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8
장석준 지음 / 책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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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4년1월 신년호

 

 

사회주의-역사 속 가능성의 퍼즐 맞추기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

 

사회주의/ 장석준 / 책세상 / 201311/ 9,500

 

퍼즐을 맞춰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행의 우여곡절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선택과 실수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마는 속수무책의 과정을 반복하다가도 어느 순간 실마리를 잡으면 순식간에 진도를 빼기도 한다. 이러한 우연한 발견의 쾌감, 그리고 잘못된 선택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정합의 실루엣이 퍼즐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단순한 퍼즐조차도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할진대 우리가 마주하는 역사라는 저 도저한 흐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응축되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역사의 방향은 어떤 선택과정을 통해 채택되는가? 단지 우리에게 경로의존성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조건에 구속된(것으로 상정되는) 현재의 선택을 단순하게 승인하는 역할만 부여되는 게 아니라면,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고, 채택하며, 실현해야만 할까?

노동당은 지난 623일 정기당대회를 통해 강령을 채택했다. 강령 <노동당 선언>에 따르면 노동당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천명하고, “평등·생태·평화 공화국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령에서 말하는 사회주의가 어떤 역사적 경험과 지적 반성을 거쳐서 도출된 개념인지, 80~90년대 수없이 외쳤던 슬로건으로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 짧은 당 강령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말하자면 강령 형성의 이해 수준은 울퉁불퉁하기에 복기 과정은 공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당 강령 작성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 중 하나인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의 지적 작업을 들여다봄으로써 당 강령 형성의 맥락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장석준 부대표는 올해 여름 <적록서재>(뿌리와이파리)를 통해 자신의 지적 행보를 일별한 바 있다. 그리고 11월 마지막 날, 자신의 지적 자원을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버무렸다.

그러나 개념을 정리하는 작업은 수많은 논쟁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견(異見) 없는 개념이란 없다. 언어적 개념이 지칭하는 역사적 내용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개념은 정의의 대상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해석의 대상이다. 해석에는 왕도가 없으며, 정통도 없다. ‘정통을 뒷받침하는 권위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적 개념을 단단한 실재로 바라보기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품은 언어적 구성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베가 받아들이는 민주화의 개념과, 이른바 386 세대가 받아들이는 민주화의 개념이 다르며, 19세기의 사회민주주의20세기 후반 사회민주주의는 다른 파장과 깊이를 간직하고 있듯이 말이다.

 

장석준은 170여 쪽에 불과한 짤막한 입문서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의 중간결산을 시도한다. 프랑스 혁명과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문명을 대체할 수 있는 운동으로 사회주의를 발견(?)했다. 당시의 사회주의란 E.O.라이트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회중심 사회주의였다.

당시의 사회는 그러나 자본주도의 문명이 아직 만개한 사회는 아니었다. 따라서 사회주의 문명 탐색은 자본주의 문명 이후에나 가능한 시계열적 연속선상에 있지 않았고, ‘자본주의 문명대신에 선택 가능한 근대 문명의 또 다른 길이었다.

그러나 이후 사회주의의 종합을 시도한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는 자본주의 대승리의 시대였다. 증대하는 사회적 생산력은 불평등의 원천이 아니라 해방의 힘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맑스, 엥겔스의 사상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로 정리되었고, 역사유물론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운명에 결박시켰다. 1917년 혁명을 통해 등장한 국가사회주의에게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궁극적 성취에 이르러야 하는 체제가 되었다.

 

