐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지구-대지를 부동산 및 금융 투기의 싸움판으로 만들고, 생명의 그물망을 특허, 상표, 사유물로 조각조각 찢고 사회적 노동의 세계에 보장(정규직), 비보장(비정규직), 추방(실업)의 장벽을 설치하고, 빚쟁이가 되지 않고서는 공부를 할 수 없게 만들며, 특이한 언어적 나눔들을 프로토콜로 표준화하고, 무수하게 겹치고 다시 나뉘는 소통의 오솔길들을 정보고속도로로 대체하고, 사람들의 독특한 인지적 소통능력을 전화기, TV, 자동차가 갖는 스마트함(영리함)인 것처럼 사물화하며, 인지활동이 넘쳐 흐르는 바다에 방화벽을 쌓고, 사람들의 신체적 언어적 협력이 이루어지는 실제적 공동체를 금융공동체로 시뮬레이션합니다. ‘자본의 공동체’는 이런 방식으로 한편에 거대한 금융적 정보적 스펙타클을 만들고 다른 한편에 신용불량자, 테러리스트, 디지털문맹자 등의 이름을 갖는 그 ‘외부’를 만들어내 추방함으로써 생명과정의 부단한 이윤화를 달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전환의 시간이 도래한 것을 느낍니다. 한국에서 촛불봉기가 폭발한 해이자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이 그것입입니다. 금융위기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경제위기로 실제화되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위로부터의 모든 기술적 조치들은 더 큰 악순환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과 사기, 정치와 협잡(挾雜),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들을 완전히 해체시키는 최근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같은 것이 전 세계적으로 예외가 아니라 정상임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자본이, 특이한 개체되기와 협력적 공통되기를 두 측면으로 삼는 다중의 끊임없는 공통적 생성을, 그 끝을 알기 어려운 갖가지 인지장치 사슬망을 통해 수탈하는 환상장치로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이 게임의 끝이 자신들의 죽음이자, 인류의 죽음이고, 생태계의 종말일 수 있음을 집단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해 이후로 우리는, 2005년의 프랑스 방리외 봉기가 일과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슬란드, 그리스, 영국 등 유럽을 순환하는 다중의 반신자유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2011년 겨울 튀니지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을 휩쓴 혁명의 파도를 목격했습니다. 사람들을 겨냥해 휘둘러지고 돌진하고 발사되고 날아드는 곤봉, 낙타떼, 총, 전투기에 맞서 자유, 존엄,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우리는, 이곳의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것과 동일한 노동불안정, 고물가, 빈부양극화, 부패 등의 문제를 확인합니다. 모로코에 인접한 유럽 국가인 스페인의 다중들은 지난 5월 15일, 존엄, 자유, 민주주의는 분노 없이는 쟁취할 수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분노하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제안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공명되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랍혁명에 이어 유럽혁명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의 어떤 시위자는 "겨울에는 북아프리카, 봄에는 중동, 여름에는 유럽, 그리고 이후에는 전 세계!"라는 희망의 일정표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촛불집회 당시에도 집단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했던 한국의 청년대학생들이 등록금, 법인화 등을 이슈로 거리투쟁과 점거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예사로운 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역사종말론과 포스트모더니즘론이 쓸고 가버렸던 혁명의 기운이, 1848, 1871, 1917, 1968 년에 이어 새롭게 약동하고 있는 이 시대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새롭게 사유하도록 자극합니다. "전국적 정치신문을 통한 전위정당 건설과 이것을 통한 노동계급 정치행동의 통일"이라는 레닌의 생각은, 오늘날 아랍과 유럽에서는, "인터넷과 SNS, 핸드폰 등을 통한 투쟁공동체의 구축과 이를 통한 다중적이고 삶정치적인 집단지성, 집단행동, 집단윤리의 생성"으로 번역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일한 목적을 갖는 이념적 통일"이라는 문제의식은 생태적 문제, 사회적 문제, 성적 문제, 문화적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다양한 지각들, 감정들, 사유들, 행동들 사이의 인지적 소통과 인지적 조정"의 문제의식으로 전화하고 있습니다. 5회 맑스코뮤날레 주제가 ‘현대자본주의와 생명’인 데서 나타나듯이, 지난 날 "역사의 발전"의 문맥 속에서 고려되었던 정치적 변혁은, 오늘날, "생명의 진화"라는 더 근본적인 문맥에서 고려되고 있습니다. 역사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근대성을 이끌어온 과학과 지성이 그 역설과 한계를 드러내는 것도 바로 생명의 진화라는 문맥에서입니다. 원자들, 세포들, 유전자들, 뇌들은 생명의 그물망의 마디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갖가지 생물, 화학, 물리 실험실은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잠재공동체의 부설연구소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지적 혁명들은, "과학과 철학의 협력관계를 구축하자!", "지성이 지혜의 안내를 받도록 하자!", "정치가 윤리에 의해 이끌리도록 하자!" 등의 제안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2011년의 정치혁명들은 지난 세기의 역사적 체험들을 바탕으로 이루어낸 이 심원한 인지혁명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의 피께떼로들은 "모두 다 꺼져버려! 우리 삶은 우리가 책임진다"고 외쳤습니다. 10년 후인 2011년 5월 15일 스페인의 시위자들은 이것을, "모두 다 꺼져버려!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로 번역했습니다. 언제든지 "너의 부는 나의 재산이요, 나의 손실은 네가 져야 할 짐이다"는 신조에 따라 움직이면서, 인지혁명의 에너지까지 축적의 곳간으로 운하화하려는 자본에 맞서 우리가 외쳐야 할 구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온갖 가짜 민주주의들, 껍데기 민주주의, 상대적 민주주의들을 꺼지게 만들, 진짜 민주주의, 실질 민주주의,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절대적 민주주의. 이 민주주의는, (1)사회적 부의 증대가 개체들의 희생의 심화를 의미하는 적대적 사회를 폐지하면서 특이한 개인(각개성)의 발전이 사회의 공통적 물(Ding=assembly=assemblage)적 진화와 상생하도록 만들고, (2)삶과 동어반복이 된 노동과정 그 자체가 (교환과 화폐에 의해 매개되는 경제적 가치과정을 거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실현되는 가치로서 기능하도록, 즉 그 자체로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의 필요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3)타인에 대한 권력행사로서 기능해온 정치를 서로간의 활력의 교류로서의 언어과정으로 대체하고, (4)계급을 차이들의 놀이로 역동화하며, (5)인종이 차별의 근거가 아니라 인류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표현으로 기능하게 만들고, (6)착취공간인 메트로폴리스를 자유와 창조의 공원으로 전유하고, (7)지성을 직관의 동무로 만들며, (8)타자의 존재를 배제와 갈등의 조건이 아니라 사랑과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만듦으로써, (9)축적 대신 축제가, 강제노동 대신 놀이노동이 일상으로 자리잡도록 만들어 가는, 우리들 모두의 집단적이고 항구적인 운동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간, 자본주의가 낳는 이 미친 혼돈 속에서 새로운 조직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이 절대적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 운동 대열에 섞여 여러분들과 ‘함께 물으면서 걷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얻고 있는 것을 더 없는 기쁨으로 느끼며 둘 도 없는 영광으로 받아들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6월 4일
조정환
 

