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 이태원 참사 가족들이 길 위에 새겨온 730일의 이야기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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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연대, 희망의 연대

 

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29 (2025.10.)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김초롱 / 아몬드 / 20231029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31029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 창비 / 20241029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 용산FM 기획 / 플레이아데스 / 20241029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가을을 맞아 가족과 연화리에 나들이 갔다. 맛있는 해산물도 먹고, 회도 먹었다. 오랜만에 간 연화리에는 못보던 건물도 많았고, 새로 생긴 카페와 음식점도 많았다. 고즈넉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연화리의 모습은 퇴색되고 있었다. 어느샌가 부산의 관광명소로 연화리가 알려지게 되었고,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소개되곤 했다. 마치 변해버린 제주도 함덕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해변가 밤산책에 나서자 더욱 변해버린 연화리가 뚜렷해졌다. 연화리 해변 가운데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해변의 조망권을 장악했다. 상가에는 스타셰프’(현수막에 본인을 스스로 스타셰프라고 칭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입주예정이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해변을 따라 더 가자 멀리 숙박시설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엔 아난티 호텔 건물 끄트머리가 얼핏 보였다. 거의 완공된 듯해 보이는 정체불명의 거대 건물이 왜 영업을 안하고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지도앱을 열어 검색해보니, 아뿔싸. 지난 2월 화재가 발생해 노동자 6명이 질식사로 죽고, 27명이 부상을 입은 그 반얀트리 해운대 호텔 참사의 현장이었다. 불과 8개월 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고, 참사의 현장이 연화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우린 일상에 찌들며 많은 것을 잊고 산다.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 수는 없는 법이고, 망각(忘却) 역시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잊지 않기 위해, 아니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서사와 가치도 있는 법이다.

2016년 뜨거웠던 겨울,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혁명’(?)이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세월호 유가족이 있었다. 벚꽃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기대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날 동안 문재인 정부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일부 진전도 있었다.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도 제정되었고, 2024년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 법은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1장 총칙 제1)에 한정된 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인정했듯이 사회적참사 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관련 54건의 권고사항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리고 평행이론처럼 2024년 겨울 또다시 뜨거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국민에 대한 계엄령에 맞선 시민들의 빛의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저항의 중심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있었다. 다시 대선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윤석열 정부가 보여준 것은 기만과 폭력, 정치화와 사기뿐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의 극악무도한 유가족에 대한 테러와 조롱은 도를 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부추겼으며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박근혜는 진도체육관에 모습이라도 드러냈지만, 윤석열은 유가족의 만남 요청에 끝까지 응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 당시 해수부장관이었던 이주영은 여러차례 사의를 표명하고 결국 그해 12월에 물러났지만,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최장수 장관으로 군림하며 윤석열 내란까지 함께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온갖 비난과 탄압과 무관심을 버텨 온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 오직 진상규명과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한 성찰과 준비이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까?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3일 앞둔 현재, 김민석 총리는 25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 추모대회에 참석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공적 책임과 공적 안전망의 붕괴가 불러온 참담한 재난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1023일에는 정부가 경찰청과 서울시청, 용산구청에 대한 합동감사 결과 62명을 징계조치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이태원 참사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용산 이전하면서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가 대통령실 인근 경비에 우선순위를 두고 인력을 운용한 것이 영향을 줬다고 확인했다. 참사 당일 대통령실에는 인근 집회 관리를 위한 경비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됐으나 이태원 일대에는 전혀 배치되지 않았다. 당시 경찰 지휘부 역시 이 점을 알면서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는 게 국무조정실 설명이다.


촛불혁명이니 빛의혁명이니 이런 과도한 의미부여가 정말로 의미를 득하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오송참사도 세월호도 이태원참사때도 독립적인 상설 재난 조사기구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요원한 상태이다. 생명안전기본법도 무산되었다.

20245,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913일 특조위가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특조위의 본격적인 조사는 20256월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특조위 공식 활동기한은 20266월까지이며, 필요시 3개월, 보고서 작성을 위해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다. 특조위의 활동과 결과 발표는 중요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는 생존자 김초롱이 쓴 책이다. 생존자 김초롱은 생존 이후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느꼈다. 이후 인터넷과 신문에 심리 상담기를 연재하기도 했고, 살기 위해 연대하고 붙투하는 과정을 에세이로 발표했다. 모든 참사가 피해자에 초점을 먼저 맞추기는 하지만, 관심이 생존자와 희생자를 넘어서는 넓은 의미의 피해자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지난 8월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30, 40대 소방관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도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참사 이후 1212일 숨진 채 발견된 바 있다.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이 기록한 이태원 참사 가족들,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친구들, 생존자, 이태원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집이다. 이 책을 준비한 작가기록단이 없었다면, 과연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다차원적으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역시 용산FM이 기획하고, 이태원 주민부터, 핼러윈 축제 참가자, 드랙 아티스트, 이태원 클럽 DJ, 경리단길 이주민 등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했다. 이태원과 핼러윈,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사건의 정치적 지형과 묘하게 중첩되면서 이태원 참사를 정치화하고, 편가르기, 왜곡하는 다양한 양태를 경험했다. 이에 대해 이태원으로 연결합니다가 면역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이다. 김승섭 작가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일주일 남은 10월달을 눈물 어린 책을 보며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각인하기 위함이다.