물론 맑스에게 그러한 혐의를 과도하게 소급해 씌울 필요는 없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맑스에게도 사회주의에서의 사회가 어떤 형식으로 드러나야 하는지는 하나의 과제였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하는 협동조합적 생산을 코뮌주의의 구성요소로 제시하기도 했다. 맑스 뿐만이 아니다. 레닌도 말년에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과제는 주민을 협동조합 결사체로 조직하는 것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람시의 평의회 운동 역시 자본을 대체할 사회적 실체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국가 = 사회라는 공식은 도그마일 뿐이다. 장석준은 전통적 맑스주의자들의 입을 빌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계승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본주의 근대 문명 전체의 치유전환그리고 새 출발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정식화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실체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지구적 생태위기가 단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인류문명 자체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는 지금, ‘사회(주의)’의 목표는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합리성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멈퍼드와 일리치의 역동적 균형’(멈퍼드)다중 균형’(일리치)이 사회주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목표에 풍부한 거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중심) 사회주의를 실체화하고, 새로운 문명을 추구할 주체는 누구인가? 저자는 현실의 노동자 계급을 자동적으로해방의 주체로 상정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맑스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의 주체로 바라본 까닭은 기존 사회의 이해관계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에서 비롯되는 자유’” 때문이지, 생산력 증대를 담지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결박당한 노동자계급이 아니었다. 체제에 결박당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대중들 스스로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결단을 실천할 주체가 없다면 발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정치적 과제라는 것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쿠바혁명, 차베스를 비롯한 남미 사회주의의 새로운 모색 등 사회주의 운동 속에서 국가사회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들에 대한 검토, 자본주의 내에서의 급진적 변화를 추구한 스웨덴 임노동자기금 모델, 영국과 프랑스 등의 구조개혁 노선에 대한 검토, 앙드레 고르, G.D.H.콜 등 수많은 현대 사회사상가들의 상상력 충만한 이론들에 대한 검토는 사회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재구성하기 위한 재료였다. 사회주의 역사를 다시 반추하면서 실현되지 못한 가능성들을 환기하는 것, 가능성을 조각모음 해 새로운 퍼즐로 조합하는 것은 사회주의 운동의 새 출발에 필수적이다.

 

개념은 무엇보다 해석의 대상이며, 언어적 구성물이라고 앞서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개개인들이 간직하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다양한 사유들, 검토 가능한 모든 역사적 운동들을 가지고 우리는 더 많은 사회주의 퍼즐 조합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려는 사회주의 문명의 등장에는 더 많은 자양분이 필요할 것이다. 노동당 강령도,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개념도 더 많은 해석과 논의, 그리고 실천을 필요로 한다. 도약하자! 그리고 사유하자!

 

<더 읽을만한 책>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 / 2009/ 38,000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생각의나무 / 앙드레 고르 / 2011/ 15,000

적록서재/ 장석준 / 뿌리와이파리 / 2013/ 1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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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의 눈물 우리시대의 논리 18
박흥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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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3년 12월호

 

[불온한 서재]

 

기차의 눈물닦아줄

행복한 실패를 위하여

 

철도의 눈물/ 박흥수 / 후마니타스 / 201310/ 13,000

탈선/ 앤드루 머리 / 이소출판사 / 20032/ 12,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강촌역은 폐쇄되고 신촌역에는 민자 역사 들어서

tvN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화제다. 1서울사람편을 보면, ‘삼천포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겪게 되는 촌놈의 상경기가 그려진다. 기차까지 타고 온 삼천포는 당시 수도권에만 있는 지하철을 못타 헤맨다. 3신인류의 사랑편에서는 주인공 나정이 강촌으로 MT를 가는 장면이 나온다. 4거짓말을 보면 나정이 친구들의 거짓말에 속아 신촌 기차역에서 꿈에도 그리던 농구선수 이상민을 기다린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보면서 추억 돋는다. 시간은 세상을 많이 바꿔 놨다. 부산지하철 1호선이 완전개통된 해가 94년인데, 현재 부산에는 네 개의 노선이 땅 속을 누비고 있고, 다른 도시들에도 지하철과 경전철이 제법 많이 생겼다. 수도권의 대학생들이 강촌이나 대성리로 MT를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경춘선에는 복선전철이 들어섰고, 강촌역은 폐쇄되었다. 나정이 기다리던 조그맣던 신촌역에는 거대한 민자역사가 들어섰고, 사랑스럽던 구 신촌역사(驛舍)는 헐렸다. 문화적 가치, 사회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밀려 순식간에 내팽개쳐진다.

