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인터뷰하다 -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불온한 서재]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3억의 날갯짓

『중국을 인터뷰하다』/ 이창휘,박민희 엮음 / 창비 / 2013년8월 / 20,000원

 

양솔규 _ 기획실 교육국장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이론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유명하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날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킨다.” 자연과학에서의 하나의 비유가 현실이 되었다.

13억 나비가 날갯짓을 한다. 이 날갯짓에 전 세계 구석구석은 훈풍이 불기도, 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미래, 사회주의의 미래, 인류의 미래, 심지어 지구의 미래까지, 우리는 이 ‘거대한 나비’를 빼놓고는 미래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세기의 재판, 보시라이 사건

2012년에 시작된 ‘보시라이(薄熙來) 사건’은 중국 대륙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충칭시 당서기였던 보시라이(薄熙來)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보시라이는 수사를 지휘하고 있던 공안국장 왕리쥔을 해임하였고, 왕리쥔은 청두 미 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 현재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등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보시라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의 성 상납을 받았다느니,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의 관계가 어땠냐느니 하는 것은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검열과 통제가 심한 중국 언론의 보도가 얼마만큼 진실을 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린뱌오 사건(부주석 린뱌오가 71년 9월 몽골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한 사건) 이후 중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스캔들이 아닌가. 다만 이 재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중국과 세계의 미래’에 미칠 영향 때문이다.

 

보시라이, 충칭모델, 중국은 어디로?

중국 혁명1세대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특권그룹인 ‘태자당’ 출신인 보시라이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 충칭(重庆)시 당서기였다. 그는 2007년 10월, 제17기 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되었다. 또한 2012년 11월 선출 예정이던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한 명에 선출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야말로 중국 권력의 핵심이었다. 보시라이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만들어 낸 이른바 ‘충칭모델’이 중국 신좌파들의 노선이었으며, 보시라이는 중국 신좌파들의 정치적 대표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보시라이는 황치판 충칭시장과 함께 국유자산과 시장원리의 창조적인 결합, 혁신적인 토지정책, 도시농촌 통합발전 등 혁신적 정책을 펼쳤고, 농민공들을 위한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과 호구정리 등을 했다. 이러한 ‘충칭모델’은 시장보다는 국가, 성장보다는 분배, 자유주의가 아닌 마오이즘(또는 신좌파)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 아직도 중국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미국의 세계체제론자 아리기는 『베이징의 아담스미스』를 통해 중국이 ‘자본주의화’된 것이 아니라 ‘시장화’가 되었다면서, 이러한 중국의 발전이 서방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반면 마틴 하트-렌즈버그는 중국의 계급관계 등을 분석하면서 중국이 사실상 자본주의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공식적인 규정인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그 어떤 하나의 속성으로 설명하기에는 상황이 복잡하다. 보시라이의 ‘충칭모델’과 같은 이른바 ‘신좌파의 길’도 있고, 홍콩과 중국의 관계, 마카오와 중국의 관계와 같은 일국양제의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광둥모델’이 존재하기도 한다. 어쨌든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이루어진지도 이미 20년이나 흘렀다. 중국 내부의 변화발전이 거대한 대륙 중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탐구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11인의 궤적

지난 달 발간된 창비의 『중국을 인터뷰하다』는 한겨레신문 기자인 박민희와 ILO 분석관 이창휘가 중국의 대표적인 인물 11인을 인터뷰해 엮은 책이다. 이창휘는 80년대 쟁쟁했던 PD의 대표적인 이론가로서 『현실과과학』의 필진이기도 했다.

이 책에 실린 11인 중에는 현대 중국을 움직이는 실천가들이 있다. 예컨대 한둥팡(韓東方)은 철도노동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민주화시위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89년 6월4일 톈안먼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이후 최초의 독립노조인 베이징노동자자치연합회를 만들었다가 투옥과 추방을 겪기도 했다. 그는 현재 홍콩에서 중국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중국노동통신(China Labour Bulletin)’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맑스주의 학술지 <NewLeft Review> (2005.7-8월호)는 그의 삶의 궤적과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가수 쑨헝(孫恒)도 있다. 음악선생이던 그는 98년 베이징으로 상경해 고된 노동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농민공’들을 위한 ‘노동자의집’을 만들고 ‘신노동자극장’을 만들었으며 노동자박물관과 도서관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번안하기도 했고, 중국 노동가요를 작곡하고 있다. 2011년 스물 세 차례 열린 그의 공연에는 9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심어주고, 권리와 연대 의식을 불러일으키며, 무엇보다 노래를 통해 ‘사투리의 벽을 넘어’ 대륙의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아포 레웅(Apo Leung Po Lam)은 홍콩의 NGO 활동가로 동아시아의 노동자인권단체로 유명한 AMRC의 대표이다. 그는 대륙과는 사뭇 다른 관점과 입장에서 활동을 해왔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 내에서 한때 마오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톈안먼 사건 당시에는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의 100만명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이 책에는 현대 중국을 이끄는 사상가들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얼마 전 한국에 역작이 연달아 번역 소개된 첸리췬(錢理群)과 같은 대표적인 중국의 사상가도 있고, 충칭모델을 실천적으로 지지하는 중국 신좌파의 대표적인 지식인 추이즈위안(崔之元)의 인터뷰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개혁개방을 통해 단웨이체제(單位體制)가 해체된 후의 과도기적 시기가 지나고 이제 새로운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진단에 있어서는 11명의 입장이 같지는 않다. 예컨대 추이즈위안은 신좌파의 입장에서 충칭모델을 신봉하지만, 첸리췬은 이를 ‘마오시대의 마오주의’라며 그 의미를 폄하하고, ‘광둥모델’에 진정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주체로 하는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1명의 중국인들은 거대한 대륙에서 일어난 격동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경험한 이들답게 특유의 ‘낙관주의’를 공히 지니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공통된 태도를 ‘만이불식(慢而不息, 천천히 가되 멈추지 말라!)’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인민과 함께(어떤 의미에서는 마오와 함께) 멈추지 않는 항로를 가는 이들. 이 책의 부제처럼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가고 있는 11명의 인물들은 동시에 새로운 동아시아와 새로운 세계를 이 시간에도 부지런히 만들고 있다.

 

<더 읽을만한 글>

「중국 문화대혁명을 다시 사고한다」/ 백승욱 / 『문화과학』 67, 2011.9

「중국 팍스콘 노동자 연쇄 투신자살과 혼다자동차 파업의 경과 및 주요 쟁점」/ 황경진 /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8(7), 2010.8

「개혁개방 이후 중국 노동정책의 변화」/ 장영석 / 『마르크스주의 연구』 6(3), 200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