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 노동이 답이다
안나 쿠트.에이단 하퍼.알피 스털링 지음, 이성철.장현정 옮김 / 호밀밭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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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여름호(통권64호) 



책담(冊談)

 

긴축의 시대, 노동시간 단축을 지렛대로!

 

 


양솔규 / 편집위원장

 

 

4일 노동이 답이다/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호밀밭/20225/15,000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지방선거, 양대 선거가 모두 끝이 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므로 모두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분주한 거 같다. 더불어민주당이야 가지고 있는 파이가 크니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국민의힘이라고 시작

쉽겠는가. 모래알같은 당 조직의 결합력과 상실된 깃발이 아직 충분히 재건되지 않았다. 정의당은 파이가 작아 오히려 더 문제인 거 같다. 누구든 쉽지 않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참담한 결과야 이미 예견된 바이고, 당연히 스스로 책임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위기를 정책의 위기로 진단하면서 승부수’(?)였던 4일제공약 등이 충성도가 떨어지는 공약이며, ‘졸속 공약이고, “1층을 안 짓고 2층을 짓겠다는 거라고 지적한다(장제우 작가). 이것이 정의당에 대해 애정어린 비판인지 비난인지는 모르겠지만, 백번 양보해서 4일제공약이 졸속적인 공약이 맞다 하더라도 과연 졸속 공약때문에 정의당에 줄 표를 거둬드렸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의당의 4일제 공약을 포함한 정책들이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선거 패배의 원인으로까지 비약시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대선에서는 주4일제 복지국가나 신노동법이 주요한 슬로건이자 공약이었지만, 지방선거에서 주4일제와 관련해서는 공공부문 시범 운영노동시간 단축 사업장 인센티브단 두 줄이 전부였다. 천번 양보해 대선 패배의 원인을 졸속적인 주4일제에 돌릴 수는 있겠지만, 과연 지방선거에서 대표공약도 아니었던 4일제를 심판장에 불러세우는 것은 4일제에게는 억울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정의당의 정책이론가 중 한 명인 장석준도 (지방선거가 아니라) 이번 대통령선거의 기본 구도로 인해 정의당이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구호를 내세웠더라도 지지를 확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전제를 달기는 하지만, ‘4일제에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4일제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에게 친숙한 노동시간 표현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4일제 복지국가구호는 정의당이 여전히 정규직, 화이트칼라를 주된 지지 집단으로 설정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당장의 일자리나 노동 안전 등이 관심사인 계층에게는 상당히 태평한 정치 세력으로 비췄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의 근저에는 4일제라는 슬로건이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표현(주당 노동시간 단축 등)을 가둬버리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정의당 대선공약집에는 4일 근무제(32시간)’으로 표현되어 있는 바, 반드시 주4일제가 주3일의 휴무일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며, 노동시간단축의 또다른 표현이라는 변호를 해주고 싶다. 오히려 정의당의 실책은 4일제에 대한 대중의 호응에 적극 부합하면서, 그 속에 담긴 정책패키지들 예컨대 최소노동시간보장제생애주기별 노동시간 선택제’, ‘성별임금격차해소’, ‘국가일자리보장제’, ‘생활임금제등을 종합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대중들이 4일제에 호응한 것은 3일 휴무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것을 청년층, 화이트칼라의 요구로 축소해서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산업특성과 근무방식에 따라 대중들이 어느 지점, 어떤 표현에 자신의 욕구를 투과해 반응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장시간 노동체제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억누르는 조건에서 굳이 그렇게 짜게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더군다나 코로나 19’ 시국 동안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유시간강제로경험하면서, 코로나 이전의 강제 장시간 노동체제에 대비해 보고, 삶의 의미나 노동의 목적 등에 대해 좀 더 성찰적인 시간을 견뎠을 거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대선 과정에서 4일제에 대해 일정한 호응(비록 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이 있었다면, 왜 그런 호응이 있었는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 적극적으로 해석해 과제화 시키는 게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 뭘 혁신하고 어떤 비상대책을 세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요컨대 정의당이 평소 다양한 세력, 현장과 연대해 왔다면 다양한 통로를 통해 (4일제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결론을 만들어 냈을 수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부당하게 4일제가 주범인 것으로 낙인 찍지는 말자는 것이다.