문제 하나 내보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어떻게 베를린에 갔을까? 일제 강점기 여의도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탔을까? 아니다. 그럼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머나먼 유럽 땅으로 갔을까? 아니다. 손기정은 기차를 탔다. 그 당시 조선은 한국과 같은 섬나라가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베이징으로, 베를린으로, 파리로, 모스크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손기정도 서울역에서 703 열차를 타고 베이징과 하얼빈을 거쳐 대륙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장거리 기차여행은 일단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 후에야 어찌해볼 수 있는 이 되었다. “분단은 사람들의 몸만 반도에 가둔 게 아니라 꿈도 가둬 버렸다.”

 

촛불이 막아낸 철도 민영화, 박근혜 정권이 완성하나

우리나라에는 철도 오타쿠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철도 오타쿠와 관련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여기 자칭 철도 오타쿠라고 말하는 한국의 박흥수 철도기관사가 귀중한 책을 하나 냈다. <철도의 눈물>이 그것이다. 명색이 이 꼭지 제목이 불온한 서재인데, 이 책은 전혀 불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온한 생각을 반박하는 내용이 주다.

신자유주의 시대 역대 모든 정부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진행되던 민영화, 정확하게 사유화(Privatization)’ 정책을 박근혜 정부는 완성하려 하고 있다. 촛불이 막아낸 사유화, 이명박이 결국 완수하지 못한 철도 사유화가 곧 결판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국토부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KTX 경쟁 체제 도입을 발표했고 철도사유화 추진은 재개되었다.

핵심은 이렇다. 한국 철도는 포화상태다. 철로는 모자란데, 수요는 많아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KTX 수서-평택 고속연결선이 제시되었다. 그렇게 되면, 기존 서울-금천간 병목현상(고속선+일반선)이 완화되고, 평택에서는 일반선과 연결되며, KTX 열차 투입대수를 늘릴 수 있다. 또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속도 역시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서발 KTX노선을 코레일의 자회사 형태로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땅 짚고 헤엄치기인 알짜배기 흑자노선을 재벌에게 넘겨주면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에 따라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된다. KTX에서의 영업이익은 지방의 적자선들을 보조(교차보조)해주는 중요한 자원이다. 이를 통해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지방선들이 운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서발 KTX이 사유화되면, 기존 서울역발 KTX 수익은 떨어지게 되고, 교차보조 비용은 줄어들게 되며, 지방선의 적자는 가중되고, 결국 지방선은 폐쇄되거나 민영화되고 마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밀양마산진주창원으로 가시는 승객께서는 코레일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고객을 생각하는 저희 수서발 KTX는 일반철도 노선과 연계 운행되지 않습니다.” 2016, 우리는 수서역에서 이런 안내방송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 비극적 시나리오는 국토부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수서발 KTX는 일부 노선으로 한정된 부분적 민영화가 아니라, 한국 철도 민영화 도미노의 가장 첫 번째 블록인 셈이다.

 

철도 민영화로 엄청난 댓가 치른 영국, 그 전철을 그대로 밟겠다고?

이명박 정부는 철도 운영의 핵심중 하나인 관제권을 철도공사에서 철도시설공단으로 넘기려 했다. 그러나 저항이 거세지자 박근혜 정부는 관제권 이관을 수서발 KTX 민영화 이후로 넘긴 상태이다. 또한 철도공사가 관할하는 역과 차량기지 등을 환수해 재벌과 해외자본에 개방하고 넘기려 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2010WTO정부조달협정을 통해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를 외국 자본에 개방했다. 그런데 이미 한국의 사회간접자본의 상당수가 외국자본이 잠식한 상태이다. 얼마 전까지 맥쿼리는 지하철9호선의 2대주주였으며, 지금도 인천공항 고속도로, 인천대교, 서울-춘천 고속도로, 우면산 터널 등의 대주주 또는 운영자이다.

