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우치에 누워서
어빈 D.얄롬 지음, 이혜성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7년 1월
평점 :
얄롬의 장편소설이다. 역시 상담실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왔는데 이번에는 전작과 좀 다르다.
전작에 비해 허구적인 내용이 많고 상담장면은 온통 거짓환자로 넘쳐난다. 배신과 복수와 탐욕에 눈먼 인물들의 행적을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같이 풀어나간다. 결말은 권선징악의 틀을 지키고 있다. 얄롬은 이 소설에서도 역시 교육적 목적을 견지하고 있다. 치료장면을 상세히 서술하며 치료자 환자 관계에서 벌어지는 심리내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에서 얄롬은 주인공인 수련중인 분석가 어니스트 래시를 통해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프로이트와는 달리 현재의 모든 것이 과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과거사건과는 무관한 최근, 지금, 여기도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또한 어니스트는 인간의 모든 소망과 갈등을 성적인 욕망에 기인한다고 보지 않고 실존적 주체로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주요하게 여기고 있다. 어니스트는 전이분석보다는 지금 여기에서의 치료자 환자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더욱 올바르다고 생각하여 중립과 익명성을 고수하는 전통적 분석방법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분석을 실시하게 되는데 그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도 공개하고 환자의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세션을 이어간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범위 안에서만 공개한다든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를 위해서 공개한다든지, 치료자 자신이 갈등을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섣불리 조언을 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몇가지 원칙을 전제로 어니스트는 정말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자신의 과거, 경험, 느낌, 생각들을 환자와 공유한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니스트는 독단적인 프로이트주의와 융의 신비주의를 경계하며 자기만의 분석 세션을 성공적으로 이어 나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프로이트주의의 정신분석 수련환경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얄롬의 유혹은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최근에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몇명의 환자와의 면담에서 얄롬의 주장을 떠 올리고 적용해 본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간 환자만큼 간절하게 공감할 수 없었던 그 환자의 소망이 가슴깊이 와 닿았던 경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