 

4일 노동이 답이다는 그런 의미에서 논의의 시작점에 읽을 만한 책이다. 원제는 “The Case for a Four Day Week”이고 (4일 근무제 도입사례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거 같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의 연구위원들인 안나 쿠트, 에이단 하퍼, 알피 스털링이 저자이다. 신경제재단(NEF)은 로자룩셈부르크재단(브뤼셀사무소), 아탁(ATTAC), 루즈벨트 연합과 함께, “노동시간의 공정한 나눔을 위한 유럽 네트워크(the European Network for the Fair Sharing of Working Time)”를 구축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다.

 

이 책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 202251일에 출간되었다. 1886518시간 노동제 총파업과 연이은 학살들이 일어나자, 189051일 제2인터내셔널은 8시간 노동제를 위한 국제 시위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51일 메이데이의 기원에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출판사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 교육원의 이사이자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이성철 선생님과, 부산의 호밀밭 출판사 발행인인 장현정 선생이 번역했다. 지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이런 돈 안되는’(?) 책을 번역출간까지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역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장시간 중노동에 대한 게으른 고정관념은 반드시 깨야만 하는 일종의 질병이고 이다. 이 책을 출간하면서 호밀밭출판사도 주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1856년 호주 멜버른 석공들이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해 쟁취했고, 1919년 설립된 ILO8시간(40시간제) 산업노동시간 협약을 제정해 전세계에 이 원칙이 확산되었다. 1926년 포드자동차는 임금 삭감 없이 주5, 40시간 노동을 도입했으며, 1930년대 켈로그 시리얼 회사는 8시간 3교대 근무를 6시간 4교대로 바꾸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20세기 중반까지 이틀 동안의 주말과 주40시간 노동은 표준이 되었다.(한국은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8시간 노동 규범에 갇혀버렸고, 케인스가 (1930년대에) 예측한 주당 15시간 표준은 아직도 요원하다.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노동시간 단축은 공식 육아와 비공식 육아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 여성과 남성의 관계 등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21세기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사회적 돌봄은 디테일하게 설계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노동시간 단축이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전제 조건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키우는 것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원분배의 전제 조건이다. 정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환경 보호, 생태발자국 줄이기에도 노동시간 단축은 강력한 동인이 된다. 장시간의 유급 노동과 고탄소 소비 패턴 사이에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저자들은 주당 노동시간 단축이 생태적 한계 내에서 인간의 번영과 사회적 참여에 도움이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실제 사례

 

프랑스는 1998년과 2001년 사이 표준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12.5%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 속에서 조스팽 사회당 정부는 녹색당, 공산당과의 연정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브리1, 오브리2법이라 불리는 법안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재정적 지원 등이 이루어졌다. 이후 들어선 사르코지 우파정부는 오드리법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주35시간 노동은 사실상 폐지되지 않았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노인 요양병원은 하루8시간 일하던 68명의 요양보호사의 노동시간을 급여 손실 없이 6시간 노동으로 전환했다. 17명이 추가로 고용되었고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스트레스 감소, 건강 증진, 결근 감소 등이 나타났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실업률을 낮춤으로써 높은 사회적 비용을 낮출 수 있고, 더 생산적인 곳에 공적자금이 투여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단순한 노동시간 상한이 아니라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다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벨기에는 2002년 신용 시간제(time credit scheme)를 도입했다.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개인은 최대 1년 동안 아예 쉬거나, 2년 동안 절반만 일하거나, 나누어 쉬면서 최대 5년 동안 20%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일 금속 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계좌로 알려진 시간은행 제도가 보편화되었다. 문제는 유연한 근무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유연함을 누가 통제하는가이다. 연간노동시간 분배, 교대제, 안식년, 근무시간 가불제도 등에서 노동자들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게끔 요구해야 한다.

 

제조업 등에서 임금 손실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작업의 질을 개선해서 생산성을 높여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포드나 켈로그의 경우에 그러했다.) 돌봄 노동 같은 다른 산업 같은 경우에 똑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추가로 직원을 채용해야 하고, 정부의 지원 등이 필요한 이유다. 대신 정부는 실업률 감소로 인한 사회적 비용 감소로 투여 비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어느 계층에 한정될 때 계급 내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시간 계좌-은행이나, 정의당의 최소노동시간보장제, 생활임금제 등이 노동시간 단축의 패키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장시간노동-저임금 / 실업-빈곤 / 장시간노동-고임금 / 단시간노동-고임금(고소득) 등으로 나뉜 계급 내(그리고 산업별) 임금과 시간의 불평등을 고쳐 나가야 한다.