한국의 철도는 전체 길이가 약 3,500km로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의 유기적인 안정성을 이룰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독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마저도 쪼개려고 하고 있다. 한국 철도를 발전시키려면 오히려 네트워크 분리가 아니라 통합적으로 조화롭게 운행하면서 수서발 KTX를 지렛대로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

정부는 코레일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경쟁을 시켜야 하고, 민영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비롯된 생각일까?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민영화의 사례인 영국 철도의 민영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영국판 <철도의 눈물>이 있다. 영국 철도기관사 노조 공보 담당관 앤드루 머리가 쓴 <탈선>은 한국 철도가 맞이할 지도 모르는 파국의 묵시록이다. 이 책은 당시 민주노총 정책부장으로 있던 오건호 박사가 번역했다.

 

<사진: 민주노총 정책부장 시절 오건호 박사가 번역한탈선(앤드루 머리 / 이소출판사 / 20032)

 

영국은 사유화의 폐해를 겪은 후 민간에 매각한 시설 부분을 다시 정부가 인수하면서 재공영화되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연이은 열차사고가 벌어졌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부가 사유화의 혜택을 입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공적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 들어가 주식배당으로 귀결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영국 화물 철도는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되었고, 열차운행은 25, 여객 차량은 3, 선로유지는 3개 기업으로 분리되는 등 총 100여개의 회사로 쪼개졌다. 하청까지 합치면 1,000여개의 기업이 생긴 것이다. 납세자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었고, 도로와의 경쟁에서 철도는 밀렸다. 민영화가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지, 아니면 비효율과 무책임만 양산하는지 영국의 사례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번역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선>이 고발하는 영국 철도 민영화의 폐해는 참고할 만하다.

 

재벌과 정권의 위험한 거래막기 위한 철도노조의 싸움

2013,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철도노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싸움은 국민의 철도, 철도의 공공성을 위한 싸움이다. 또한, 필수인력을 제외한 모든 철도노동자를 2천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벌과 정권의 위험한 거래를 막기 위한 비정규직 예방투쟁이기도 하다. 지난 1023일 노동당 강북당협은 <철도의 눈물>의 저자 박흥수 기관사를 모시고 강연회를 열었다. 강북당협처럼 저자의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입담을 노동당 당원협의회가 쏙쏙 빼먹었으면 좋겠다. 당장 각 당협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철도노조와의 연대에 나서보자! 지하철9호선 환수, 단일요금체계로의 전환, 지하철 운영기관 통합 등 지방선거 공약도 고민해보자! 시장맹신주의자들에게 2015년은 철도민영화 완수의 원년이란다. 자본과 권력이 인간다운 삶을, 공동체적 사회를 탈선시킨다면 우리의 사명은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들의 성공이 우리의 불행이며, 저들의 실패는 우리에겐 행복한 실패이다. 2년 남았다.

 

<더 볼만한 자료>

캔 로치 감독, 영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2001, 영국 철도민영화를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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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용체제론 우리시대 학술연구
정이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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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3년 11월호

 

신자유주의 분절노동시장을 넘어

사회적 노동시장으로

한국고용체제론/ 정이환 / 후마니타스 / 20138/ 17,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 변수는 노동시장

언제부터인가 총선이나 대선과 같이 큰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주요 이슈로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아마도 IMF 이후부터 이러한 현상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듯한데, 이른바 호시절이던 1987~1995년에는 일자리고용안정보다는 임금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 변수는 노동시장의 문제이고, 우리 삶은 일자리’, ‘고용안정성등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불안정 노동의 시대라 하지 않던가.

삶에 대한 노동시장의 규정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대에 정이환 선생의 한국고용체제론은 실천적으로 긴요한 책이다.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린 책이기도 하다. 정이환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고용체제연구자다. 이미 이 분야에 관해 많은 책을 저술한 바 있다. 한국의 제조업 노동시장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한 그의 박사논문 제조업 내부노동시장의 변화와 노사관계(1992)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2006년에는 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을 통해 서구 다른 나라의 노동시장과 우리 노동시장을 비교사회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의 논지는 이번 한국고용체제론에서도 반복해서 주장된다. 또한, 2011년에 출간된 경제위기와 고용체제를 통해서는, 서구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한국과 일본의 고용체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면밀히 검토했다.

