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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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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을 펼치기 전에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한다. 책이 두껍고, 논픽션, 게다가 나치집권기에 활동한 독일인 평전이라니 좀 더 다부지게 마음 먹는다. 하지만 열정에 찬 레니 리펜슈탈의 모습을 거침없이 매력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서술을 따르다보면 긴장은 모두 풀리고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안 그래도 세계가 요동치던 시대인데 그 속에서 더 요란하게 열정을 내뿜고 살던 레니 리펜슈탈에게, 말 그대로 혀를 내둘렀다. 웬만한 고난과 역경은 명함도 못 내밀 일을 벌이고 돌진하는 그녀는 분명히 나를 매혹시켰고, 정말 ‘재미있게’ 책을 읽게 만들었다.

작가는 정치적 판단과 언급을 대부분 책의 마지막 장으로 미뤄두고 해당 시기의 레니 리펜슈탈의 입장을 충실하게 따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문장의 느낌도 가볍고 유머러스하다. 이제는 반세기가 과거가 되었기 때문일 텐데, 독일의 나치 집권기를 다루면서도 필요이상 진지하거나 조심스럽지 않다는 점은 시간의 힘을 느끼게 한다. 선정적 주간신문까지 떠올리게 하는 나치당 간부들의 희화화된 묘사에는 영국인 특유의 악랄한 유머도 느껴진다.

  

그녀의 나치 집권기의 활동과 전후의 행동에 대해, 독자도 다양한 판단을 할 수 있고 논란거리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쓰인 평전을 읽고 난 후라면 그만큼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서 역사 속에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특히 책에서 산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견해는 리펜슈탈 뿐 아니라 독일 산악 영화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시대를 열정적으로 산 개인이 억울함과 피해의식을 안고서 역사의 부채를 인정한다는 건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하는 과정일 것이고,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레니 리펜슈탈 역시 피해자로서 전후에 겪은 고통이 책에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레니 리펜슈탈은 살고 있는 그 순간에 대해서는 후회 없을 열정을 쏟아 부었지만, 그 열정의 결과물에 대한 애정 어린 책임과 성찰까지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해방 전후부터 군사정부를 거친 우리에게 과거에 대한 청산/해석의 문제가 절실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만큼, 역사와 개인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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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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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해운회사 영업사원으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영업사원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다르다. 갑자기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연상작용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것이 방해가 됩니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 생활을 한 삼 년 동안 굉장히 많은 글들을 썼어요. 한 인간이 삼 년 동안 쓴 글 중에 대표작이 무엇이었냐면 글쎄, 왕입니다요입니다. 그때 그 생활 때문인지 제목에 대한 노이로제가 좀 있어요. 카피라이터 하면서 시달린 것 때문에.

 

<지구영웅전설>에 실린 소설가 하성란과 박민규의 인터뷰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이 인터뷰에 드러난 박민규의 말들이, 작가에게 홀딱 빠져버리게 된 두 번째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그의 문체였고.

 

인터넷 포탈 사이트들이 쏟아내는 화제들 속에는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는 개인의 생활<카스테라>의 인물들에게는 문제이다. 아주 당연한 이 생활의 문제가 오히려 <카스테라>의 젊은이들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만들 만큼, 요즘의 젊은이들-아무튼 동세대인 우리들의 모습에는 이상할 정도로 생활이 결여되어 있다. 그런 인물들이 박민규 소설에서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박민규의 정도(?)를 벗어난 문체들이고 <카스테라>의 비상구 역할을 하는 판타지이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우리는 박민규가 농담처럼 걸어오는 소설을 만나고, 판타지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찾으면서 다시 우리의 생활 속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진심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경험을 쓰지 못한다는 작가 자신의 부정때문인지, <카스테라>의 고난한 삶을 사는 인물들에게 품고 있는 작가의 애정과 위로에는 판타지라는 완충제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판타지는 <카스테라>의 인물들에게, 그리고 읽는 이에게 숨구멍이 되어준다. 어느 정도는 작가에게도...?

 

또 하나, 책 표지의 너무나 사랑스러운 등장동물들이 작가의 손으로 직접 그려졌다는 즐거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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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변화 - 상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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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으로 처음 만난 산도르 마라이는 정말 오랜만에 고전의 묵직함을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19세기 근대소설을 읽을 때나 느꼈음직한 이런 고전들은 소설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만으로도 감정의 깊이가 생기게 되는데 무게감있는 감정이 그 작은 책으로부터 생겨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산도르 마라이는 나에게 최근 몇 년간 가장 반갑게 만난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남아 있다.