 

시간은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사회적자산이다. 이를 확보하는 싸움이 운동의 토대를 결정 짓는다. 저자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정상의 개념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8시간 노동제, 40시간 노동은 이제 새로운 정상의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이다. 다만 그러한 변화는 느리게 일어날 수밖에 없고(그러나 이미 시작되었다.) 결과는 획일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임금, 산업 전략, 복지 국가 개혁, 기후 완화 등 진보적 구조변화 패키지의 일부이다. 예를 들어 저자들은 그린 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자동화의 압박) 속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산업 내 정상의 기준들을 주4일제(노동시간단축)로 채택시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전히 노동조합의 단체교섭(collective bargaining)이 중요하며, 여유가 있는 부문의 경우 보다 많은 급여 인상보다 추가 휴가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영진의 리더십, 정부의 정책적 지원, 노동조합의 교섭, 세 가지 경로를 강제하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평가에서 글을 시작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다. 4일제(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화두를 정의당이 던졌다면, 그 부족한 정책적 디테일과 사회적 압력은 노동조합이 맡아야 한다. 정의당은 지방선거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 위원회 설치 및 공공부문 시범 운영을 내세웠다. 이 공약은 노동조합이 받아 안을 수 있다. 1998IMF 사태 때를 돌이켜보면 노동계에서는 노동시간단축과 사회적 안정망 확보를 강력하게 제기했었다. 지금의 정국은 그때를 돌아보게 한다. 긴축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4차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변화를 맞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한 정책적 대응과 집단적 압력을 모을 수 있는 위원회를 총연맹과 지역 노동 차원에서 만들 수 있다. 또는 공공부문의 주4일제 시범 운영을 직접 단체교섭을 통해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부족 문제’, ‘수요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다소 거칠더라도 사회적 논의를 추동해야 할 것이다. 자본은 먼저 시작하고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4일 근무시대/피에르 라루튀르,도미니크 메다/율리시즈/20183/15,000

금요일은 새로운 토요일-경제를 살릴 주4일 근무제/페드로 고메스/넥서스BIZ/20226/19,000

기본소득을 넘어 보편적 기본서비스로!/안나 쿠트, 앤드루 퍼시/클라우드나인/20217/15,000

8시간vs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벤저민 클라인 허니컷/이후/2011/18,000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새물결/200512/9,900

무엇이 ‘정상‘인가에 대해 깊이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최악의 장애물로 알려져 있다. - P94

네덜란드에서 노동자들은 아픈 친척, 광범위한 가족 구성원, 동거인이나 이웃 혹은 친구를 포함한 지인들을 돌보기 위해 법적으로 돌봄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의 일환으로 고용주는 직원에게 통상 임금의 70% 이상을 지급해야 하고,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최대 2주 동안 적어도 법정 최저 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 P93

진보적이 의제를 구축하고 실현하려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강력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유급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사람들에게 공동체 기반 활동에 참여하거나 지역 그룹에 가입하고, 지역과 국가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도 시간이 걸린다. - P32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런 말로는 부족할 만큼 사실 훨씬 더 소중하다. 우리에게 돈은 없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시간은 누구에게나 한정된 자원이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전부이며 우리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좋다. 우리가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또 얼마만큼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이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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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사회주의 고전의 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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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2년 봄호 (63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책세상/20222/11,200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좁쌀한알/20212/15,000

 

3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10)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1)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는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국회의원 1,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43)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 있는 투표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99%의 시간동안 99%의 의제들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2, 20222,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7권으로 구성된 사회주의 사상사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 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시기에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운동의 동력이 촛불혁명을 통해 극복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리 유명한 프리미어리그 팀들도 전성기를 다시 되찾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G.D.H. 콜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와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9/37,000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12/30,000

로버트 오언/G. D. H. ,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2/16,800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7/24,000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1/각각 23,000, 25,000, 21,000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3/4,800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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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D. H. 콜의 산업민주주의 시민 교양 신서 8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좁쌀한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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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참으로 새로운 것은 단지 일상 작업과 관련해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이 원칙을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방안이 기본적인 정치 문제에 대해 의식적으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를 향해 의식적으로 전진하는 사회가 별다른 고민 없이 거부해야 할 만큼 경천동지할 혁신이라는 말인가?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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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사회주의 고전의 세계 리커버
G. D. H. 콜 지음, 장석준 옮김 / 책세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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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통권 63호, 2022년 봄호

