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