 

한국의 고용체제, 신자유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분절적이다

원근법에서 모든 시선이 소실점으로 모이듯이 정이환 선생의 연구의 목적은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밝히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 책은 주로 고용과 노동시장 측면에서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을 해명하려 하며, 이를 고용체제라는 용어로 정리한다. 경영학의 노동시장연구와는 달리 사회학에서는 노동시장을 순수한 경제적 공간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행위자들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체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논지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고용체제는 신자유주의적 분절 고용체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성격분절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성격이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에는 동시에 나타난다. 분명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노동시장 전반에 시장원리가 강하게 관철된 것은 사실이지만, 87년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일정하게 지켜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국의 기업내부노동시장은 전체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제어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지만, 내부자와 외부자의 근로조건에 현저한 격차를 만들어 낼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차 노동시장의 규모도 작고, 중대 기업 노동자 비율도 낮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고용체제의 성격을 드러내는 점인데, 그럼에도 저자는 하도급 관계를 통한 1차 노동시장 부문의 강한 지배력으로 인해 분절 고용체제의 성격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 고용체제를 대륙유럽형이나 북유럽형과는 멀고, (시장규정적인) 미국형과 (기업중심적인) 일본형의 성격이 동시에 나타나는 미국형과 일본형의 혼종형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종성은 단순한 섞임이 아니라, ‘한국형체제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 고용체제의 행위자를 규율하는 작동 원리로 강한 시장 중심성, 기업 중심성(내부노동시장과 재벌체제), 가부장주의, 그리고 기업 내 노사간 각축을 제시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기업 중심성은 한국의 노동시장 분절이 주로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은 1, 2차로만 나뉘어 있지 않고, 기업규모별로 다층화 되어 있고, 기업별로 파편화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근로조건은 고용형태보다 기업 규모가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계급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나

여기서 계급주체 형성을 중심에 놓고 연구하는 또 다른 사회학자 조돈문 선생의 논지를 떠올리게 된다. 조돈문 선생은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매일노동뉴스)이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의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왜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강한 신자유주의 (1,2) 노동시장이라는 참호로 둘러싸인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분절된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현실을 볼 때 일방적 자본지배력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조돈문 선생은 정규직과의 연대의 수준을 가능한 만큼으로 한정하고 비정규직 운동은 장기적 관점에서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요구조건의 완전쟁취보다는 조직의 보전강화에 활동의 방점을 두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는 비정규직 투쟁의 궁극적 목표는 운동주체 형성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볼 때 일견 용감해 보이기도 하고, 타협적으로 보이기도 한 이러한 제안은 척박한 비정규직의 마지막 선택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이환 선생 역시 다른 책에서 분단노동시장이 노동계급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급형성은 단순히 노동시장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시스템이나 구조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한국의 고용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성격분절적 성격을 모두 가진 것이라면, 처방도 두 가지를 공히 겨누어야 하지 않을까? 조직적 자원의 고갈 속에서 반신자유주의 구호만으로는 헛스윙만 날릴 뿐이며, 정규직 노동운동의 방어적 저항만으로는 노동운동의 미래도, 그 자신이 이룩한 과거의 성과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실천적으로 증명됐다. 기업별로 파편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노동조합의 조직적 저항수단 역시 기업별로 파편화되어 있다면 이거야말로 저항의지의 포기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금속산업 내 기업지부의 해소, 그게 어렵다면, 분권화 되었으나 조율되는 교섭패턴과 산업적 기준마련을 통해 산업 내 기업규모별 불평등을 줄이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서 노동조합의 유의미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저자가 제시하는 현재의 한국 고용체제론역시 ‘87년 노동체제와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과도기적 체제일 뿐이다. 당장 노사관계를 통해 노동시장을 급속하게 재편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지금의 노동시장을 재편하기 위한 행위자의 주체적, 구체적 노력은 장기적으로도 필수적이다. 우리 노동운동은 이를 위한 지렛대로 숙련문제임금체계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노동시장의 구축을 위한 단초가 마련되지 않을까 한다.

