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시민 교양 신서 8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좁쌀한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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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참으로 새로운 것은 단지 일상 작업과 관련해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이 원칙을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방안이 기본적인 정치 문제에 대해 의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를 향해 의식적으로 전진하는 사회가 별다른 고민 없이 거부해야 할 만큼 경천동지할 혁신이라는 말인가?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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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사회주의 고전의 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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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유권자가 의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만 교체할 수 있어서 사실상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유권자가 자신을 대의할 사람을 1인만 선출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 P43

길드 사회주의 입장의 핵심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집단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가능한 최대로 보장하도록 조직되어야만 하며, 이는 능동적 자치를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함을 뜻한다는 신념에 있다. - P23

전국 코뮌에는 전국 농업, 산업, 공익 길드의 대표자들, 경제와 공익 영역의 전국 평의회 대표자들, 광역 코뮌 자체의 대표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P151

길드 사회주의의 핵심적 방법은 산업이나 상업에 존재하는, 아니면 재창조를 하든 파괴를 하든 어쨌든 접수해야 하는 정부 기능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전략적 위치에서 노동자가 자본가를 대체하는 것이다. - P224

길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회주의 실현의 주된 경로로 본다는 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 P267

이 책은 길드 사회주의자 전체나 다수가 인정하는, 길드 사회주의의 공식 선언서라 자임하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엄격한 길드 정통 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의 표명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검토한 사안들이 전국길드연맹의 실제 대회 결의의 주체가 된 것을 보고 나의 관점이 연맹의 공식 발표와 대체로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회 결의의 주요 내용 대부분을 담은 연맹 발간 보고서들의 참고 문헌이라 할 수 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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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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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1년 봄호(통권 제59호)

책담(冊談)


그럭저럭 버티는 동료에게 보내는 안부인사


양솔규 / 편집위원장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김영사/2020년5월/13,800원




2016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닷없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창원의 한 비정규직 사업장의 전 노조지회장이 고독사를 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가끔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보면 마주치곤 했던 농성텐트와 방송차가 생각났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회장 등 몇몇 지회간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복직(직접고용?)하고 투쟁을 마무리하는 걸로 정리되었다는 지인의 전언이 생각났다. 물론, 자세한 내막을 들은 건 아니어서, 투쟁 과정에 어떤 고민과 힘겨움이 있었는지 세세한 내막도, 심지어 지회장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놀랐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인데, 그 담당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고독사 했다는 점이었다. 극과 극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막막한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 사건은 단편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불길한 구조적인 변화의 징후로 보였고, 최근에도 노동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고립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책 《비혼1세대의 탄생》에서도 얘기한 바 있듯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토대부터 무너지고 있다. 2019년 전체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9.9%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울러, 2014년 1,374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447명으로 5년간 77.4% 증가했다. 《비혼1세대의 탄생》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다양한 결합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자고 주문한다. 경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인 이유는 여성들의 공감능력과, 유연한 ‘돌봄’ 노동의 발휘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덧붙인바 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규칙으로 강제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그래서 이 용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대신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로 부르자는 제안도 나오고는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경제적 궁핍과 개인의 원자화(책임의 개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 상태가 확산,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고독사’의 연료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살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자살이 일시적으로 보류되었을 뿐이며, 오히려 위험군은 증가(적체)되고 있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몰락은 무엇보다 사회적 고립의 제1원천이다. 가족의 해체 뒤에는 해고, 폐업, 빚, 신용불량자, 계약해지 등이 놓여 있다. 고독사의 형태가 자살인지, 병사인지 다를 수는 있지만, 그(그녀)의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인 궁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독사 뒤에는 남는 것이 있다.


“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우편함에 빼곡한 각종 독촉장들과 현관문에 붙어 있는 체납딱지들은 고독사한 ‘불량시민’을 추방하려는 부적 같다.


2020년 여름, 최장 기간의 장마가 닥쳤다. 그리고, 그 장마 속에서 ‘기후 우울’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2020, 2021년은 그래도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도 사회적 고립에 일조한다. 2020년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했고, 눈도 많이 왔다. 코로나도 힘든데, 날씨도 안도와줬다. 2020년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시내버스는 24.3%, 광역·도시철도(지하철)는 27.1%가 감소했다. 많은 평범한 대중들의 이동도, 만남도 끊겨버린 것이다.