올해 고() 신애진씨의 어머니, 아버지도 책을 냈다. 이 책도 아로새기다. 너에게 가는 길(김남희),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신정섭) 이 책도 일독을 권한다.


<함께 보면 좋은 책>

이태원 참사 - 한국의 재난관리를 논하다/ 이동규 / 윤성사 / 2023416

정부가 없다 -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정혜승 / 메디치미디어 / 20231029

문화과학 113-애도와 책임, 10·29 이태원참사: 2023년봄호/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 문화과학사 / 202337

슬픔의 위안/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 / 현암사 / 20193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산만언니 / 푸른숲 / 20216

먼지가 가라앉은 뒤/ 루시 이스트호프 / 창비 / 20259

애도와 투쟁/ 더글라스 크림프 / 현실문화 / 20214

이 폐허를 응시하라/ 리베카 솔닛 / 펜타그램 / 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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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이후 -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
신진욱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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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요요는 이제 그만!


출처: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27. (2025.6)


광장 이후/ 신진욱, 이재정, 양승훈, 이승윤 / 문학동네 / 20255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얼마 전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짐 정리도 마저 해야 하고, 새로운 근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해서 분주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래된 자료뭉치들 속에서 불쑥 경향신문 한 부가 뚝 떨어졌다. 날짜를 보니 20221월 초였다. 돌이켜보면 불가사의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정치권에 인연이 없었던 윤석열은 제1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었다. 그때는 명태균건진법사의 존재도 범인들은 알지 못하던 때였다. 윤석열 대선후보는 이철규, 장재원, 권성동 등 초기 윤핵관들을 기용하기 시작했고, 당시 당대표였던 이준석과 치열한 갈등이 드러나던 시절이었다. 윤석열은 2022년 당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를 해산시켰고, 김종인과 결별했다. 당의 공식 기구들은 무력화되었고 윤석열 대선후보와 윤핵관 수중에 급속히 편입되었다. 불과 35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3명의 대통령을 거친 것이다.

이후 약 2년의 시간은 경험했다시피 사회적 퇴행과 경제적 추락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의 후퇴는 치명적이었다. 집권 초기부터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를 표적삼았던 정권의 탄압은 타임오프제에 대한 근로감독, 노조 회계공시 제도, 노동시간 유연화 확대 등으로 이어졌다. 물가는 폭등하고 임금은 낮아졌다.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청년 포함)실업률은 치솟았으며, 구직활동 포기자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투쟁은 힘있게 체계적으로 조직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패배주의가 확산되었다.



123일의 비상계엄 선포는 어쩌면 우리의 안일함과 무기력함에 경종을 울리는 죽비와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가 탄핵된 후 마치 세상은 금방이라도 변할 것처럼 상기되었지만, ‘촛불정부라 자칭하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를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내려가 버렸다. 코로나19와 세계적 유동성 증가, 아파트 부동산 가격 폭등, 조국사태 등. 문재인 5년의 시간동안 식어버린 열망과 에너지는 환멸로 바뀌었다. 촛불연합은 해체되었다. 20대 여성들은 혜화역 시위, 버닝썬, N번방 사건, 신당동 사건 등을 거치면서 광장정치에 결합했지만, 20대 남성들은 불신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더불어 청년 고용시장은 악화되었고, 노동시장 이탈 현상은 가속화되었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는 처음 보는 광경들이 많이 벌어졌다. 보수 기독교를 기반으로, 노년 세대들을 동원하던 태극기 집회에 청년들이 대거 등장했다. 극우 청년들은 서부지법 폭력사태에 가담하고, 건국대 앞 양꼬치거리를 행진하며 반중극우 무력시위를 했다. 주변의 이웃, 친구, 가족이 극우폭력의 주체로 세력화해 등장한 것이다. 낯선 모습에서 공포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현상의 이면에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 윤석열 탄핵과 내란 진압으로는 끝낼 수 없는 지난한 과제가 놓여 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세대이고, 촛불혁명에 대거 참여했던 세대들이 불과 8년만에 탄핵반대, 극우화되었다?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언론(특히 조선일보)에서는 탄핵반대와 민주당을 비판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기사화했다. 응원봉을 든 20대 여성과 탄핵반대 CCP(중국공산당) OUT 피켓을 든 20대 남성을 대비해 젠더갈등을 부추겼다. 하지만, 탄핵 과정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갤럽, 리얼미터 등)들을 보면 20대들의 탄핵찬성 비율이 훨씬 높았다. 분명 현상은 존재하고, 극우는 세력화되었으나, 과대대표되고 있는 것도 분명했다. 하지만 과대대표가 곧 다수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이만큼 왔다면 저만큼도 갈 수 있는 거다. 들이밀어 봤으니, 밀어붙일 수 있는 거다. 무엇보다 극우파들에게 탄핵 사태로 열린 광장은 자신들의 발언력과 파급력, 캐파(capacity)를 가름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실천의 장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윤석열이 조사를 받기 위해 특검에 출석했다. 중요한 건 이제 윤석열 개인의 신상이 아니다. 윤석열을 옹호하고, 내란을 획책하고, 이를 지지해주고 엄호한 우리 사회 엘리트들과, 이에 동원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회계층들이 공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두 번의 혁명을 통해 두 번의 탄핵이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약 50%의 시민들은 내란당과 보수를 지지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여론 지형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재명의 우클릭, 중도보수 선언은 이런 지형을 바탕으로 한다.