 

<더 읽을만한 책>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미셸 알버르 / 소학사 / 199310/ 6,000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1,2/ 윤진호 외 / 한울 / 2010, 2012

제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캐쓸린 씰렌, 신원철 역 / 모티브북 / 201112/ 2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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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인터뷰하다 -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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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불온한 서재]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3억의 날갯짓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8월 / 20,000원

 

양솔규 _ 기획실 교육국장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이론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유명하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날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킨다.” 자연과학에서의 하나의 비유가 현실이 되었다.

13억 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이 날갯짓에 전 세계 구석구석은 훈풍이 불기도,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 사회주의의 미래, 인류의 미래, 심지어 지구의 미래까지, 우리는 이 ‘거대한 나비’를 빼놓고는 미래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세기의 재판, 보시라이 사건

2012년에 시작된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은 중국 대륙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충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薄熙來)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보시라이는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공안국장 왕리쥔을 해임하였고, 왕리쥔은 청두 미 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현재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등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보시라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의 성 상납을 받았다느니,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의 관계가 어땠냐느니 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검열과 통제가 심한 중국 언론의 보도가 얼마만큼 진실을 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린뱌오 사건(부주석 린뱌오가 71년 9월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한 사건) 이후 중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스캔들이 아닌가. 다만 이 재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중국과 세계의 미래’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보시라이, 충칭모델, 중국은 어디로?

중국 혁명1세대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특권그룹인 ‘태자당’ 출신인 보시라이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충칭(重庆)시 당서기였다. 그는 2007년 10월, 제17기 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또한 2012년 11월 선출 예정이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한 명에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야말로 중국 권력의 핵심이었다. 보시라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만들어 낸 이른바 ‘충칭모델’이 중국 신좌파들의 노선이었으며, 보시라이는 중국 신좌파들의 정치적 대표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황치판 충칭시장과 함께 국유자산과 시장원리의 창조적인 결합, 혁신적인 토지정책, 도시농촌 통합발전 등 혁신적 정책을 펼쳤고, 농민공들을 위한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과 호구정리 등을 했다. 이러한 ‘충칭모델’은 시장보다는 국가, 성장보다는 분배, 자유주의가 아닌 마오이즘(또는 신좌파)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 아직도 중국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미국의 세계체제론자 아리기는 『베이징의 아담스미스』를 통해 중국이 ‘자본주의화’된 것이 아니라 ‘시장화’가 되었다면서, 이러한 중국의 발전이 서방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틴 하트-렌즈버그는 중국의 계급관계 등을 분석하면서 중국이 사실상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공식적인 규정인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그 어떤 하나의 속성으로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같은 이른바 ‘신좌파의 길’도 있고, 홍콩과 중국의 관계, 마카오와 중국의 관계와 같은 일국양제의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광둥모델’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쨌든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이루어진지도 이미 20년이나 흘렀다. 중국 내부의 변화발전이 거대한 대륙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구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1인의 궤적