일명 특수청소부. 누군가 홀로 죽으면 그 죽음의 현장에 가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이자 작가인 김완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2020년)는 죽음, 특히 고독사와 특수한 형태의 죽음들을 다뤘다. 2020년, 생각지도 않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의 흥행의 이면에는 죽음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고민꺼리가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 복지국가를 표현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곤 하는데, 출생과 육아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준비하며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보면, 곡소리 내는 상갓집 상주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장례식 풍경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장례식의 형태, 장사(葬事)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죽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잘(?) 보내주는 축제의 모습으로 끝이 정리될 수도 있다. 비록 고단한 삶이었겠지만 외롭게 보내지는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단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만으로 노동운동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 실제로도 노동운동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궁핍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나와 네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나와 너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동운동이었으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는 인간 존엄의 문제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앞서 얘기한 비정규직 지회장의 고독한 죽음은 노동운동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지금, 연대가 고프다.


<함께 보면 좋은 책>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 《무연사회》 / 용오름 / 2012년7월 / 13,000원

-성유진 외 / 《남자 혼자 죽다》 / 생각의힘 / 2017년 / 17,000원

-소준철 / 《가난의 문법》 / 푸른숲 / 2020년11월 / 16,000원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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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1세대의 탄생 - 결혼에 편입되지 않은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
홍재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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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소식지 <연대와소통> 2020년12월(겨울호/통권58호) 



책담(冊談)

 

변화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양솔규 / 편집위원장


 

비혼1세대의 탄생/홍재희/행성B/20207/16,000

 

얼마 전 일본인 출신 방송인 사유리의 출산 소식이 전해졌다. 가십거리로 넘길만한 연예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다. 바로 비혼(非婚) 출산이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전제로 출산해야만 한다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이 아직도 지배적인 현실에서 사유리의 결심은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비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20~30대 여성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유리의 선택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비혼 출산을 선택한 사람은 비단 사유리 뿐만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방송인 허수경도 비혼 출산을 한 바 있다. 당시에는 후폭풍이 지금보다 더 거셌다. 허수경은 두 번의 이혼 뒤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아기로 출산했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헤쳐 온 허수경의 삶과 선택은 사유리를 비롯한 청년 여성들의 생애 전망을 더 다양하게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신년이 되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을 사서 읽곤 했었다. 200011일 각 신문에는(정확히 21세기의 시작은 2000년이 아니라 200111일이긴 하지만) 21세기에 대한 전망으로 가득 찼다. 그 중 21세기에 없어질 것 10선에 일부일처 핵가족이 꼽혔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짧은 거 같기도 하지만, 또 긴 시간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는 비자 미소지로 추방당해야만 했던 2005년 상해에서, 현실사회주의를 확인하기 위해 갔던 1990년 중국 상해로의 여행을 떠올려 여행의 기술에 기록했다. 불과 15년 만에 남루한 인민을 거느린 중국은 첨단 국가자본주의, G2로 거듭났다. 마찬가지로 과연 일부일처 핵가족이 없어질까?’ ‘만일 없어진다면 남는 건 무엇인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던 가족제도는 보시다시피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고 있다. 부부관계에 기반한 자녀 둘의 핵가족을 정상가족으로 보는 시각에서 보자면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보겠지만, 가족의 형태와 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보는 시각에서는 이는 불가피한 변화일 것이다.


 

비혼1세대의 탄생의 저자 홍재희는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비록 흥행을 보증하는 인기 상업영화감독은 아니고, 영화 찍는 날보다, 다른 일로 밥벌이의 고단함을 견디는 일이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책도 3권이나 냈고, 영화로 제법 상도 많이 탔다. 그런 그가 말하는 비혼1세대의 시작은 70년대 이후 태어나 90년대에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다. 일명 X세대(필자 포함)로부터 출발했다. 그렇다고 ‘1세대를 꼭 연령층의 세대구분으로 딱 잘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혼의 상대적 개념으로 비혼을 전면에 내세운 것일 뿐, 저자는 결혼비혼이라는 이분법으로 가족구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구성의 가능성을 열어두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보기에(그리고 모두가 알듯이) 비혼의 근저에는 남성중심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깔려있다고 본다. 여성들에게 고통스러운 가부장제이긴 하지만, 그나마 이전에는 가장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의 생존을 보장해 주었다면(이 역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정확히는 보장해준다고 여겨졌지만), 신자유주의는 그런 가능성 자체를 거세해 버렸다. ‘결혼의 안정성이 무너지자 성별 분업체계 역시 무너져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비혼이 오로지 가임기 여성들의 이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는 관점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는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이다. 성별 임금격차, 경력단절에, 독박육아에, 최장 가사노동시간이 여성들 앞에 놓여 있다. 누가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숨통이 트여 있어 가능한 것이다