광장 이후는 두 명의 사회학 연구자와 두 명의 사회복지학 연구자가 쓴 논문 모음집이다. 이 책을 보면 과연 지난 겨울 쿠데타와 연이은 광장의 모습을 보다 더 정밀하게 추적 관찰할 수 있다. 신진욱은 한국의 극우세력이 부상하고, 보수정권이 이를 공식화해주는 유례없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파시즘의 위험을 경고한다. 탄핵 이후에도 극우 기득권 엘리트들과 대중적 하부구조(자유대학, 자유마을, 극우기독교세력 등)는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언제든 활성화될 수 있는 세력이 된 것이다. 이제 이명박근혜시기, 자생력없던 어버이연합이 아니다.

양승훈은 탄핵 정국에서 주목받은 현상, 청년 남성’, ‘이대남들의 극우화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가 봤을 때 청년 남성은 전혀 동질적 집단이 아니다. 계급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출신과 업종이 다르다. 이들 다수가 보수도 아니고, 보수라 하더라도 보수로 굳어진 것도 아니며, 극우파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정치세력, 사회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유일하게 이준석과 윤석열은 능력주의공정을 내걸고 세대포위론을 근거로 이들에게 파고든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우리에게 응원봉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여성들은 남태령에서,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응원봉을 들고 다시 만난 세계속에서 주체화되었지만, 남성들에게는 일종의 티켓인 응원봉을 그 누구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점차 소극적이 되었고, 페미니즘 등과의 일대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냉소와 짜증으로 일관했다. 이른바 열전에서 냉전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의 말걸기와 광장으로의 초대장을 왜 청년 남성들은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어느 세대, 어느 누구라도 스스로 주체가 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상 주목받지도, 세력화되지도 못했던 건 자명한 사실이다. 진보세력이 청년 남성세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과제인 건 맞지만, 유일한 과제는 아니며, 오히려 사회 전체의 몫으로 봐야 한다.

이승윤의 논문은 이 책의 핵심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진보적 청년 여성’ vs ‘보수적 청년 남성이라는 허위적인 구도에 거리를 두는 대신, 소득, 고용형태, 사회보험 여부를 종합하여 지난 20년 간 청년 세대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경향을 분석한다. 노동의 경계가 녹아내리고, 노동의 개념이 모호해지는 이른바 액화노동속에서 청년 프레카리아트화가 진행되고 있다. 청년 남성 가운데 매우 불안정한집단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청년 남성의 비관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높다. 저자는 청년 노동시장에서 청년 남성이 경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활동의 주 부담자 역할을 내면화한 남성들의 기대와 실제 노동시장 상황의 괴리가 남성들의 심리적, 사회적 경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의 불안정성이 급진좌파 정치쪽으로도 향할 수 있고, 반대로 극우 포퓰리즘 쪽으로도 갈 수 있다며, 섣불리 재단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웨스트민스터대학 교수인 정치학자 샹탈 무페는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구성체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려운 말 같지만,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꼬시고, 같은 편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극우 문제의 해결은 사회 전체의 각성과 지속적인 실천, 국가의 강력한 대응과 구조변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를 급진화시킬 필요가 있다. ‘광장 이후의 실천이 정치적 요요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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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 반대를 앞세워 손익을 셈하는 한국 정치
김민하 지음 / 이데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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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이슈페이퍼 26호 (2025년5월)


목표를 세울 결심, 지면서도 앞으로 나갈 결심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 김민하 / 이데아 / 2022년1월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니체는 말했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믿음이다.” “인간은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허구를 더 사랑한다.” 그 허구가 진실이 되지 못할까봐, 또는 타인들이 내가 ‘믿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까봐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브라더의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진실이 슬로건이 되지 못하고 무지가 힘이 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지적을 한다. “망상에 기반한 네트워크는 필패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 네트워크의 승리를 막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넥서스』 11쪽) 더 많은 정보와 명확한 진실을 제공하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인류는 결정적일 때 대개 이러한 상식을 벗어나 행동했다.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노년세대에게 논리적인 증거를 들이밀어도, 건국대 앞 중국음식점을 돌며 ‘짱* 중국 간첩’을 외치는 ‘자유대학’ 젊은이들에게 체계적인 문답법을 제시하더라도 즉각적인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또 다른 문제는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누가 ‘진실’을 순수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대개는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때론 진실이며 때론 거짓이고, 어쩔 땐 진실이 아니며 거짓도 아니다. 진실의 편에서 보면 거짓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거짓의 편에선 진실도 거짓으로 보인다. 사회적 위치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경험의 차이에 따라 한없이 흔들리는 개개인의 판단은 판단을 내리는 나 조차도 신뢰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려보자.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나와는 다른 상대와 ‘대화’하고 ‘타협’하며 성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그렇고, 친구 관계가 그러하며, 동아리 활동도 그러하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타협하며, 때론 제압하기도 하지만, 영원히 고정된 하나의 행동패턴만 가지고 갈 수는 없다. 크게 보면 정치도 그러하다.”

