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이영돈 지음 / 예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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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마음>의 원고들과 관련 자료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책 보다는 TV를 통해 이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영상과 음향 덕분에 더 큰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총 26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으며, 400페이지 넘는 두께에, 다양한 사례들과 사진이 풍부하게 실려있는 책이다.

책은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최고의 방법은 용서라고 주장하며 끝을 맺는다. 그렇다면 우선,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의식과 지식과 감정이 어우러진 뇌의 상태이다. (동물이) 살아있다고 해서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로봇이) 특정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마음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마음은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며, 어떤 정보를 어떤 감정과 함께 뇌에 입력했는가에 따라 마음의 상태는 달라진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 감정이 건강을 지배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감정은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생성은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다. 어떤 경험을 많이 했는가에 따라서 뇌는 익숙하고 강렬한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 몸은 기억과 경험들에 근거하여 판단을 하고, 실천하며, 그것은 다시 뇌 속에 기억으로 남는다. 좋은 기억을 많이 갖고 싶다면 좋은 감정으로 좋은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복해야 한다. 이 원리는 자녀교육이나 학습, 그리고 건전한 생활 등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공포와 분노, 피해의식 등은 건강한 마음을 갉아먹고 그의 삶을 무력화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심지어는 자신의 삶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 죽음은 말이다. 

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대체할 기억들을 반복해서 입력해야 한다. 실제의 기억든지, 아니면 상상이든지 뇌는 상관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을 버리기 위해, 대체할 만한 현재의 기억을 입력하고 미래를 상상해도 뇌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져야 하고, 희망을 이루기 위한 작은 실천들이 계속되어야 한다. 희망의 입력이 반복될 수록 기억은 탄탄해지고, 그것은 몸을 통해 현실이 된다. 어떤 기억을 탄탄하게 만들지를 정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건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뇌가 그것을 원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몸과 마음이 꽉 차 있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원해도 뇌는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뇌가 좋은 것을 받아들일 여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완, 호흡, 명상이다. 우리의 몸과 뇌는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편안해지며, 기왕의 정보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명상을 하므로써 집중력이 생기거나 학습효과가 높아졌다고 하는 근거이다.

이 책의 후반부인 24장, 25장, 26장은 '용서'에 관한 내용이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나를 위한 것이다. 울분과 분노로 가득한 인생을 사는 것은 너무 괴롭다. 가족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고, 그를 사형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로 놀랍기만 한 그들의 선택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증오와 복수는 사실을 바꾸지 못하고 더 나은 미래도 보장하지 못한다. 대안은 용서밖에 없는 것이다.

뇌를 알면 성격을 바꾸거나 삶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기대되는 대목이다. 기억력이 감퇴되고 체력이 떨어지는 것 또한 명상과 운동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하니 반갑다. 독서에 이어 명상과 운동이 내 삶의 일부로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 인상깊은 구절 -

'누군가에게 희망이 없다면 문제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지레 겁을 먹고 싸우는 일을 포기하면 지게 된다. 하지만 희망이 있으면 싸우기 시작한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길을 따라 계속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보장이 있거나 항상 그렇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희망이 있으면 현실에 토대를 둔 계획과 전략이 생긴다. 희망은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앞으로 나가고 충족감, 만족감, 성공을 주는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도미노 효과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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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이현우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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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읽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저자인 로버트 치알디니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심리학과 석좌교수라고 해서,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이런 행동은 책에 나오는 설득의 법칙 6가지 중 다섯번 째 '권위의 법칙'에 넘어간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물론 결과가 나쁘지는 않다. '권위의 법칙'에 대한 자기방어전략으로 로버트 치알디니가 심리학의 '전문가'인가를 확인하고 읽은 것이니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전달하고 그것을 수용하거나 동조하게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생필품이 아닌 물건들을 팔고자 다가온 사람들 혹은 생필품이더라도 비싼 것을 팔고자 온 사람들을 물리치는 것도 진땀나는 일이다. 거기에는 교묘한 상술이 있고, 그 상술은 심리싸움의 핵심이기에 그러하다. 저자는 이러한 매매행위 또는 일련의 사회적인 행동 속에 녹아 있는 인간의 심리들을 '설득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상호성의 법칙', '일관성의 법칙',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감의 법칙', '권위의 법칙', '희귀성의 법칙' 등 6가지가 그것이다.

이 6가지 설득의 법칙으로 인간의 행동과 그것이 어떤 심리에 근거한 것인지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몸과 마음에 익힌다면 좀더 지혜롭게 인간관계를 맺고 유리한(손해보지 않는) 처세를 하는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각각의 법칙들과 사례들을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그 인간이 그래서 그랬구나' 하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면선 자신의 의사를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키는 방법, 다른 사람의 악의적인 술수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법,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방법, 우매한 대중이 되지않는 법 등을 좀 더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6가지 설득의 법칙에 대항하는 '자기방어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설득의 법칙이 악용되어 쳐들어 올 때 자기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실전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도 내 주고 있다. 어쩌면 이 자기방어전략이말로 일반 소비자가 가슴에 새기고 매순간 명심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방어자세를 취하든 공격자세를 취하든 말이다.