책담(冊談)


협업자로서의 노동자 지위를 쟁취하자


양솔규 / 편집위원장








《길드 사회주의》/G. D. H. 콜/책세상/2022년2월/11,200원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G. D. H. 콜/좁쌀한알/2021년2월/15,000원



3월9일 대통령 선거 결과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0.73%, 투표수 차는 24만 표에 불과했다. 우리가 보기엔 민주당이 ‘친노동’ 정당은 분명 아니지만 어쨌거나 민주당의 박빙의 패배에 아쉬워하는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5월10일) 17일 후에 사전투표가 진행될(본 투표 6월1일) 지방선거가 대선과 사실상 패키지 성격을 지닐 걸 생각한다면(5.18과 5.23 노무현서거일이 중간에 끼어있다.) 연이은 대선-지방선거 결과가 당장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끼칠 후폭풍이 적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런 실망 어린 소회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진보정당 또는 진보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또한 정치, 사회운동 진영의 선거 대응 자세와 과정을 생각하면, 상당 기간 진보정당운동의 좌초는 계속될 거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정의당 심상정 후보(2.37%, 80만 표)를 포함해 이백윤, 오준호, 김재연 등 범 진보(?)계열 후보의 총 득표수 86만 표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역사적 실패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비관적 상황은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거니와, 개개인이나 특정 정파가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지났고, 문재인 5년도 허송세월하며 지났다. 긴 세월동안 켜켜이 쌓인 실패와 좌절과, 무기력의 체지방이 구호와 공학 만으로 빠질 수 있겠는가? 진보세력도 진보세력이지만 민주당도 급격한 추락곡선에 올라탔다.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줬지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못지않게 그 어느 것도 실천에 옮기지 않았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유동성 증가로 철퇴를 맞았다. 조국이니, 386이니, 내로남불이니 하는 것은 거대한 산불의 밑불 또는 휘발유가 되어 주었다.


문제는 노동자가, 민중들이, 시민이 이를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제의 한계, 첫 번째, “유권자는 의원을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다 끝나 선거를 새로 실시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혼쭐을 내주고 싶어도 다음 선거는 5년 뒤(또는 4년 뒤)에나 온다. 둘째, “대의할 사람이 1인(국회의원 1인, 대통령 1인 등) 밖에 없다”. 1인 대표자가 나의 모든 문제를 대의해 주지 않는다. 임대차 3법은 민주당 의견에 찬성하지만, 언론중재법은 반대할 수 있고, 경제정책은 반대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찬성할 수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항상 이 문제는 이 사람과 동의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는 다른 이와 동의할 게 틀림없다”.(《길드 사회주의》 43쪽) 그러나 나의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는 단 4년, 또는 5년에 한 번 있는 선거밖에 없으며 그것도 오직 1/4천4백만 명(총 유권자수)의 비율로만 반영될 뿐이다. 한정된 비례의석 속에서 절반이 사표가 되고 만다. 더군다나, 선출된 대표자는 수많은 의제들에 대해 나의 견해와는 대부분 다르다. 정치 영역에 한정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기간에 거의 모든 의제에서 나의 뜻이 반영되지 않는다. 요컨대 작은 결과에 절망하기보다는 보다 큰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결함을 봐야 되는 시기다. 노동조합운동, 진보정당 운동의 ‘좌초’를 슬퍼하기보다는, 애초 우리가 갖지 않았던, 우리가 가지 않았던, 우리가 보지 않았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방법과 내용을 갖춰 나가는 것이 이 시대를 견뎌나가는 유일한 방도일 거 같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한 저자가 쓴 귀중한 책 두 권을 마주하게 된다.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사회주의자 G.D.H.콜(조지 더글라스 하워드 콜, 1889~1959)이 쓴 《길드 사회주의》(1920)와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1957)가 그것이다. 이 오래된 책이 2021년 2월, 2022년 2월, 1년여의 사이를 두고 연달아 번역되어 나왔다. 전간기(戰間期) 영국 노동당의 이론가 G.D.H. 콜은 유명한 역사가들(에릭 홉스봄, E.P. 톰슨, C.W. 밀즈, 도널드 사순)의 책에 자주 소개되고는 했는데, 오랫동안 한국에서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전설처럼 떠돌기만 했었다. G.D.H.콜의 스승격이자 영국 복지국가와 사회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시드니 웹, 비아트리스 웹 부부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G.D.H.콜과 웹 부부의 저작들이 활발히 번역되어 나왔다. 콜의 가장 중요한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 총 7권》과 《1914년 이후 노동당사》만 나오면 중요한 저작들은 대체로 번역되어 나오게 되는 셈이다. 번역자 장석준은 2012년에 재출간된 G.D.H.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1980년 김철수 역)와, 이번에 나온 두 권의 책 《길드 사회주의》, 《G.D.H. 콜의 산업민주주의》에 모두 총합 180여 페이지에 달하는 충실한 해제를 붙여놨다.