원문링크 :  http://amelano.net/23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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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사를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알찬 강의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다양한 다지원 강좌를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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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8062

레디앙에 실린 새사연 황진태님이 서평입니다. 주요 쟁점과 책의 개요를 잘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아래 부분은 서평의 일부인데, 이 책의 기획의도를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저자들의 입장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세계화를 자본주의 포섭의 새로운 발전 단계로 이해하기 이전에 전지구적 소통의 요구와 저항의 네트워크로 먼저 이해하는 것이 운동의 차원에서 훨씬 힘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래>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제임스 페트라스 등 공저)는 어느 정도의 소통에 기여가 있을까? 이 책을 만든 출판사의 대표는 다름 아닌 제국주의론에 비판적인 조정환이다.

출간기획의 의도를 추측하면 첫째, 『제국』에 대한 제국주의론자들의 비판이 조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든가 둘째, 앞서 말했듯이 국내에서 이미 제국-제국주의 양자구도를 부각시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서구학계에서의 『제국』 비판 서적을 소개하는 게 생산적 논쟁을 위해서 필요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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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을 주목한 언론사

조선, 동아 빼고는 거의 주목한 것 같다. 중앙일보도 짧게나마 이 책을 소개 했는데, 메인으로 잡은 책들보다 구석에 조용히 소개된 책들이 더 눈길을 끈다. 

프레시안에 실린 하승우 교수님의 글과, 경남도민일보 김훤주 기자님의 기사를 참조하면, 책의 내용과 한국사회문제를 더 긴밀히 접목 시켜 볼 수 있다. 그 외 경향, 문화, 서울에서 책의 내용을 간략히 잘 요약 소개했다. 

 

 ▶ 한겨레 2010.2.26 윤은숙 기자
"관용의 사회인 미국의 불관용 사회인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합리화되는 이유다. 정치담론과 사회구조의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찬찬히 읽어볼 만하다."
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07085.html


경향신문 2010.2.27 손제민 기자
"오늘날 관용 담론이 쪼개질 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하고 권력 행사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비판한다."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art_print.html?artid=201002261751005


연합뉴스 2010.2.25 김지연 기자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라는 부제처럼 저자에게 관용이란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생겨난 하나의 통치전략일 뿐, 정의로운 덕목은 아니다."
링크: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0/02/25/0200000000AKR20100225153500005.HTML?did=1179m


문화일보 2010.2.25 김종락 기자
"'관용'을 기존의 문법을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책"
링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022601032630073005