예를 들어, 설득의 법칙 중 '호감의 법칙'에 대한 방어전략은 늘씬한 모델을 내세운 자동차를 구입하기에 앞서 그 차를 왜 사려고 하는지, 경쟁사의 제품과의 차별성은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권위의 법칙'에 대한 방어 기재는 상대방이 '전문가'인가, 제시된 '정보가 사실인가'를 탐색하는 것이며, '희귀성의 법칙'에 대한 방어 기재는 한정판매상품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는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마감임박' 또는 '한정판매'로 압박하면 안 넘어갈 장사가 있을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심각한 고민을 생략해도 제대로 된 결정일 때가 있다. 아마도 오랜 관습과 문화, 사회성원 간에 암묵적으로 정해진 규칙이 몸에 배어서일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지름길'이라고 한다. 지름길에 반기를 들고, 돌아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을 배짱이 있다면 설득의 법칙에 쉽게 이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독창성과 창의성이 필수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 인상깊은 구절 -
'일단 우리가 작은 요청에 동의하게 되면, 나중에 보다 큰 요청에도 동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처음의 요청과는 성격이 다를 수도 있는 다양한 다른 요청에도 쉽게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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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험
이진경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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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이 가능하다면 논쟁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는데 아주 유익할 것 같다. 이 책 또한 앞서 읽었던 <talk talk 철학토크쇼>(루시 에어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처럼 철학을 주제로 논쟁을 하는 형식의 소설이다. 하지만, 이 책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고 주장하는 대목이 앞의 책보다 다소 길고 어려운데, 그것은 짧은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모두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화체로 진행되는 철학자들의 논쟁이라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고민하고 완성한 사상을 단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했으므로 초보자가 이 책을 읽고 철학자와 그의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무리일 듯 하다.

내용은 크게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부는 등장인물과 사건 등이 별개인 중편소설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관심있는 철학을 다룬 부분부터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부에서 다루는 주제는 근세철학이다. 지상이 아닌 염라국에서, 동시대의 인물이 아닌 장자, 데카르트, 스피노자, 사르트르 등이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나'라는 주체에 대해 논쟁을 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갓난 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인간은 생각을 하는가와 관계없이 실존하는 존재가 아닌가라고 하며 사르트르의 반론이 제기된다.

2부에서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노예였던 이솝이 근대에 환생하여 베이컨, 로크, 버클리, 흄 등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들과 자신의 우화를 인용하여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오류 혹은 주장을 확인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어봤자 전혀 이득이 없는 독서법으로 책의 우화와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골라 읽는 것이라고 머릿말에서 언급했었다. 물론 나는 골라 읽지 않았어도, 나의 머릿속에는 이야기들만이 남아 있고, 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철학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인용된 우화들을 통해서, 인간은 경험에 의해 세상을 판단하며, 그 경험은 오류에 빠질 수 있으므로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3부는 관념론과 유물론을 다루는데, 등장인물은 칸트, 헤겔, 포이어바흐, 마르크스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생각은 뇌의 분비물이 아니야', '수탉과 부엉이의 끝없는 논쟁'이라는 소제목만 봐도 이 부분이 세계는 관념과는 별개로 존재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세계는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생각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닭이 울지 않아도 새벽은 온다는 것 하며,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가 발 딛고 살아온 세계를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유물론의 핵심이다. 수탉이 볼 수 있는 하늘의 둥근 공은 해이며 부엉이가 볼 수 있는 하늘의 공은 달이지만 그것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이야기는 지식은 검증을 통해서 증명되며, 모든 지식과 사상들 또한 실천을 통해서만 검증된다는 점들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는 정신분석학자인 융과 프로이트, 니체가 등장하는데,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이야기는 원래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권력의지 개념이나 영원회귀사상, 초인사상에 대한 니체의 박진감 넘치는 설명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권력의지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생존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초인'이란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 허무주의와 부정을 극복한 사람이라는 점, '영원회귀사상'은 반복의 뉘앙스가 아니라 생성과 발전의 의미라는 점이 확인된다. 참으로 언어의 통념적 의미에 갇혀서 잘못된 철학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니체의 초인사상이었다. 니체에 대하여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쓴, 또는 '허무주의의 주창자' 정도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가졌던 나로서는 니체에 대하여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초인사상은 변화와 발전이라는 내 인생의 프로젝트를 뒷받침할 이론으로 채택해도 좋을 것 같다. 몇년간의 자기계발서 탐독을 끝내려 하면서도 긍정의 근육을 유지강화시켜 줄 이론에 대한 필요성이 여전하던 차에 다행이다.