앞에서 얘기한 자본주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관련해 G.D.H. 콜의 선배 격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웹 부부는 자본주의 대의제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가장 잘 아는 직업 영역(산업 영역)에서는 ‘하인’으로 남아 있는 반면, 특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회 전체의 일반적 이해관계(예컨대 정치)에 대해서는 주권자로 인정 받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다. 안그래도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그 외 부문에서는 흔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관념 그 자체가 정치적인 관계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관계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웹 부부의 지적으로부터 G.D.H. 콜은 시작한다. 콜은 묻는다. “오늘날 정치 영역에서 우리 모두는 투표할 권리를 지닌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료 인간에 대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생산을 담당하는 영역에서는 왜 우리 모두가 정치 영역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어서는 안 되는가?” 이러한 권리를 획득해야만 우리는 사회적 시민권(social citizenship)에 머물지 않고 산업적 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과정은 거저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부터 노동계급의 세 가지 무기가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당운동), 협동조합운동이며, 노동자 개인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든다. 그리고 세 가지 운동이 상호 연결되고, 발전되면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들을 마련하게 된다. 콜이 말하는 길드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협소한 대의제 정치 영역을 넘어 생산과 소비 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운동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예컨대 산별노조)이 생산 영역의 중요한 권력자원이기는 하지만 길드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생산 영역의 자치조직으로 그대로 전화될 수는 없다. 그 대신 등장하는 것이 산업길드의회이다.(영국노총 TUC의 congress와 산업길드의회의 congress가 같으며 ‘회의’,‘의회’라는 뜻에 주목하자.) 소비 영역의 자치조직은 ‘집합 공공재 평의회’ 또는 미래의 진화된 협동조합운동이 담당할 것이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탈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일종의 ‘진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부정적 기능, 즉 브레이크만 쥐고 있었다면, ‘진화’의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 즉 ‘운전대’도 쥐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산업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콜은 단순히 노사협의제나 노동이사제를 넘어 기업과 산업 안에서 노동자가 협업자 지위(partner(ship))를 획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업자 자격은 “노동자가 해고당하기에 충분한 잘못을 스스로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해고당할 위험이 없는 기업 내 지위”를 말한다.


발상의 출발점을 다시 지적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대의제는 오직 하나(국회)로 단일화 되어 있다. 이런 단순한 대의제는 “정치 엘리트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많은 수준에서, 영역에서, 지역에서 대의제가 필요하며 이러한 대의제들을 ‘기능적 대의제’라 하고 콜의 ‘길드 사회주의’는 ‘기능 민주주의’가 현존 민주주의에 절망한 대중들에게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길드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상향식 민주주의’가 철저하게 원칙으로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G.D.H. 콜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된 상을 콜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즉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며, 동어반복이지만 ‘사회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본연의 사회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또한 ‘국가 사회주의’의 관료적이고 억압적인, 그리하여 비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사회주의,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확장해 사회 전반에 민주주의적 제도가 뿌리내리는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일명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계급없고 문명된 사회를 모색하면서, 그러한 운동은 민주주의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458쪽)

