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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연스럽게 읽는 호흡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글을 읽는 시선이 느려집니다. 이 느려짐이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자'라는 저의 조급함을 누릅니다. 그리고 이 문장, 이 문구, 이 글들을 제대로 느껴보라고 말을 하죠. 그래서 이 책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읽기를 추천 드립니다. 글들을 음미하지 않으면, 두 시간, 세 시간만에도 읽을 수 있겠지만, 조급함을 조금만 참아내고, 글을 음미하기 시작하면 그 여운은 하루, 이틀, 일주일까지도 느끼실 수 있을거에요.
작가가 소개해준 책들을 읽지 않았음에도, 마치 내가 그 책들을 읽은 듯한, 아니 이 책을 보지 않았으면 느끼지 못할, 알아채지 못하는 감정과 감탄들을 이 책 - 책은 도끼다 -를 통해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저자는 1강부터 8강까지 본인이 애정해 마지않는 작가들의 글들을 소개하며, 한 명 한명이 정말로 대단한 작가라고 치켜세유죠. 하지만 자신은 이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해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을 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저자들이 함축적인 문장을 통해서 말한 바를 이토록 잘 이해하는 박웅현씨 역시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하잖아요. 예전에 명절 때 TV에서 해동검도 하는 아저씨가 나와서 짚단자르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죠. '흐합'하는 기합과 함께 한 번에 짚단을 자르는 건데, 내가 봤을 때는 칼만 잘 들면 (날이 제대로 서있으면) 나도 하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그걸 본 다른 무도가들은 '아, 이건 정말 대단한거다. 쉽지 않은 거다'라고 마구 놀람과 칭찬을 하더라구요.
마찬가지인거죠. 글을 아무리 멋드러지게 잘 쓴 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작가 입장에서는 그만큼 답답한 게 없을텐데, 박웅현씨는 이 글들의 내용을, 아름다움을, 은유를 알아챈거죠. 그리고 저처럼 책이라는게, 글이라는게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미처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곤조곤하게, 하지만 쉽고 편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은 도끼다'라는 책입니다. 진짜 책을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네요.
다시 말하지만 다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가 말한 것처럼 기계적인 지식만을 위해 책을 읽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니 다독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다시 카프카로 돌아가면 책이 얼어붙은 내 머리의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읽었다고 얘기하기 위해 읽는 건 의미가 없어요. (책 내용 중에서 발췌)
▒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
♣ 1강 시작은 울림이다 (이철수)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걸기라고 합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의 글은 인문이잖아요. 그런데 자연을 해석하려고 인문이 노력을 하는 겁니다.
저는 책 읽기에 있어 '다독 콤플렉스'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독 콤플렉스를 가지면 쉽게 빨리 읽히는 얇은 책들만 읽게 되니까요. 올해 몇 권 읽었느냐, 자랑하는 책 읽기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일 년에 다섯 권을 읽어도 거기 줄 친 부분이 몇 페이지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줄 친 부분이라는 것은 말씀드렸던, 제게 '울림'을 준 문장입니다.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김훈)
이 글 속에서 김훈은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속도의 문제에 대해 걸고넘어집니다. 우리는 정말 빠른 속도로 살아가요. 꽃 피고 지는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이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드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 3강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나는 상대에게 누구인가'가 중요해진다는 이야기죠. 사랑하는 사람의 시선에서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초점을 맞춘다는 겁니다. 사실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와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는 이게 잘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빌리면, 타인들이 우리를 이해하는 폭이 우리 세계의 폭이 된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우리의 농담을 이해하면 우린 재미난 사람이 되고 그들의 지성에 의해 우리는 지정있는 사람이 된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기 했다 (불안 - 알랭 드 보통)
이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은 상인이나 지주가 아니라, 밤에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우리는 행불행을 조건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세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책은 그 자신만의 발달한 감수성으로 우리를 예민하게 하고 우리의 숨겨진 촉각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신은 의식 위에 떠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포착하게끔 회로에 설정된 레이더와 같아서, 책을 읽고 나면 그 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린다는 겁니다.
♣ 4강 고은의 낭만에 취하다 (고은)
답답할 때가 있다.
이 세상밖에 없는가
기껏해야
저 세상밖에 없는가 (순간의 꽃 - 고은)
♣ 5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김화영, 니코스 카잔차키스)
화단에서는 군데군데 꽃이 눈을 떠, 깜짝 놀란 소리로 '빨강!'하고 외쳤다 (말테의 수기 - 마리아 릴케)
카뮈는 이방인, 그러니까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 삶의 실체를 느끼는, 거짓말 하지 않는 뫼르소를 세상에 던져놓았습니다.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이방인 - 알베르 카뮈)
그러고 보면 우리가 죽을 때 똑같을 것 같지 않으십니까 ? 아, 저 햇살 못 보는구나, 끝이구나, 할 거에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여행이 우리 삶을 예행연습시켜준다는 겁니다.
♣ 6강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영원한 회구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명제가 여러 철학자를 괴롭힌 이유는, 반대로 얘기하면 영원히 회귀하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할 수 없는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죠.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진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러한 미학적 이상이 키치라고 불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 7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불안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게 해주던 촛불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확 타올라 지금까지 어둠에 싸여 있던 일체의 것을 그녀에게 비추어 보이고는 파지직, 소리를 내고 어두어지다가 이윽고 영원히 꺼져버렸다.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 8강 삶의 속도를 는추고 바라보다 (법정, 손철주, 오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