세계일보 2010.2.26 조정진 기자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상이자 선으로 칭송받는 관용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있다."
링크: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00226003327&subctg1=&subctg2=


서울신문 2010.3.6 강병철 기자
"브라운 교수는 이렇게 관용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경계한다. 그는 관용이 ‘자유’나 ‘평등’의 동의어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관용이란 이름 뒤에 숨은 정치적인 계산들과 헤게모니 투쟁, 심지어 그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링크: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100306018004&keyword=%B0%FC%BF%EB


프레시안 2010.3.6 하승우 한양대 연구교수
"관용을 "흔히 생각하듯이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원리·원칙·미덕이라기보다는, 목적과 내용, 주체와 대상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지리적 변형태를 가지는 정치적 담론이자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링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305183604&Section=04


경남도민일보 2010.3.11 김훤주 기자
"'관용을 넘어 정치로'. '관용 담론' 때문에 탈정치화된 정치를, 원래대로 돌리자는 말인 듯하다. 정치의 본질은 계급 투쟁이 아니던가."
링크: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11880


한겨레21 2010.3.5 구둘래 기자
"관용론자들은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의 문제를 불관용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개인의 태도와 감수성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더불어 차이를 가진 소수자를 ‘관용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만들어 버린다."
링크: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816.html


중앙일보 2010.2.26  새책소개
"다문화적 관용 담론의 이면에 놓인 탈정치화 효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았다."
링크: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036593


국민일보 2010.2.25 새책소개
"관용 담론은 소수자를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관용 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다룬다는 것"
링크: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3446733


부산일보 2010.2.27 새책소개
"흔히 말하는 '관용의 미덕' 담론이 사회 정치적 문제를 개인의 태도나 감수성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현상을 비판했다."
링크: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sectionId=1010090000&subSectionId=1010090000&newsId=20100226000210


대구신문 2010.3.6 새책소개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상이자 선으로 칭송받는 관용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있다."
링크:http://www.idaegu.co.kr/new_gisa.html?uid=206467∂=cul


광주일보 2010.3.6 새책소개
" 똘레랑스로 표현되는‘관용’이라는 가치의 탈정치적 효과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자유주의가 ‘관용’의 탈을 쓰고 ‘다문화 제국주의’로 흘러갔다고 지적한다."
링크: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267801200386823026&search=%BB%F5%C3%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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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학의 불멸의 고전, 클라우제비츠『전쟁론』전3권 완간을 말한다. - 언론 서평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선언은 이 저작을 압축하는 명제다. 장군이나 정치가뿐만 아니라 레닌, 마오쩌둥, 체 게바라 같은 혁명가들도 이 책을 깊숙이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전쟁론>은 국제정치를 넘어 기업경영과 같은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 한겨레 신문

▷기사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81199.html


"군사학의 고전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2· 3권』(김만수 옮김, 갈무리, 496· 244쪽)이 출간됐다. 2006년 출간된 제1권과 함께 독일 원전을 국내 처음으로 완역한 것이다. 전쟁철학, 절대전쟁과 현실전쟁의 차이, 전쟁과 정치의 관계 등 클라우제비츠 사상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란 평을 듣고 있다."-중앙일보
▷기사 링크: http://book.joins.com/news/article.asp?total_id=3816832

 

특히 3권 8편에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성찰이 집약돼 있는데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를 비롯해 '전쟁은 총으로 하는 외교' '외교는 말로 하는 전쟁' 등의 명구가 기록돼 있다. 출판사측은 "<전쟁론>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지만 독자들이 클라우제비츠의 사상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고 말했다.-한국일보
▷기사 링크: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0/h2009100522301384210.htm

 

"이 저술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자부심은 대단해 “나는 자명하고, 몇 백번이나 언급되어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평범한 것은 모두 피하려고 했다. 2∼3년 후에 잊혀질 책을 쓰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책은 ▲전쟁의 본질 ▲전쟁이론 ▲전략 일반 ▲전투(1권) ▲전투력 ▲방어(2권) ▲공격 ▲전쟁계획(3권) 등을 담고 있다."-서울신문
▷기사 링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code=seoul&id=20091010018010&keyword=전쟁론

 

"'전쟁론'이 군사학의 고전으로 꼽혀온 것은 일단 내용의 충실함 때문이다. 저자는 전쟁이론부터 전략과 전술, 전투, 공격과 방어, 전쟁계획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전반적인 요소를 살펴보면서 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연합뉴스

▷기사 링크: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9/10/06/0902000000AKR20091006135600005.HTML

 

"군사학 분야의 고전을 선정할 때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손자병법과 함께 반드시 리스트에 포함되는 책 중의 하나다...(중략)...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담긴 내용 중에는 19세기적 전장 상황에만 타당한 대목이 있는가 하면 시대를 초월해 전쟁의 본질적 속성을 꿰뚫고 있는 부분도 있다." -국방일보

▷기사 링크: http://kookbang.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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