윤석열 5년이 끔찍하기야 하겠지만 생소한 광경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익숙하게 경험했던 것들일 것이며, 또한 노무현,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일들도 반복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당운동이, 진보적 사회운동이 지금 부딪히고 있는 쇠퇴와 침체가 단순히 윤석열 국힘 정권 때문도 아니고, 이들 때문에 급속하게 심화될 거라 보지도 않는다. 운동의 동력 저하가 촛불혁명을 거치며 반등되지 못했다는 것도 자명해졌다. 보다 내재적 원인을 따져보고, 사상적 동력을 숙성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고, 모순이 심화되더라도 극복되지 못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축구팀들도 전성기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물며 빛을 발한 적도 없는 한국의 척박한 노동조합운동, 당운동에 마음은 아프더라도 절망하지 말고 아껴주고 보살피는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역사에 비약이 없다면 비루한 우리의 실력은 많은 사람들이 그저 채우고 가꾸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G.D.H. 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버린 수많은 지적 자원들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G.D.H. 콜이 말년에 관심을 가졌던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운동도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콜은 말했다.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면 선거에 이긴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책도 없이 선거에 승리한다는 것이야말로 다음 선거에서 지고 자파의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C.W.밀즈, 《마르크스주의자들》, 167쪽)


민주당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통해서 정책도 없이 승리했고, 이번 대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자파 지지자들 속에 낙담과 환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 운동은 민주당이 범한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긴 시간 씨뿌리는 과정을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G.D.H. 콜과 G. D. H. 콜, G.D.H.코올 등으로 저자 표기가 나눠져 있어 검색의 어려움이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 D. H. 콜, 김철수 옮김/책세상/2012년9월/37,000원

《영국 협동조합의 한 세기》/G.D.H. 콜, 정광민 옮김/그물코/2015년12월/30,000원

《로버트 오언》/G. D. H. 콜, 홍기빈 옮김/칼폴라니연구소/2017년2월/16,800원

《사회주의 사상사 1》/G.D.H. 코올/신서원/1992년5월/절판

《영국의 위기 속에서 나온 민주주의》/김명환/혜안/2009년7월/24,000원

《산업민주주의 1,2,3》/비어트리스 웹, 시드니 웹, 박홍규 옮김/아카넷/2018년1월/각각 23,000원, 25,000원, 21,000원

《마르크스주의자들》/C.W.밀즈, 김홍명 역/한길사/1982년3월/4,800원

유권자가 의원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만 교체할 수 있어서 사실상 선택의 폭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유권자가 자신을 대의할 사람을 1인만 선출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 P43

길드 사회주의 입장의 핵심은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집단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가능한 최대로 보장하도록 조직되어야만 하며, 이는 능동적 자치를 사회의 모든 부분으로 확대함을 뜻한다는 신념에 있다. - P23

전국 코뮌에는 전국 농업, 산업, 공익 길드의 대표자들, 경제와 공익 영역의 전국 평의회 대표자들, 광역 코뮌 자체의 대표자들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 P151

길드 사회주의의 핵심적 방법은 산업이나 상업에 존재하는, 아니면 재창조를 하든 파괴를 하든 어쨌든 접수해야 하는 정부 기능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전략적 위치에서 노동자가 자본가를 대체하는 것이다. - P224

길드 사회주의는 민주주의를 사회주의 실현의 주된 경로로 본다는 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통합하여 바라본다는 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 P267

이 책은 길드 사회주의자 전체나 다수가 인정하는, 길드 사회주의의 공식 선언서라 자임하지는 않는다. 다행히도 엄격한 길드 정통 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 전개될 내용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의 표명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검토한 사안들이 전국길드연맹의 실제 대회 결의의 주체가 된 것을 보고 나의 관점이 연맹의 공식 발표와 대체로 일치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대회 결의의 주요 내용 대부분을 담은 연맹 발간 보고서들의 참고 문헌이라 할 수 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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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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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1년 봄호(통권 제59호)

책담(冊談)