어쨌든, 철학하기는 사고의 심화와 확대를 교차하여 진행시키므로써 사고를 풍부하게 해주고, 삶을 풍부하게 해 줄 듯 하다. 몇권의 철학입문서를 읽다보니 철학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 또한 철학의 주제가 세상과 인간의 관계, 역사 속에서 인간활동의 의미, 행복한 인생, 인간의 존엄성,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성의 관계 등 참으로 다양하며 심오한 만큼, 이러한 주제들을 깊이 사고하며 행동하면 개인적으로도 더 나은 삶을 살고 또 사회적으로도 더 가치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지식은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듯 하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고 싶다.  
        
 
- 인상깊은 구절 -

'이처럼 영원한 변이 속의 현재, 영원한 현재를 산다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혹은 익숙해지고 있는 자신의 감각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자신의 사유와 자신의 활동을 새로운 것으로 변이시키며 사는 것이라오. 이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의 감각, 스스로의 사유, 스스로의 삶을 갱신하고 변이시키며 사는 자,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지는 선을 따라 '기존의 것'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고 멈추어버리는 모든 것을 넘어서며 사는 자, 바로 그런 자가 '넘어서는 자'요 '초인(uebermensch, '넘어서는 자'란 뜻)'이라오.'(책 후반, 니체의 말 중에서, 페이지 까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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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talk 철학토크쇼 - 굳어버린 머리가 말랑말랑해지는 기상천외한 철학실험
루시 에어 지음, 유정화 옮김, 김영건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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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가 무슨 주장을 했고,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철학자가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책이 적당하지 않다. 이 책은 '철학사'도 아니고 '철학개론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그의 주의주장이 명쾌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은, 소설책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현상과 실재', '존재와 인식', '마음과 물질', '자아동일성의 문제', '행위와 도덕적 평가의 문제', '언어와 개념의 문제', '도덕적 보편성과 상대성의 문제', '자유론과 결정론의 문제' 등 8가지의 철학적인 기본 주제들을 등장인물들의 논쟁을 빌어 독자가 함께 생각하게끔 한다. 소설이라는 쟝르가 독자의 감정이입과 간접경험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 책의 효과도 예외는 아니다. 논쟁이 주된 내용이라 그 논쟁들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사람도 함께 질문하고 대답하고 정리하게 되는데, 이 점은 철학적인 사고를 유도하고자 하는 이 책의 목적에 부합하는 듯 하다.  

이미 죽은 철학자들의 세계인 이데아월드에서 '철학이 삶을 더 낫게 하는가'에 대한 내기가 시작되고, 이 내기의 실험 대상으로 현실 세계의 벤 워너라는 15세짜리 소년이 채택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소년이 가진 호기심이 많고, 독창적인 사고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열린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자질은 철학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임을 암시한다.

독자로 하여금 현상과 실재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게 사고해 볼 수 있도록 저자는 각각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두 명의 등장인물이 논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어떤 등장인물 한쌍이 '우리의 감각이 믿을 만하다는 증거는 뭘까? 우리는 실재의 본질을 알 수 있을까?'라는 대화를 하게 한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소년 벤이 그 논쟁에 참여하게 하고, 벤을 이데아월드로 안내하는 라일라는 그 대화를 함께 듣고 보충설명도 하므로써 벤이 더 집요하게 사고를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과정은 인식론이니 경험론이니 하는 용어를 들이 대지 않아도 철학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예를 하나 더 들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죽음이 있다'라는 말과 '죽음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존재하니까. 죽음은 지금 존재해. 왜냐하면 그것은 내 미래의 일이고 나는 그 미래를 의식하고 있어서야'라는 대화를 통해서는 삶과 죽음, 사후 세계, 삶의 가치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삶이 가치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삶의 가치는 어떻게 해야 제 빛을 발하는 것일까.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하다 보면 철학도 쓸데없이 어려운 학문만은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철학이 삶과 죽음의 문제, 혹은 인생의 목표와 같은 심오하고도 거대한 사항에만 연루된 것은 아니다.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철학은 누군가가 남의 지갑을 훔쳐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나 나 한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을 구해낼 수 있을 때 나는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와 같은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식인종(문화적 차이로 인한 도덕관념의 차이)이나 집단학살(상황논리에 의한 정의의 부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하는가와도 철학은 상관이 있다. 나에게는 나의 삶을 통제할 자유의지가 있다 혹은 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식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논리 또한 철학이고 말이다. 이렇듯이 철학은 삶의 문제이고 실천의 문제이다.