결혼의 변화 역시 작가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유의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3명의 인물들이 각각 견디고 기다리며 살아 온 소설 속의 시간을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느끼게 하려는 듯 그 시간 속의 이야기를 섣불리 풀어내지 않는다.

 

산도르 마라이의 주인공들은 단 한 마디 말을 위해, 단 하나의 풀지 못한 의문을 위해 시간을 견뎌내고, 기다린다. 그리고 그 시간 뒤에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답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가 결국 삶이라는, 새롭지 않지만 우리는 매번 잊고 지내는 깨달음을 준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데 그런 기다림을 품지 않고서야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산도르 마라이가 풀어가는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지속적으로 긴장감이 증폭되어서 그 긴장감을 실제로 느낄 때에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팽팽해진다. 그래서 그것이 폭발할 때에는 실제로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힘을 뿜어낸다. 그 폭발을 만들어내는 건 너무나 작은 무엇인가이고, 너무나 짧은 순간일 뿐이다.

작은 리본 한 조각, 돌아보지도 않고 느낀 등 뒤의 살의의 순간 결국 그것들은 주인공들의 삶을 집어 삼키고, 그 순간을 묘사한 산도르 마라이의 몇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집어 삼키고 만다.

 

결혼의 변화는 세 인물의 고백을 듣고 나서야 이야기와 인물들의 마음과 시간이 풀리는 3부 구조로 되어 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건에 대한 변주가 계속 되고 풀리지 않은 비밀이 풀리는 듯한 즐거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야기와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이 3부까지 잘 유지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내 개인이 1부의 일롱카와 2부의 페터의 이야기에 더 이입하였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그러니 유디트의 파괴적 사랑’에 이입하는 독자라면 소설을 읽으며 긴장감과 흥미로움은 더욱더욱 커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엇갈림들이 사랑을 만들고 연인과 결혼의 관계를 만들면서, 시간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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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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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옛날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그 이야기의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그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어디에서도 열정의 주인공 헨릭과 같은 노인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자신의 과거 속에서만 사는 귀신 같은 노인은 그 자신 이야기의 대상이 될지언정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소설을 읽는 게 아닌가, 괴팍한 노인으로부터 자신의 평생을 밤새도록 풀어내게 하고 예기치 못한 과거의 순간을 함께 겪으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고.

작가가 주인공의 유모 니니에 대해서 말하듯 이 소설은 ‘노인들 특유의 솔직함으로, 담담하게’ 쓰여졌으나, 단 한 번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읽는 이를 극도의 긴장 상태로 몰아간다. 결투장에서 등을 돌리고 걸음을 걷는 두 남자 사이에도, 낮은 목소리의 인사와 악수로 재회하는 헨릭과 콘라드 사이에 흐르는 정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 전, 대륙의 다른 쪽 끝에 살았던 두 노인의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다 그렇듯 시간과 장소에 매이지 않는 인간 보편의 감정이 실려있다. 둘도 없는 친구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은밀한 우정의 추억, 그러나 그 각별함이 빚어내는 그림자 아래 쌓이는 질투, 소외감, 그리고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그만의 일부. ‘그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깨달음.

몇 십 년간, 헨릭은 자기가 수없이 되새긴 과거를 매일 다시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세월이 헨릭에게는 41년의 수천번 겪는 긴 시간이었을 것이며, 같은 이유로 그는 41년 전 청년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다. 콘라드가 다시 돌아온 날, 콘라드와 함께 과거를 되씹으며, 단 하룻밤만에 헨릭은 41년의 세월을 지나 비로소 노인이 된다, 자신의 삶을 인정하게 된다.

콘라드를 만나기 위해,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삶을 버틸 수 있었다고 헨릭은 생각한다. 그러나 헨릭과 콘라드, 그리고 크리스티나가 겪은 한 순간의 불타는 열정 또는 영원히 타오르는 정열, 그리움을 자신의 삶으로 인정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41년 간의 기다림, 그것 자체가 그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닐까. 사랑도 그리움도 그 대상보다 감정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헨릭과 콘라드가 함께 풀어야만 했던 문제였던 것이다. ‘사물과 말이 돌고돌아, 이따금 전세계를 돌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완성되’듯이 헨릭도 콘라드도 다시 서로를 만나야만 했던 것이다.

매일 매일 풀어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그때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며 그 날을 넘기고, 그 해를 넘기며 나이를 먹지만, 어떤 문제는 풀리지 않은 채 그 스스로 살아 남는다.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 지 못할 테지만, 그 문제로 인해 내가, 내 삶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는지, 또 내가 어떻게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에 들어섰는지, 이 모든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헨릭 스스로의 말처럼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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