그럭저럭 버티는 동료에게 보내는 안부인사


양솔규 / 편집위원장



《죽은 자의 집 청소》/김완/김영사/2020년5월/13,800원




2016년 새해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느닷없는 신문기사를 보고 너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창원의 한 비정규직 사업장의 전 노조지회장이 고독사를 한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가끔 장을 보러 마트에 가다보면 마주치곤 했던 농성텐트와 방송차가 생각났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회장 등 몇몇 지회간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복직(직접고용?)하고 투쟁을 마무리하는 걸로 정리되었다는 지인의 전언이 생각났다. 물론, 자세한 내막을 들은 건 아니어서, 투쟁 과정에 어떤 고민과 힘겨움이 있었는지 세세한 내막도, 심지어 지회장의 얼굴조차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놀랐던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이 ‘노동운동’, ‘노동조합운동’인데, 그 담당자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고독사 했다는 점이었다. 극과 극의 현실은 노동운동의 막막한 현실을 극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이 사건은 단편적인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불길한 구조적인 변화의 징후로 보였고, 최근에도 노동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고립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삶의 조건이 되고 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책 《비혼1세대의 탄생》에서도 얘기한 바 있듯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토대부터 무너지고 있다. 2019년 전체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9.9%로 6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울러, 2014년 1,374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447명으로 5년간 77.4% 증가했다. 《비혼1세대의 탄생》은 이러한 사회적 고립에 맞서기 위해서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기보다는, 새로운 다양한 결합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현하자고 주문한다. 경제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고독사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인 이유는 여성들의 공감능력과, 유연한 ‘돌봄’ 노동의 발휘가 아닐까 하는 해석도 덧붙인바 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방역을 위한 필수적인 행동규칙으로 강제했다. 코로나19 초창기에는 그래서 이 용어의 부정적 뉘앙스를 대신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두기로 부르자는 제안도 나오고는 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자본주의 사회가 강제하는 경제적 궁핍과 개인의 원자화(책임의 개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고립’ 상태가 확산,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코로나19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있다. 비대면과 거리두기는 ‘고독사’의 연료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살률은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지만, 전문가들은 자살이 일시적으로 보류되었을 뿐이며, 오히려 위험군은 증가(적체)되고 있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몰락은 무엇보다 사회적 고립의 제1원천이다. 가족의 해체 뒤에는 해고, 폐업, 빚, 신용불량자, 계약해지 등이 놓여 있다. 고독사의 형태가 자살인지, 병사인지 다를 수는 있지만, 그(그녀)의 사회적 고립은 경제적인 궁핍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고독사 뒤에는 남는 것이 있다.


“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 딱지가 붙어 있다.”


우편함에 빼곡한 각종 독촉장들과 현관문에 붙어 있는 체납딱지들은 고독사한 ‘불량시민’을 추방하려는 부적 같다.


2020년 여름, 최장 기간의 장마가 닥쳤다. 그리고, 그 장마 속에서 ‘기후 우울’이라는 용어도 생겼다. 2020, 2021년은 그래도 그나마 나아졌다고 하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도 사회적 고립에 일조한다. 2020년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했고, 눈도 많이 왔다. 코로나도 힘든데, 날씨도 안도와줬다. 2020년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량이 시내버스는 24.3%, 광역·도시철도(지하철)는 27.1%가 감소했다. 많은 평범한 대중들의 이동도, 만남도 끊겨버린 것이다.


일명 특수청소부. 누군가 홀로 죽으면 그 죽음의 현장에 가서 청소를 하는 ‘청소부’이자 작가인 김완이 쓴 《죽은 자의 집 청소》(2020년)는 죽음, 특히 고독사와 특수한 형태의 죽음들을 다뤘다. 2020년, 생각지도 않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책의 흥행의 이면에는 죽음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고민꺼리가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흔히 복지국가를 표현할 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수식어를 덧붙이곤 하는데, 출생과 육아뿐만 아니라 죽음의 문제 역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접근하고 준비하며 받아들일 것인가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보면, 곡소리 내는 상갓집 상주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장례식 풍경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장례식의 형태, 장사(葬事) 방법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도처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죽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잘(?) 보내주는 축제의 모습으로 끝이 정리될 수도 있다. 비록 고단한 삶이었겠지만 외롭게 보내지는 않아야 하는 게 맞지 않겠나.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단지 임금인상과 고용안정만으로 노동운동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 실제로도 노동운동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궁핍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고,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나와 네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나와 너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노동운동이었으니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는 인간 존엄의 문제가 노동운동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앞서 얘기한 비정규직 지회장의 고독한 죽음은 노동운동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지금, 연대가 고프다.


<함께 보면 좋은 책>

-NHK 무연사회 프로젝트팀 / 《무연사회》 / 용오름 / 2012년7월 / 13,000원

-성유진 외 / 《남자 혼자 죽다》 / 생각의힘 / 2017년 / 17,000원

-소준철 / 《가난의 문법》 / 푸른숲 / 2020년11월 / 16,000원

"지금 여기에서 내가 외롭다면 또 다른 누군가도 어딘가에서 홀로 외로울 것이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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