책 속의 소크라테스가 증명하려고 했던 '철학이 삶을 보다 더 낫게 한다' 는 사실을 깨닫고자 한다면, 철학자 누구의 주장이 무엇이라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뒤로 미뤄야만 한다. 그 전에 이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그것들과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니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더 나은 삶 혹은 더 나은 세상이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철학은 그러한 생각을 돕는 과정이고, 철학자들은 그러한 생각들을 명료하게 정리함과 아울러 사고의 틀을 확대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의 어려운 철학책들이 철학을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훼방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누구나가 몰입할 수 있는 철학적인 주제들을 삶의 문제가 아닌 것인 양, 등 따숩고 배부른 자들의 지적인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도구일 뿐인 양 어려운 전문용어로 치장했기 때문이다. 철학책은 독자로 하여금 철학적인 주제들을 제대로 사색하도록 이끌어 줄 때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 인상깊은 구절 -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너 스스로 찾아나가야 할 것 같아. 난 그저 네 곁에서 몇몇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야. 처음 철학을 접했을 때에는 그럴듯한 주장을 들으면 번번이 마음이 흔들린단다. 그러다가 점차 자신의 의견이 다르다고 깨닫게 되는 지점에 다다르지. 그리고 의견이 다른 합당한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게 되면 그때는 자신이 잘해 나간다는 걸 알게 될 거야"(p.167,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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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칭기스칸 -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SERI 연구에세이 2
김종래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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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하지 않는 삶이란 불안할 것 같지만, 그걸 오히려 정상으로 여기는 삶이 있다. 정착을 수치로 여기고, '정착하라'는 말을 저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떠돌이', '집시' 등의 정착하지 않음을 내포한 이 단어들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의 언어인데 말이다.

생존과 생계를 위해서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는 민족들이 있다. 유목민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말이나 소, 양 등을 먹일 풀을 찾아 이동하는 삶을 산다. 지금으로부터 800년전에 살았던 칭기스칸의 삶 또한 유라시아의 광활한 초원에서 떠도는 유목민의 삶이었다.

이 책은 칭기스칸과 그의 민족인 몽골족에 대해, 그들의 생존방식에 대해, 그리고 정착사회의 한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은 12세기와 14세기에 걸쳐서, 약 170년간 존속했다. 정복한 땅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로, 동쪽의 고려에서 서쪽의 헝가리까지, 북쪽 시베리아에서 남쪽 베트남 근방까지에 이른다. 몽골제국의 영토확장은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몽골인들을 해방시키는 길은 몽골 고원 바깥에 있다'고 한 칭기스칸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바깥으로 향한 삶, 끊임없이 이동하는 삶에 맞춰 소지품을 간소화하고 정보를 능란하게 수집하고 속도를 중시하였으며,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감으로써 그들은 생존하고 번영하였다.

칭기스칸이 무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비결은, 첫째 '개인적인' 약탈을 허용하지 않고, 전쟁의 공과 전리품이 골고루 분배되도록 하므로써. 조직원들의 사기와 충성도를 높인데 있다. 둘째는 기동성에의 몰입이다. 기동성을 위해서 말을 이용하고, 소지품을 간소화하고, 신소재의 무기를 사용했으며, 음식까지도 기동성을 고려할 정도였다. 세번째 비결은 정보마인드이다. 정보화 마인드로 무장하여 첩보전과 심리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 네번째 비결은 호환성 또는 다양성의 인정이다. 칭기스칸의 군대는 점령지의 종교나 문화를 인정했고, 포로들 또한 쓸모있다면 적극 수용했다. 다섯번째는 신기술의 우대였다. 그것만이 환경적인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마지막으로 여섯번째는 공정한 대우였다.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고, 남녀간 혹은 몽골민족과 점령지인간의 차별을 금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시스템과 마인드를 갖추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듯 하다.

저자는 칭기스칸의 유목사회를 수평사회로, 농경 정착사회를 수직사회라 말한다. 농경 정착사회의 폐쇄성과 극단적인 소유의식,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한다. 권력, 민주주의, 예술 등은 정착문화의 성격이 짙으며, 땅이나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 또한 그렇다. 반면, 유목민의 삶에서는 개방성이 중요하고, 소유는 간소화 해야 하며 관료제보다는 공동체 의식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덕목이 된다.

21세기 들어 잡 노마드, 노마디즘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던 것 같다. '잡 노마드(Job Nomad)'는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그리고 한 가지 업종에 매여 살지 않는 부류를 일컫는다고 한다. '노마디즘(Nomadism)'은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철학적 개념이라고 한다(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정착이 더 이상 안정과 여유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궁핍을 나타내는 말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역사를 길게 보면 인류는 이동과 정착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지금은 이동할 시기가 아닌가도 상상하게 된다.


- 인상깊은 구절 -
'수직 사회에서 창의력 약화는 필연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대신 기억력이 존중되고 발달한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것과 다름없다. 모든 경쟁도 기억력 겨루기가 핵심이다. 기억력을 중시하는 사회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산다.'(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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