위의 문단을 다시 읽어보자. 너무 교과서적이다. 마치 신문 사설에서 논설위원이 여야를 공히 꾸짖으며 맺는 결론 같다. 현실은 어떤가? 상대를 반대함으로써 자신을 구성해 온 지 오래다. ‘진보’와 ‘보수’로 자신을 규정하고 상대에 대한 반대를 조직화하고 동원하면서 대결해 왔다. 설사 그것이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음모론’일 지라도 말이다. 2012년 대선에 대해서는 김어준이, 2020년 총선에 대해서는 민경욱 전 의원이 공히 ‘부정선거론’을 설파했고, 지지자들은 ‘믿음’으로 화답했다. 계엄-탄핵 국면에서 정치적 양극화, 극단화가 진행되었다는 평가가 많지만, 사실은 계엄-탄핵 이전에도 양극화와 극단화, 대립과 반대는 심화되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부터 이재명을 둘러싼 수많은 이슈들(형수, 아들 등)을 가지고 최대반대연합을 구축해 윤석열이 승리한 바 있다. 상대도 계엄 직전, 김건희, 명태균 이슈를 고리로 반대연합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었고, 이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곤두박질 치고 있었다. 특검 상정은 계엄령이라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의 배경이었다.

이러한 패턴을 비정상적인 행태로 치부하기보다는 정치에 내재된 속성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측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이라면 그것은 여러 가지 이슈의 선에 따라 ‘편을 갈라’ 대립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것이다. ‘싸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를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다.

정치평론가 김민하의 책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는 출간된 지(2022년 1월) 3년 밖에 안된(3년이나 된?), 지난 문재인 정권을 분석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무너진 지금, 이 책의 분석틀은 그때보다 오히려 지금 그 적실성을 갖는 거 같다. 조기대선을 앞두고 ‘저쪽이 싫어서 이쪽에 표를 주는’ 행동이 예측되서기도 하고, 윤석열 정부 3년동안 정말 징하게 여야가 대립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 사회 평론서들은 시간적으로 효용성이 짧은 편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이 책의 분석틀이 ‘현상’ 너머의 ‘구조’와 긴 시간적 지평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부제 ‘반대를 앞세워 손익을 셈하는 한국 정치’는 한국 정치가 상대를 기득권으로 낙인 찍고 반대를 조직화하고 동원하여 세력화 하는 반복되는 패턴을 집약한 문장이다. 이러한 반대와 반대를 거듭하는 과정은 진자 운동에 비유할 만 하다. 우측으로 이동한 진자가 다시 그 반동으로 좌측으로 이동하고 좌측으로 이동한 진자도 다시 우측으로 이동하며 이러한 과정이 끊임 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이러한 반복 속에서도 진자운동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 방향이 보통의 사람들의 열망을 거스르는 방향이라면? “손등이 손바닥으로, 다시 손바닥이 손등으로 위치를 바꿀” 뿐. 그럼에도 세상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다면? 대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주류의 통치구조는 여전히 굳건하다면?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향을 결정짓는 ‘구조’와 이 ‘구조’가 구축되는 정치의 ‘역사’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이 책의 진가가 발휘된다. 미국의 연방파와 공화파의 대립 구도, 클린턴, 오바마, 트럼프로 바뀌는 리더십 교체 속에서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이어져 왔는지, 또 다나카파와 후쿠다파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온 자민당 지배 속 일본 정치사에 대한 서술, 반공과 반일, 민주화와 독재의 각축전 속에서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 낸 대립구도가 ‘반대를 위한 정치’로 고착화된 한국의 정치사. 한미일 정치사를 소화해 압축 정리하는 저자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그리고 이 역사 속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상기해야 할 점이 떠오른다. ‘반대의 정치’ 속에서도 쟁취해야 할 ‘목표’ 말이다. 반복되는 진자운동이 축적되면서 전진해야 할 진자 축의 이동경로 말이다. (굳이 안어울리게) 주식으로 치자면 요동치는 등락세에도 불구하고 ‘달까지 가’야 하는 우상향의 좌표 말이다. 그러한 목표 부재, 전략 부재로 인해 지난 박근혜 탄핵 이후 ‘용두사미’적 허무함이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저자는 “우리 정치의 문제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상식과 합리’를 회복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는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며 “목표의 부재”를 넘어서기 위해 ‘대안’을 찾아야지만 진자의 축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파레콘’, 참여예산제, ‘참여계획 모델’, 기본소득 등 벌써 진보정당에서 다루었던 그런 ‘대안’들이 또다시 언급되고 있다. 신선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로의 ‘참여’를 대가로 지급하는 (앤서니 앳킨슨의) ‘참여소득’을 지렛대로 삼아 ‘파레콘’과 ‘참여계획 모델’의 기본골조와 결합하자는 저자의 제안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자. 반복되는 ‘반대의 정치’ 라는 ‘현상’ 속에 놓치고 있는 목표, 대안을 인식하자고 했지만, ‘반대의 정치’가 지금 처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 즉 ‘현상’을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시사인 천관율 기자는 ‘극우’가 ‘등장’하는 것과 ‘집권 가능한 정치세력’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극우의 주류화’의 이면을 파헤친다. 천 기자는 계엄과 극우의 주류화의 이면에는 최근 10년 동안 변화된, 한국 보수의 ‘소수파’라는 역사적 변화가 있다고 논증한다. 지난 시기 한국의 진보가 비록 자신이 소수파라고 할지라도 ‘체제 수용 노선’을 수용한 것처럼, 과연 한국 보수가 소수파로서 ‘체제 수용 노선’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보수 내 ‘체제 수용 노선’과 ‘체제 변혁 노선’의 대충돌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두렵다. 지난 서평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기독교가 처한 지반과, 한국의 보수가 처한 지반은 공통된 것이다. 국민의힘의 극우화는 전술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다.(천관율, ‘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시사인911호:2025.2.28.)