지난 달 발간된 창비의 『중국을 인터뷰하다』는 한겨레신문 기자인 박민희와 ILO 분석관 이창휘가 중국의 대표적인 인물 11인을 인터뷰해 엮은 책이다. 이창휘는 80년대 쟁쟁했던 PD의 대표적인 이론가로서 『현실과과학』의 필진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11인 중에는 현대 중국을 움직이는 실천가들이 있다. 예컨대 한둥팡(韓東方)은 철도노동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민주화시위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89년 6월4일 톈안먼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최초의 독립노조인 베이징노동자자치연합회를 만들었다가 투옥과 추방을 겪기도 했다. 그는 현재 홍콩에서 중국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중국노동통신(China Labour Bulletin)’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맑스주의 학술지 <NewLeft Review> (2005.7-8월호)는 그의 삶의 궤적과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가수 쑨헝(孫恒)도 있다. 음악선생이던 그는 98년 베이징으로 상경해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농민공’들을 위한 ‘노동자의집’을 만들고 ‘신노동자극장’을 만들었으며 노동자박물관과 도서관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번안하기도 했고, 중국 노동가요를 작곡하고 있다. 2011년 스물 세 차례 열린 그의 공연에는 9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주고, 권리와 연대 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노래를 통해 ‘사투리의 벽을 넘어’ 대륙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아포 레웅(Apo Leung Po Lam)은 홍콩의 NGO 활동가로 동아시아의 노동자인권단체로 유명한 AMRC의 대표이다. 그는 대륙과는 사뭇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활동을 해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내에서 한때 마오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톈안먼 사건 당시에는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의 100만명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이 책에는 현대 중국을 이끄는 사상가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얼마 전 한국에 역작이 연달아 번역 소개된 첸리췬(錢理群)과 같은 대표적인 중국의 사상가도 있고, 충칭모델을 실천적으로 지지하는 중국 신좌파의 대표적인 지식인 추이즈위안(崔之元)의 인터뷰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개혁개방을 통해 단웨이체제(單位體制)가 해체된 후의 과도기적 시기가 지나고 이제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진단에 있어서는 11명의 입장이 같지는 않다. 예컨대 추이즈위안은 신좌파의 입장에서 충칭모델을 신봉하지만, 첸리췬은 이를 ‘마오시대의 마오주의’라며 그 의미를 폄하하고, ‘광둥모델’에 진정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주체로 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1명의 중국인들은 거대한 대륙에서 일어난 격동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들답게 특유의 ‘낙관주의’를 공히 지니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공통된 태도를 ‘만이불식(慢而不息, 천천히 가되 멈추지 말라!)’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인민과 함께(어떤 의미에서는 마오와 함께) 멈추지 않는 항로를 가는 이들. 이 책의 부제처럼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11명의 인물들은 동시에 새로운 동아시아와 새로운 세계를 이 시간에도 부지런히 만들고 있다.

 

<더 읽을만한 글>

「중국 문화대혁명을 다시 사고한다」/ 백승욱 / 『문화과학』 67, 2011.9

「중국 팍스콘 노동자 연쇄 투신자살과 혼다자동차 파업의 경과 및 주요 쟁점」/ 황경진 /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8(7), 2010.8

「개혁개방 이후 중국 노동정책의 변화」/ 장영석 / 『마르크스주의 연구』 6(3), 20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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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 스페이스 -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마거릿 콘 지음, 장문석 옮김 / 삼천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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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불온한 서재]

 

 

양솔규 (노동당 기획국장)

 

『래디컬 스페이스』/ 마거릿 콘 / 삼천리 / 2013년7월 / 18,000원

 

항시 바쁜 진보정당 당원에게 ‘필독서’가 늘어난다는 것은 재앙이기만 한 일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필독서’가 전설의 ‘무림비서(武林秘書)’라면 얘기는 달라지겠다. 정치학자 마거릿 콘이 쓴 『래디컬 스페이스』는 20세로 넘어가는 시기, 이탈리아에서 건설된 ‘저항의 터전’에 대한 이야기이다. ‘협동조합’과 ‘노동회의소’, 우리말로 ‘민중의 집’이라고 번역되는 ‘민중회관’ 그리고 수많은 ‘상조회’들이 그것이다.

저자는 ‘장소’는 정치에 있어 중요한 분석대상이며, ‘장소’가 사회통제 뿐 아니라, 역으로 변혁적 정치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버마스가 분석한 ‘위계’와 배제의 원리가 관철되는 ‘부르주아 공론장’과는 달리 ‘프롤레타리아적·민중적 공론장’은 집단적 통제권을 향해 자신의 분파들을 통합하면서 저항의 터전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다면 ‘민중적 공론장’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맑스와 그람시는 공장을 저항의 근거지로, 반란자의 생산지로 특권화 시킨다. 반대로 마거릿 콘은 ‘공장’은 경영진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며,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통제하는 정교한 시스템이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공장의 벽’ 바깥에 ‘민중적 공론장’ 즉 선술집과 민중회관, 클럽, 협동조합, 노동회의소를 만들었고, 이곳에서 현장의 경험을 나누고, 그곳에서 동지를 얻으며 새로운 이념을 수용해야만 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농업의 비율이 높았으며, 공장노동보다는 수공업의 비율이 높았다. 초기 저항의 주체도 소수의 공업 노동자가 아니라 수공업자들이나 토지 없는 농민들이었다. 제프 일리도 『the Left』에서 “계급형성의 논리가 마르크스의 예상을 따르지 않았”으며 “농민층 자체가 사라지는 데 한 세기가 걸렸”다고 지적한다. 붉은 벨트(Red Belt)의 핵심지역인 에밀리아-로마냐 지역과 포강 유역은 대부분 농업 지대였고 이태리 사회주의는 농업 프롤레타리아트를 성공적으로 조직했다.

