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 쇼펜하우어의 철학논문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김미영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철학사나 해제, 인문학 저서를 통해 소개되는 철학적 내용들만 주로 읽어 온 것 같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얄롬을 읽고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우선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년간 약간은 우울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이들의 철학은 가뜩이나 우울한 감정을 더욱 벼랑으로 내 몰게 되지 않을까 하여 두렵기도 했지만 얄롬으로부터 희망을 읽었다. 의지와 표상의 세계밖에 아는게 없어서 우선 읽으려 했더니 쇼펜하우어 그 자신이 이 책을 먼저 봐야 한단다. 이 책은 인식주체의 선천적 능력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우선 인식이유와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고 한다. 데카르트는 원인이 요구되는 곳에 인식이유를 밀어 넣음으로써 신의 현존에 존재론적 증명의 길을 닦았으며(그래서 수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스피노자는 이 혼동을 범신론의 기초로 삼았다(역시 신이 존재하기를 갈구했다?)는 것이다. 칸트가 모든 명제는 그것의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인식의 논리적 원칙과 모든 사물은 그것의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선험적 원칙을 구별할 것을 강조한 후에 비로서 인식이유와 원인이 정확히 구별되었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식주체의 선천적 능력으로서 생성, 인식, 존재, 행위의 충족이유율을 제시한다. 
어렵다.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그것이 이것의 이유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런 질문들이 서양사람들에는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우리 조상들도 그런 걸 궁금해 했었나? 
수천년을 서양사람들이 이 질문에 매달렸고 헤겔은 자신이 모든 걸 밝혀서 철학적 의문은 더 이상 없다라고 했지만 그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질문과 답을 내 놓고 있다. 철학이든 어떠한 학문이듯 결국은 인간을 위해, 대중에게 봉사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의 목적이 아닐까? 정치경제학을 모르면 보수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듯이 철학도 마치 그런 것인가? 
내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까닭은 인간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함이었는데 어디까지 가야할지 길을 잃은 느낌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에서는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이 쇼펜하우어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도 역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인식론 등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이 필요했던 것일까? 철학은 반드시 정신의학의 충족이유가 되어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