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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 - 미래는 과거에 있다
장석준.우석영 지음 / 책세상 / 2019년 8월
평점 :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0년(가을호, 통권57호)
책담(冊談)
과거에서 찾은 미래, 명쾌한 행동지침으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장석준, 우석영/책세상/2019년8월/16,900원
90년대 후반, 스웨덴 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그녀는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는 라다크라는 지역을 방문했는데, 온화한 가족공동체를 기반한 유목 사회를 자세히 살피는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었다. 예를 들자면, 과거를 극복한 현재, 현재의 모순을 극복한 미래, 이런 식의 ‘직선형 시간’에 기반한 근대적인 계몽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그것이다. 여성의 권한이 강한 유목 사회의 가족구조, 생산소비의 순환시스템, 생태학적 균형을 중요시 여기는 문화 등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단초들을 제공해 주었다. 오래된 과거에서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 책제목의 역설은 다음의 책에서 다시 등장한다. 《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총 30명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다. 우리 땅에 살았던 한국인(조선인)도 있고, 저 멀리 남미나, 유럽의 사람도 있다. 비교적 오래 전인 20세기 전반기의 사람도 있고, 아직도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다. 서른 명의 사람도 적은 숫자는 아닌데, 그들의 ‘사상’을 한 책에 담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이 책은 그들의 방대한 사상을 성공적으로 소화시켜 요약해 준다. 그런데 우리가 참조할 만한 서른 명의 사상가들을 마구잡이로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사상가들을 한 큐에 엮는다면 다음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진보정치가 추구해야 할 생태 사회주의의 내용과 방도” 아마도 한국(조선)의 정치가, 혁명가들을 등장시킨 것은 이러한 실천이 다름 아닌 이 땅에서 우리 자신이 벌여 나가야하기 때문일 테고, 다소 생소한 생태주의 사상가들은 전지구적 기후위기가 작금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현실 사회주의 역시 이러한 위기를 부추긴 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랠프 밀리밴드의 ‘이중 민주주의’나 노먼 토머스가 벌인 미국에서의 진보정당 운동은 실천 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침 같은 것이다.
이 책에는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과 관련한 선구적인 사상가 앙드레 고르(Andrè Gorz)도 소개하고 있다. 고르가 보기에 생산과정의 자동화가 ‘직접적인 개별 노동의 소멸’을 가져오면서 ‘임금노동 없이도 가능한 소비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조건은, ‘생태주의적 사회 전환 비전과 결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사회당 운동가 노먼 토머스(Norman Thomas)도 말년에 주목했다. 1963년 토머스는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뉴딜식 복지를 넘어 모든 시민에게 충분한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사상가들도 몇 명 등장한다.
안데스의 체 게바라, 남반구의 그람시로 불리는 페루의 사상가이자 페루사회당을 만들과 활동한 운동가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José Carles Mariátegui)” 이다. 마리아테기는 인디오 농민들을 중요한 변혁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그들의 농경공동체의 공유와 협동의 전통이 자본주의 ‘이후’의 씨앗이라 주장한다. 마치 마르크스가 러시아 농촌공동체가 탈자본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봤던 것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구스타브 란다우어(Gustav Landauer) 역시 생소한 사상가다. 아나키스트인 그는 1918년 독일 혁명 이후 로자 룩셈부르크,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희생당하고 만다. 어쨌든 그의 독창적인 점은 진보사관을 비판하면서 인류가 돌아가야 할 질서를 농촌공동체, 자치도시, 장원과 길드 같은 중세의 질서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사회주의운동 내부의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국가 숭배’에 경각심을 갖게 한다. 그는 역사 속 특정한 원인이 특정한 결과를 낳는 인과관계를 부정하면서, 과거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역사의 기나긴 사슬 중 맨 끝 고리가 변하면 과거의 사슬 전체가 바뀐다고 본다.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21세기를 살았던 20세기 사상가들》을 가장 축약해 주는 사상가는 구스타브 란다우어일 것이다.

제임스 러브룩과 마찬가지로 지구를 하나의 가이아(Gaia, 대지의 여신)로 보고 박테리아가 가이아의 인프라며, 지구를 스스로 자율 조절하는 생물권들의 시스템이라고 보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러시아 혁명 당시 ‘생산 현장 출신 금속노동자’ 이자 노동조합 지도자로서, 스탈린에 맞서 ‘노동자 반대파’로 활동했던 알렉산드르 실리아프니코프(Alexander Shliapnikov)의 노동자 통제 이론 등도 주목할 만하다. 70년대 칠레 아옌데 정권에 합류해 사이버넷(Cybernet)과 사이버신(Cybersyn)을 구축하고, 미국 CIA가 사주한 칠레 자본가들의 파업에 맞서 민중의 직접적인 경제 통제에 일조한 영국의 사상가 스태퍼드 비어(Stafford Beer)는 흥미롭다 못해 경이롭다. 과연 우리가 지나 온 20세기에 다시 훑어보고 발견해야 할 ‘치트 키’가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삶과 실천’에 빚져 다시 우리도 새로운 여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 가만가만 사상의 조각들을 음미해 봐야 할 때이다.
<함께 보면 좋은 책과 자료>
바르테크 지아도시 감독 /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 / 2016년
김윤성, 권재준 / 《그림으로 이해하는 생태사상》 / 개마고원 / 2009년 / 12,000원
장석준 / 《사회주의》 / 책세상 / 2013년 / 9,500원
이성형 엮음 /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 김창민,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기 : 창조적 마르크스주의자〉 / 1999년 / 12,000원
과거 자체가 미래다. 과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과거는 항상 생성되는 중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과거는 늘 변화하고 형태를 바꾼다. <혁명> 1907 - 구스타프 란다우어 - P224
세상에는 억압받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처음에는 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치 투명 인간과 같던 이들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웅얼거림은 이내 외침이 되고 아우성이 된다. - P19
역사라는 거대한 사슬은 마지막 고리가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사슬 전체가 바뀐다는 란다우어의 역사관처럼, 지금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촛불의 승패도, 그것이 남긴 정신도 바뀐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 P231
마리아테기는 이를 인디오 농민들 사이에 잔존한 원시 공산주의라 파악했다. 그가 보기에 이는 사멸할 수밖에 없는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페루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토대였다. 자본주의 ‘이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씨앗이라는 것이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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