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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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1년 봄호(통권 제59호)

책담(冊談)


그럭저럭 버티는 동료에게 보내는 안부인사


양솔규 / 편집위원장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김영사/2020년5월/13,800원




2016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닷없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창원의 한 비정규직 사업장의 전 노조지회장이 고독사를 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가끔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보면 마주치곤 했던 농성텐트와 방송차가 생각났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회장 등 몇몇 지회간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복직(직접고용?)하고 투쟁을 마무리하는 걸로 정리되었다는 지인의 전언이 생각났다. 물론, 자세한 내막을 들은 건 아니어서, 투쟁 과정에 어떤 고민과 힘겨움이 있었는지 세세한 내막도, 심지어 지회장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놀랐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인데, 그 담당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고독사 했다는 점이었다. 극과 극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막막한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 사건은 단편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불길한 구조적인 변화의 징후로 보였고, 최근에도 노동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고립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책 《비혼1세대의 탄생》에서도 얘기한 바 있듯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토대부터 무너지고 있다. 2019년 전체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9.9%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울러, 2014년 1,374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447명으로 5년간 77.4% 증가했다. 《비혼1세대의 탄생》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다양한 결합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자고 주문한다. 경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인 이유는 여성들의 공감능력과, 유연한 ‘돌봄’ 노동의 발휘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덧붙인바 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규칙으로 강제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그래서 이 용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대신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로 부르자는 제안도 나오고는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경제적 궁핍과 개인의 원자화(책임의 개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 상태가 확산,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고독사’의 연료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살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자살이 일시적으로 보류되었을 뿐이며, 오히려 위험군은 증가(적체)되고 있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몰락은 무엇보다 사회적 고립의 제1원천이다. 가족의 해체 뒤에는 해고, 폐업, 빚, 신용불량자, 계약해지 등이 놓여 있다. 고독사의 형태가 자살인지, 병사인지 다를 수는 있지만, 그(그녀)의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인 궁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독사 뒤에는 남는 것이 있다.


“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우편함에 빼곡한 각종 독촉장들과 현관문에 붙어 있는 체납딱지들은 고독사한 ‘불량시민’을 추방하려는 부적 같다.


2020년 여름, 최장 기간의 장마가 닥쳤다. 그리고, 그 장마 속에서 ‘기후 우울’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2020, 2021년은 그래도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도 사회적 고립에 일조한다. 2020년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했고, 눈도 많이 왔다. 코로나도 힘든데, 날씨도 안도와줬다. 2020년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시내버스는 24.3%, 광역·도시철도(지하철)는 27.1%가 감소했다. 많은 평범한 대중들의 이동도, 만남도 끊겨버린 것이다.


일명 특수청소부. 누군가 홀로 죽으면 그 죽음의 현장에 가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이자 작가인 김완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2020년)는 죽음, 특히 고독사와 특수한 형태의 죽음들을 다뤘다. 2020년, 생각지도 않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의 흥행의 이면에는 죽음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고민꺼리가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 복지국가를 표현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곤 하는데, 출생과 육아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준비하며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보면, 곡소리 내는 상갓집 상주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장례식 풍경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장례식의 형태, 장사(葬事)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죽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잘(?) 보내주는 축제의 모습으로 끝이 정리될 수도 있다. 비록 고단한 삶이었겠지만 외롭게 보내지는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단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만으로 노동운동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 실제로도 노동운동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궁핍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나와 네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나와 너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동운동이었으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는 인간 존엄의 문제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앞서 얘기한 비정규직 지회장의 고독한 죽음은 노동운동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지금, 연대가 고프다.


<함께 보면 좋은 책>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 《무연사회》 / 용오름 / 2012년7월 / 13,000원

-성유진 외 / 《남자 혼자 죽다》 / 생각의힘 / 2017년 / 17,000원

-소준철 / 《가난의 문법》 / 푸른숲 / 2020년11월 / 16,000원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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