리버럴 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극우 포퓰리스트 지도자와 그 지지자들의 양식 없음을 탓하기만 해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정치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질에 도달하려면 역사를 보아야 한다. - P98

반대의 정치를 각 진영이 치열하게 전개했는데도 통치의 결과는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사실상 같은 결과에 도달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움직이는 진자의 축이며, 결국 ‘구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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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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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부산노동권익센터 <부산 노동자와 동행하다>

vol 23 2024.10

나, 블루칼라 여자
나, 블루칼라 여자
저자
박정연
출판
한겨레출판사
발매
2024.03.05.

길을 만드는 사람들

『나. 블루칼라 여자』 / 박정연 / 한겨레출판 / 2023년3월

양솔규 노동사회교육원 운영위원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흔히 말하는 ‘달동네’로 판잣집과 ‘보로꾸’집들이 빼곡한 곳이었다. 골목에서, 공터에서(그땐 공터가 참 많았다. 앗! 나이 나오나요?), 놀이터에서, 불장난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게임도 하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고. 그럼 또 여지없이 저녁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호출이 울려퍼졌다. 하교할 때 시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저녁과 도시락 반찬거리를 사느라 분주한 엄마들의 흥정과,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기한 시장 물건들 구경하느라 산만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공존했다. 생명력 넘치는 베이비붐의 시대였다.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은 늘, 누구나 비슷했다. 빨간 오뎅볶음, 빨간 진미채(오징어실채, 쥐포채 등), 콩자반, 쏘세지 등. 지금 보니 이 반찬들의 공통점은 빨리, 대량으로 만들 수 있고,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우리 동네 엄마들은 대개 일을 나갔다. 저임금의 시대였으나 성장의 시대였기에 일자리는 널렸다. 파출부로, 공장으로, 건설현장으로, 식당으로, 밥벌이가 될 만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밥벌이 노동을 내려놓았던 그들은 ‘골목’이 아이들을 보듬어줄 만 하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 발걸음을 통해 내 새끼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절실한 발걸음이었을 테다.


동학(東學)에서도, 시인 김지하도 ‘밥은 하늘’이라고 했다. 귀하다는 얘기다. 그 ‘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밥벌이 노동’에 나선다. 식물처럼 물과 공기만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은 ‘밥벌이 노동’을 통해서만 ‘밥’을 얻을 수 있다. 즉 ‘밥’과 ‘존재’ 사이에 ‘노동’이 숙명적으로 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밥-노동-존재’가 화폐를 매개로 ‘밥-노동-(화폐)-존재’의 형태로 드러난다. ‘밥벌이 노동’의 대표주자가 ‘임금노동’이 되는 순간이다. ‘임금노동’을 통해 우리는 삶을 꾸려 나간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을 얘기하면서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고 했다. 한데 낚싯바늘을 물어 삼킨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 빼도 박도 못할 수 없다. 임금노동을 통해서 밥벌이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숙명을 지적하고 있다.


‘밥 타령’을 했지만, 결국 이것은 돌고 돌아 노동의 문제로, 일의 문제로, 삶의 문제로, 존재의 문제로 돌아온다. ‘밥벌이 일자리’를 구하는 게 모두에게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특별히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이 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들,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밥벌이 일자리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인 것이다.