우리는 여기서 ‘공장평의회’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옥중에서 자신의 개념을 발전시킨 그람시를 떠올릴 수 있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하위 집단으로 구성된 ‘대항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역사적 블록’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한정되지 않고, ‘붉은 하위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만남의 네트워크와 공간’이 필요하다. ‘협동조합’과 ‘민중회관’, ‘노동회의소’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부자와 빈자의 권력관계를 변형”시켜 나갔다. “그들은 공장에서는 생산과정의 투입 요소에 불과했으나 ‘협동조합’과 ‘민중회관’에서는 주체로서 세상을 창조”했던 것이다. 다양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자로 상상하는,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이를 토대로 그들은 수많은 자치시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지방자치주의 사회주의’가 꽃피운 것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역설적’으로 ‘붉은’ 에밀리오 로마냐와 토스카나와 같은 지역을 토대로 커 나갔다. 저자는 이를 “급진적인 정치 개혁이 반대 세력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정치개혁’은 충분한 것이었을까? 제프 일리는 『the Left』에서 “강력하고 위협적이지만 실천되지 않은 이태리 사회당의 최대강령주의”와 독일(베를린)과는 달리 수도(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근거지(붉은 벨트)를 지닌 이태리 사회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한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성공적인 계급형성의 ‘진지’로 기능한 ‘민중회관’, ‘협동조합’, ‘노동회의소’는 승리의 필요조건이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았을까? ‘진지전’ 만큼이나 진지하게 ‘기동전’을 실천할 ‘결단’의 용기가 좌파의 ‘고갱이’였던 이태리 사회주의자들에게 결여된 것은 아니었을까? 제프 일리 말대로 “1919~21년 당시 기층반란자들의 열정과 희망은 늘 기존 좌파조직들의 능력을 줄곧 앞질렀”고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머뭇거림이 ‘붉은 2년’을 패배로 이끈 건 아니었나? 어쨌든, 무솔리니는 먼저 ‘결단’했고, 22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검은셔츠단’은 수도 로마로 진격한다.

파시스트들은 노동자들의 ‘진지’를 철저하게 부순다. 토리노 금속 노동조합 지도자 ‘피에트로 페레로’는 노동회의소를 찾아갔다가 파시스트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건물은 불탔으며, 그의 동료 ‘마리오 몬타냐나’는 망명길에 올랐다. 훗날 그는 파르티잔으로 싸웠고 노동회의소를 재건했다. 진지는 파괴되었으나 ‘응축된 화석’은 반파시즘 투쟁의 네트워크를 제공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첫 번째 선거(46년)에서 전체 75석 중 이태리 사회당은 21석, 공산당은 19석을 얻었다. 파시즘 이전 민중 권력이 강력했던 ‘붉은 벨트’ 지역은 현재도 협동조합과 민주주의적 관행이 강력한 지역이다.

우리의 ‘민중의 집’ 운동은 후퇴하는 대중운동의 뒤안길에서 시작하고 있다. ‘공세’보다는 ‘방어’의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탈리아 ‘민중회관’은 ‘공세기’인 80년대 도시산업선교회의 ‘성문밖 교회’, 마산의 ‘카톨릭 여성회관’가 더 어울려 보인다. 과거는 투명한데 미래는 그렇지 못하고, 목적의식적인 것은 늘 어렵다. ‘민중을 위한’에 머물기보다 ‘민중에 의한’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잇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다른 것을 품는’ 데까지 나아가는 데 이 역저가 큰 공헌을 할 것이라 확신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수많은 정치이론과 생생한 이탈리아 투쟁의 역사는 우리의 실천에 구체성을 부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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