 

2019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6148000가구로 전체 가구 중 가장 큰 비중인 30.2%를 차지했다. 가구원수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인가구 비중이 30%를 넘었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흥미롭다. 13세 이상 인구 중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1.2%, 10년 전인 201064.7%에 비해 수치가 13.5%p 하락했다.(통계청)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9.7%2012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고,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0.7%를 차지했다.

 


그럼 1인가구, 비혼으로 사는 것은 행복하기만 할까? 저자는 결혼은 싫지만 혼자도 두렵다고 얘기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하며, 서로 돌봄을 나누는 존재이다. 당연히 비혼 1인가구라고 해서 고립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성 1인가구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적 결핍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적 불평등의 문제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소비욕망의 메커니즘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돌봄을 나누는 다양한 가족 형태, 친밀한 공동체를 확장하자고 말한다. 자유의 공동체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사회적으로 더 위험하고, 더 열악하며, 가난하게 사는데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고독사가 더 적은 점이다. 1인가구 고독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5%이며, 연령별로는 4,50대가 56.8%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원인을 여성들의 돌봄 능력에서 찾는다. 이것 역시 가부장제의 결과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은 살림을 해 나가는 법을 알고, 자신과 남을 돌볼 줄 알며, 상대방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이 없는 남성들은 생활에 무능하고, 공감하지 못하니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일상 불능자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혼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공동체가 필연적이라면 살림하고 서로 돌보는 능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남성일지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사회적으로 독거남성들에게 요리법 등 살림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싼 가격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요리법은 필수다. 건강보험공단은 왜 이런 거에 손을 놓고 있을까?

 


아무튼, 이제는 한국에서 혼자 될 가능성이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쓰더라도 여성들이 모두 결혼으로 골인하는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저출산, 저출산을 정말로 타개하고 싶다면,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평등한 일터가 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정상가족의 비율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가족제도에 대해 인정하고, 무엇이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저출산문제가 시급하다면 비혼출산등에 대한 인식 재고와 포용적 제도접근이 필요하다.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여러 나라의 저출산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3단계 직전이다. 1,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날마다 나오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일상이 회복되고, 해외여행 가고, 외식하러 가는, 그런 날을 꿈꿀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97IMF 위기,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은 우리에게 다른 길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졌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는 그 물음에 근본적인 수준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비혼1세대가 던지는 물음도 다르지 않다.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청년들이 비혼1세대로 화답하고 있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더불어 사는 길이 길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어떤 문제들은 반복함으로써 해답을 얻는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 문제들은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또는 다른 것을 해봄으로써 지식을 얻기도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익숙한 메아리가 아니라 처음 가보는 오솔길이다. 이미 후속 세대들은 그 길로 들어섰다.

 

 

<함께 보면 좋은 책>

홍재희 / 그건 혐오예요/ 행성B / 20175/ 15,000

김희경 / 이상한 정상가족/ 동아시아 / 2017/ 15,000

강한별 외 / 비혼수업/ 넥서스BOOKS / 2020/ 15,900

권미주 / 비혼 여성, 아무튼 잘 살고 있습니다/ 이담북스 / 2020/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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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 미래는 과거에 있다
장석준.우석영 지음 / 책세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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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0년(가을호, 통권57호)


책담(冊談)


과거에서 찾은 미래, 명쾌한 행동지침으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장석준, 우석영/책세상/20198/16,900

 