여기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출판사가 내미는 부제에는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라고 써 있지만, 글쎄, ‘힘 좀 쓰는 언니들’이라는 규정에는 동의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가정에 도움이 되려고” 일을 시작했을 뿐이고 “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다 “가장이 되면서” 일자리에 나섰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딸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살아온 그들’이 가족들과 자신의 ‘생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택한 직군은 실로 다양하다. 화물 운송 노동자, 플랜트 용접사, 먹매김 노동자, 형틀 목수, 건설현장 자재정리, 레미콘 운전, 철도차량 정비, 자동차 시트 제조, 주택 수리, 빌더 목수 등 일명 ‘블루 칼라’ 노동자들의 밥벌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울타리 내부는 쉽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 가끔 뜬금없이 뜨는 산업현장 릴스나, 예전 ‘체험 삶의 현장!’(앗! 나이 나오나요?) 같은 곳에서 그나마 보아왔던 치열한 현장의 모습은 누구나 쉽게 범접할 수는 없는 억센 곳이었다. 그런 곳에 ‘누군가의 아내로서, 딸로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살아온 그들’이 떴다. ‘남초 직군’! 이 안에서 그들은 자본주의 노동현장에서 살아남기와, 여성노동자로서 남초 직군의 문화와 맞서 싸우며 살아남기라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힘 좀 쓰는 언니’가 되어야 했다. 도저히 자기 몸으로 들 수 없는 형틀을 들어 올려야 했고, 50kg 알곤용접기를 피멍이 들어도 메고 다녀야 했다. 때론 남성 노동자들의 ‘배려’가 고맙기도 했지만, 이것은 부드러운 ‘배제’라고 느껴졌다.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더 오버해서 일했다. 그녀들은 기회를 스스로 잡았고, ‘1인분’을 해냈다. 크론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줄기세포 수술비 1,500만원을 벌기 위해 45일 밤낮으로 일해 번 용접노동자도 있다. 가족에게 존경받고 떳떳하게 목소리 내는 것. 그들의 자부심은 곧 그들의 주체성이다. 자기 힘으로 자기 밥을 책임지는 것, 1인분을 하고 난 후 받는 동료들의 인정이 그들을 주인 되게 한다.

인간은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밥’을 먹었으니 ‘배설’해야만 살 수 있다. 그러나 화장실은 공평하지 않았다. 드넓은 부산신항에 여자화장실은 없었고, 신도시 아파트건설 현장에 여자화장실은 없었다. 투사(鬪士)가 아님에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처음에는 참아도 보고, 물을 안 마시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해결책은 아니다. 이 문제가 사소해 보인다면, 1.5리터 원샷 때리고 한 시간만 있어 보면, 남북통일도, 미국 대선도, 한낱 사소해질 것이다. 생리를 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도 다 낳았으니 자궁을 적출하면 생리를 안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가 의사 선생님한테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만큼 현장에서 편하게 일하고 싶은 그들이다. 요구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김승섭 교수는 장애인이자 인권변호사 김원영의 책을 인용해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라 말한다.(『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일하고 살아가는 공간에 나를 위한 화장실이 존재하지 않거나 설사 화장실이 있더라도 그걸 이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공간이 나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하버드 대학교 로웰홀 앞에 여성들이 모여 노란색 액체를 쏟아붓는 시위를 벌인다. 그들이 든 피켓에 쓰여져 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쌀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to pee or not to pee, that is the question).” 1973년 하버드 소변 투쟁(the Harvard Pee-in of 1973)이다.



1967년 캐서린 스위처가 성별을 공개하지 않고 등록하여 보스턴 마라톤에 공식적으로 출전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참가자들이 캐서린 스위처를 붙잡아 주로에서 밀어내고 있다. 여성은 마라톤 출전 자격이 없었다.


‘오줌’ 타령을 했지만, 결국 이것도 역시 돌고 돌아 노동의 문제로, 일의 문제로, 삶의 문제로, 존재의 문제로 돌아온다. 남초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깨달은 건 하나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먼저 해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여성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현장을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는 현장으로 바꾸기 위해 그들이 1년 12달, 평상시에 꾸준히 흘렸을 노고와 눈물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여성 노동자들의 버팀목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도 여성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함께 싸워”줬다. 그리고 관리자들과 사측에 대헤 경고와 항의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을 지켜냈다. 그런 노동조합이 윤석열 정부 하에서 탄압에 직면했다.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건폭’이라는 말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할 뿐인데. 건설노조를 쓰려는 현장이 없어요.”, “안전운임제가 사라진 다음 물량의 운임이 10% 깎였어요.”(화물연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이들의 공통적인 꿈은,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안전하게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 이 책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스펀지 같다. 현장과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몸소 깨닫는다. 그리곤 반응한다. 그리고 동등한 동료로 우뚝 선다. 한 마디로 근사하다.


반대로 여초(女超) 현장을 ‘때려친’ 여성들의 이야기는 『직업을 때려치운 여자들』(동아시아)를 보기 바란다. 모두가 모두의 레퍼런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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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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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24년 겨울호 (통권72호)

 

책담(冊談)

 

원더풀 랜드를 찾아서

 

 


양솔규 / 편집위원장


 

원더풀랜드/더글라스 케네디/밝은세상/20241015/19,800

 

2024115, 트럼프의 당선이 유력해진 순간, 미국의 성소수자, 유색인종, 진보적 지식인, 예술종사자 등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2.0이 가져올 기본권의 후퇴와 종말론적 예측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현재의 글로벌 위기의 근저에는 글로벌 협력의 실패와 국제 질서의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은 이러한 위기의 근원을 더 깊고, 넓게 심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라리는 최근 팟캐스트 GZERO World에 나와 이안 브리머(Ian Bremmer)와 인터뷰를 가졌는데, “우크라이나와 가자 전쟁을 포함한 현재의 위기는 인류의 협력적 초강대국이 흔들리는 순간이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 세계 질서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20222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3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먼 미래에 다시 오늘날을 되돌아볼 때 현 시점이 무시무시한 역사의 결절점임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렇기에 트럼프의 미국 대선 당선은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2024년 최고의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이때는 몰랐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즈음에 한국의 대통령이 자신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엄령을 때리고 국회에 군바리들을 투입하게 될 것이라고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전대미문의 미 의회 난입 폭력사태를 일으켰는데도 그 두목이 버젓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질서의 붕괴예측 불가능성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트럼프도, 윤석열도 부정선거운운하며 자신과 지지자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의회에 난입했다는 공통점에 묘한 전율이 느껴진다.)

 

그런 순간에 영미 대중소설의 최고봉 더글라스 케네디가 원더풀랜드를 들고 나왔다. 영리하게도 한국어판 소설의 초판 1쇄 인쇄일은 923일인 반면, 1쇄 발행일은 1015일이다. 미국 대선의 한복판에 책을 출간해 흥행에 일조하겠다는 출판사의 상업적 계산이 영락없이 보인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누구냐. 빅 픽처, 모멘트등으로 초 롱런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아니던가. 이 소설가가 미국 대선을 겨냥해 새 소설을 발표한 것이다. (한국에서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을 거의 전담번역하고 있는 조동섭 번역가가 이번에도 번역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보니, 띠지에 써진 홍보문구 이 책을 읽을지 말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걱정 말고 읽으십시오! 진짜 재밌습니다”(장강명 소설가)는 과장이 섞인 주관적 평가에 다름 아니라고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내가 애초부터 더글라스 케네디의 대중소설 작품에 사회과학적 통찰력을 기대한 것은 아니니 이 정도면 이 시국에 읽을만한 책은 될 거 같다.


소설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24년 미국 공화당은 트럼프와 비슷한 성향의 제럴드 콤프턴후보를 내세웠고, 이후 공화당은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장악한 채, 공화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변경한다. 2027년 대법원 판사의 보수 : 진보 비율이 7 : 2가 되고, 이미 2022년에 대법원이 금지한 임신중지 수술 이후 2028년이 되면 미국의 모든 주에서 합법적 임신중지가 금지되고, 동성 결혼은 위헌 판정을 받으며, 공립학교는 기독교 수업이 허용되고, 이민 자격은 기독교도에게만 허용된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은 극우 정당이 정권을 잡았고, 중국은 선전포고도 없이 타이완을 침공한다. 2032년 대선에서 또다시 공화당 후보인 호킨스 상원의원이 당선되면서 아이를 출산하지 않은 35세 이상 여성과 일반적이지 않은 가정에 세금을 중과하는 법안을 도입한다.


한편, 2020년대 초반, 모건 채드윅은 생체 이식 채드윅 칩을 개발해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을 불러 왔다. 억만장자가 된 채드윅은 가난한 계급을 위한 뉴딜 정책을 지지하면서, 현재 미국은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라고 규정한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텃밭인 클리블랜드에서 kkk단의 후신 뉴 클랜이 집회가 불허되자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무차별적인 총격 학살을 자행한다. 이때부터 미국 분리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모건 채드윅은 공화당 호킨스 대통령에 맞선 강력한 지도자로 부각된다.

 


2036년 미국은 결국 연방공화국과 공화국연맹으로 분리된다. 공화국연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바탕이 된 사회로, 12사도가 지배하면서 여성을 억압하고 공개 화형으로 죄인을 처벌한다. 한편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은 곳, 여성이 임신중지권과 자기 선택권을 갖는 곳,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존중하고, 사회보장과 예술을 중요시하는 곳을 만들겠다며 연방공화국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모든 국민들에게 채드윅 칩이라는 생체 칩이 이식되고, 일거수일투족을 국가가 감시할 수 있는 모순적인 곳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 국가라는 비난을 듣기도 하고,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공화국연맹이 연방공화국을 비난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미네소타 주는 유일하게 두 국가로 분리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리고 미네소타 주 가운데에 위치한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은 중립지대로 남게 되었다. 마치 냉전 시기 베를린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베를린의 체크포인트 찰리와 비슷한 검문소들이 존재한다. 소설은 이복 자매인 양국의 정보 요원들이 2045, 중립지대에서 치열한 첩보전과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사실 미국이 두 개로 쪼개진다는 생각에 역사적 기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1850년대 노예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두 진영으로 나눠졌고, (남북)전쟁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아메리카 합중국은 가입 단위가 주() 단위로 가입할 수 있다. 서부의 캔자스와 네브래스카가 주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을 때, 두 주를 자유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노예주로 할 것인가를 두고 주민 투표를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1819년 미주리 준주(準州)가 주 승격될 때 노예제로 가입할 것인가, 자유주로 가입할 것인가를 가지고 이미 격돌한 바 있다. 당시 북부 11개 자유주와 남부 11개 노예주가 있었기에 미주리의 선택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결국 미주리 타협을 통해 노예주로 하는 대신 메인 주를 분리해 자유주로 두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미주리주의 남쪽 경계선인 북위3630분 이북은 노예제를 영원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결국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승격을 둘러싸고 또다시 격돌한다. 캔자스-네브래스카는 북위3630분 북쪽이므로 자유주여야 했지만, 노예주가 되고 만다.)