90년대 후반, 스웨덴 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그녀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라는 지역을 방문했는데, 온화한 가족공동체를 기반한 유목 사회를 자세히 살피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자면, 과거를 극복한 현재, 현재의 모순을 극복한 미래, 이런 식의 직선형 시간에 기반한 근대적인 계몽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그것이다. 여성의 권한이 강한 유목 사회의 가족구조, 생산소비의 순환시스템, 생태학적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 등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들을 제공해 주었다. 오래된 과거에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책제목의 역설은 다음의 책에서 다시 등장한다.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명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 땅에 살았던 한국인(조선인)도 있고, 저 멀리 남미나, 유럽의 사람도 있다. 비교적 오래 전인 20세기 전반기의 사람도 있고,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다. 서른 명의 사람도 적은 숫자는 아닌데, 그들의 사상을 한 책에 담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이 책은 그들의 방대한 사상을 성공적으로 소화시켜 요약해 준다. 그런데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서른 명의 사상가들을 마구잡이로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사상가들을 한 큐에 엮는다면 다음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정치가 추구해야 할 생태 사회주의의 내용과 방도아마도 한국(조선)의 정치가, 혁명가들을 등장시킨 것은 이러한 실천이 다름 아닌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이 벌여 나가야하기 때문일 테고, 다소 생소한 생태주의 사상가들은 전지구적 기후위기가 작금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역시 이러한 위기를 부추긴 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랠프 밀리밴드의 이중 민주주의나 노먼 토머스가 벌인 미국에서의 진보정당 운동은 실천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침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선구적인 사상가 앙드레 고르(Andrè Gorz)도 소개하고 있다. 고르가 보기에 생산과정의 자동화가 직접적인 개별 노동의 소멸을 가져오면서 임금노동 없이도 가능한 소비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생태주의적 사회 전환 비전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사회당 운동가 노먼 토머스(Norman Thomas)도 말년에 주목했다. 1963년 토머스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뉴딜식 복지를 넘어 모든 시민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사상가들도 몇 명 등장한다.

안데스의 체 게바라, 남반구의 그람시로 불리는 페루의 사상가이자 페루사회당을 만들과 활동한 운동가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es Mariátegui)” 이다. 마리아테기는 인디오 농민들을 중요한 변혁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그들의 농경공동체의 공유와 협동의 전통이 자본주의 이후의 씨앗이라 주장한다. 마치 마르크스가 러시아 농촌공동체가 탈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구스타브 란다우어(Gustav Landauer) 역시 생소한 사상가다. 아나키스트인 그는 1918년 독일 혁명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희생당하고 만다. 어쨌든 그의 독창적인 점은 진보사관을 비판하면서 인류가 돌아가야 할 질서를 농촌공동체, 자치도시, 장원과 길드 같은 중세의 질서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사회주의운동 내부의 과학기술 만능주의국가 숭배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는 역사 속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낳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면서, 과거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역사의 기나긴 사슬 중 맨 끝 고리가 변하면 과거의 사슬 전체가 바뀐다고 본다.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을 가장 축약해 주는 사상가는 구스타브 란다우어일 것이다.

 

제임스 러브룩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하나의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로 보고 박테리아가 가이아의 인프라며, 지구를 스스로 자율 조절하는 생물권들의 시스템이라고 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러시아 혁명 당시 생산 현장 출신 금속노동자이자 노동조합 지도자로서, 스탈린에 맞서 노동자 반대파로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실리아프니코프(Alexander Shliapnikov)의 노동자 통제 이론 등도 주목할 만하다. 70년대 칠레 아옌데 정권에 합류해 사이버넷(Cybernet)과 사이버신(Cybersyn)을 구축하고, 미국 CIA가 사주한 칠레 자본가들의 파업에 맞서 민중의 직접적인 경제 통제에 일조한 영국의 사상가 스태퍼드 비어(Stafford Beer)는 흥미롭다 못해 경이롭다. 과연 우리가 지나 온 20세기에 다시 훑어보고 발견해야 할 치트 키가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삶과 실천에 빚져 다시 우리도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 가만가만 사상의 조각들을 음미해 봐야 할 때이다.

 

<함께 보면 좋은 책과 자료>


바르테크 지아도시 감독 /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 2016

김윤성, 권재준 / 그림으로 이해하는 생태사상/ 개마고원 / 2009/ 12,000

장석준 / 사회주의/ 책세상 / 2013/ 9,500

이성형 엮음 /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김창민,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 창조적 마르크스주의자/ 1999/ 12,000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 <혁명> 1907 - 구스타프 란다우어 - P224

세상에는 억압받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처음에는 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치 투명 인간과 같던 이들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웅얼거림은 이내 외침이 되고 아우성이 된다. - P19

역사라는 거대한 사슬은 마지막 고리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사슬 전체가 바뀐다는 란다우어의 역사관처럼, 지금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촛불의 승패도, 그것이 남긴 정신도 바뀐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 P231

마리아테기는 이를 인디오 농민들 사이에 잔존한 원시 공산주의라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사멸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페루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토대였다. 자본주의 ‘이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씨앗이라는 것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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