이 무렵 주요 정당이던 휘그당도 찬반양론으로 분열한다. 휘그당원 중 노예제에 반대한 양심적인 휘그와 일부 민주당원이 힘을 합쳐 공화당(Republican Party)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지리적 분포나 이념적 지형과는 상당히 다르다. 당시 공화당은 북부의 노예제 반대론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은 주로 남부의 노예제 옹호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아무튼 공화당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남부인들은 연방으로부터 탈퇴해 새로운 연합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1860년 플로리다, 미시시피, 조지아, 텍사스 등이 모여 새로운 국가인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만들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Ernest Callenbach, 1929~2012)1975년에 쓴 에코토피아(우리나라에는 1991년 정신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이다. 베트남 전쟁 기간동안 쓰여진 에코토피아는 거의 100만 권 이상 팔려나갔다. 생태환경주의 소설로 정평이 높았다. 이 소설로 (윌리엄 모리스의 책과 더불어) 생태주의적 이상향인 에코토피아라는 새로운 개념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에코토피아(Ecotopia)는 생태학+이상향을 뜻한다. 오리건주, 워싱턴주, 북부 캘리포니아주였던 지역들이 미국 연방에서 탈퇴해 에코토피아를 만든다. 그 후 20년 동안 폐쇄적으로 고립되면서 에코토피아는 베일에 쌓여 있었다. <타임스 포스트>지 국제부 기자 윌리엄 웨스턴이 6주 동안 에코토피아에 취재를 가게 된다. 에코토피아라는 분리공화국의 수도는 샌프란시스코. 에코토피아는 인간과 환경이 완벽하게 조화된 생태적 이상향을 창조하고자 애쓰는 사회이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재활용이 곧 생활 방식이고, 가스 구동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되며(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속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걷거나 출퇴근하지만) 자전거가 공공장소에 배치되어 마음대로 빌릴 수 있는 사회를 묘사한다. 에코토피아에서는 태양 에너지가 보편화되어 있고, 유기농 식품을 현지에서 재배하며, 석유화학 비료 대신 가공 하수를 사용하여 농작물을 재배한다. 상업용 고층 건물은 아파트로 개조되었고, 공장은 노동자들이 소유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는 지역적으로 관리되고 보편적으로 제공되며, 국민들의 주 근롯간은 20시간이다. 마리화나는 합법이며, 국가 원수는 여성이다. 과학적 상상력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상력, 생태적 통찰력을 보이는 소설이다. 저자인 어니스트 캘런바흐는 2012416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자택에서 향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분권적이고, 생태적인 에코토피아는 앞서 본 원더풀랜드의 공화국연맹과는 전혀 다르고, 심지어 연방공화국과도 결이 다르다. 연방공화국은 생체칩을 활용한 테크국가이지만 오히려 민주적이지도 않고, 인간의 주체성을 방해한다. 오늘날 기술전체주의와 그리 멀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공화국연맹뿐 아니라, 연방공화국의 독소들도 트럼프 2.0에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도 AI와 전체주의, 권위주의의 결합을 우려한다. 그렇기에 에코토피아가 그리는 미국의 분열과 새로운 길은 여전히 참조하기에 유의미할 것이다.


원더풀랜드와 같이 미국의 국가 분리는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것으로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회의 분열과 대립, 민주주의의 기능성 후퇴, 전체주의와 권위주의의 강화, 새로운 미디어와 조직, 기술혁신과 사회변화, 젠더 갈등과 소수자, 난민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은 이미 공론장에서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으며 이 대립은 복잡한 균열지점들을 양산하고 있다. 예측불확실성의 시대에 보다 넓은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잠언은 사람들이 계속 하나님에게 겁먹은 상태로 살도록 가르친다. 인간은 겁을 집어먹으면 자신감이 확연히 떨어지게 된다. - P356

공화국연맹에는 채드윅 칩도 없었고, 시스템도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일일이 기록되지 않았고, 사생활이 없는 상태로 살지 않아도 되었다. - P381

연방공화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곳, 진보적인 곳이라고 떠들어대지. 그런데 알고 봤더니 너흰 밤낮없이 감시당해. 사생활은 아예 없어.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체하지만 실질적인 자유는 전혀 없다니까. 예술가인 체하는 엘리트 부류들은 연방공화국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정부에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해주는 온갖 보조금을 받아먹으면서 살고 있지. - P463

인간은 모두 수정란에서 시작되듯 분열은 인간의 천성이다. 인간의 역사는 분열과 파열의 긴 대하소설이다. 살아가는 건 나뉘는 것이다.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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