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의 눈물 우리시대의 논리 18
박흥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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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3년 12월호

 

[불온한 서재]

 

기차의 눈물닦아줄

행복한 실패를 위하여

 

철도의 눈물/ 박흥수 / 후마니타스 / 201310/ 13,000

탈선/ 앤드루 머리 / 이소출판사 / 20032/ 12,000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강촌역은 폐쇄되고 신촌역에는 민자 역사 들어서

tvN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화제다. 1서울사람편을 보면, ‘삼천포가 난생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겪게 되는 촌놈의 상경기가 그려진다. 기차까지 타고 온 삼천포는 당시 수도권에만 있는 지하철을 못타 헤맨다. 3신인류의 사랑편에서는 주인공 나정이 강촌으로 MT를 가는 장면이 나온다. 4거짓말을 보면 나정이 친구들의 거짓말에 속아 신촌 기차역에서 꿈에도 그리던 농구선수 이상민을 기다린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의 이야기를 보면서 추억 돋는다. 시간은 세상을 많이 바꿔 놨다. 부산지하철 1호선이 완전개통된 해가 94년인데, 현재 부산에는 네 개의 노선이 땅 속을 누비고 있고, 다른 도시들에도 지하철과 경전철이 제법 많이 생겼다. 수도권의 대학생들이 강촌이나 대성리로 MT를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경춘선에는 복선전철이 들어섰고, 강촌역은 폐쇄되었다. 나정이 기다리던 조그맣던 신촌역에는 거대한 민자역사가 들어섰고, 사랑스럽던 구 신촌역사(驛舍)는 헐렸다. 문화적 가치, 사회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밀려 순식간에 내팽개쳐진다.

문제 하나 내보자.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은 어떻게 베를린에 갔을까? 일제 강점기 여의도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탔을까? 아니다. 그럼 부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머나먼 유럽 땅으로 갔을까? 아니다. 손기정은 기차를 탔다. 그 당시 조선은 한국과 같은 섬나라가 아니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면 베이징으로, 베를린으로, 파리로, 모스크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손기정도 서울역에서 703 열차를 타고 베이징과 하얼빈을 거쳐 대륙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런 장거리 기차여행은 일단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 후에야 어찌해볼 수 있는 이 되었다. “분단은 사람들의 몸만 반도에 가둔 게 아니라 꿈도 가둬 버렸다.”

 

촛불이 막아낸 철도 민영화, 박근혜 정권이 완성하나

우리나라에는 철도 오타쿠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철도 오타쿠와 관련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 여기 자칭 철도 오타쿠라고 말하는 한국의 박흥수 철도기관사가 귀중한 책을 하나 냈다. <철도의 눈물>이 그것이다. 명색이 이 꼭지 제목이 불온한 서재인데, 이 책은 전혀 불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불온한 생각을 반박하는 내용이 주다.

신자유주의 시대 역대 모든 정부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진행되던 민영화, 정확하게 사유화(Privatization)’ 정책을 박근혜 정부는 완성하려 하고 있다. 촛불이 막아낸 사유화, 이명박이 결국 완수하지 못한 철도 사유화가 곧 결판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철도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국토부 장관이 임명되자마자 KTX 경쟁 체제 도입을 발표했고 철도사유화 추진은 재개되었다.

핵심은 이렇다. 한국 철도는 포화상태다. 철로는 모자란데, 수요는 많아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 주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서 KTX 수서-평택 고속연결선이 제시되었다. 그렇게 되면, 기존 서울-금천간 병목현상(고속선+일반선)이 완화되고, 평택에서는 일반선과 연결되며, KTX 열차 투입대수를 늘릴 수 있다. 또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의 속도 역시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수서발 KTX노선을 코레일의 자회사 형태로 민영화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땅 짚고 헤엄치기인 알짜배기 흑자노선을 재벌에게 넘겨주면 네트워크 산업의 특성에 따라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된다. KTX에서의 영업이익은 지방의 적자선들을 보조(교차보조)해주는 중요한 자원이다. 이를 통해 적자를 보고 있음에도 지방선들이 운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서발 KTX이 사유화되면, 기존 서울역발 KTX 수익은 떨어지게 되고, 교차보조 비용은 줄어들게 되며, 지방선의 적자는 가중되고, 결국 지방선은 폐쇄되거나 민영화되고 마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 “밀양마산진주창원으로 가시는 승객께서는 코레일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고객을 생각하는 저희 수서발 KTX는 일반철도 노선과 연계 운행되지 않습니다.” 2016, 우리는 수서역에서 이런 안내방송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 비극적 시나리오는 국토부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수서발 KTX는 일부 노선으로 한정된 부분적 민영화가 아니라, 한국 철도 민영화 도미노의 가장 첫 번째 블록인 셈이다.

 

철도 민영화로 엄청난 댓가 치른 영국, 그 전철을 그대로 밟겠다고?

이명박 정부는 철도 운영의 핵심중 하나인 관제권을 철도공사에서 철도시설공단으로 넘기려 했다. 그러나 저항이 거세지자 박근혜 정부는 관제권 이관을 수서발 KTX 민영화 이후로 넘긴 상태이다. 또한 철도공사가 관할하는 역과 차량기지 등을 환수해 재벌과 해외자본에 개방하고 넘기려 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2010WTO정부조달협정을 통해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를 외국 자본에 개방했다. 그런데 이미 한국의 사회간접자본의 상당수가 외국자본이 잠식한 상태이다. 얼마 전까지 맥쿼리는 지하철9호선의 2대주주였으며, 지금도 인천공항 고속도로, 인천대교, 서울-춘천 고속도로, 우면산 터널 등의 대주주 또는 운영자이다.

한국의 철도는 전체 길이가 약 3,500km로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의 유기적인 안정성을 이룰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독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마저도 쪼개려고 하고 있다. 한국 철도를 발전시키려면 오히려 네트워크 분리가 아니라 통합적으로 조화롭게 운행하면서 수서발 KTX를 지렛대로 새롭게 도약해야 한다.

정부는 코레일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경쟁을 시켜야 하고, 민영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어디서 비롯된 생각일까?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민영화의 사례인 영국 철도의 민영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영국판 <철도의 눈물>이 있다. 영국 철도기관사 노조 공보 담당관 앤드루 머리가 쓴 <탈선>은 한국 철도가 맞이할 지도 모르는 파국의 묵시록이다. 이 책은 당시 민주노총 정책부장으로 있던 오건호 박사가 번역했다.

 

<사진: 민주노총 정책부장 시절 오건호 박사가 번역한탈선(앤드루 머리 / 이소출판사 / 20032)

 

영국은 사유화의 폐해를 겪은 후 민간에 매각한 시설 부분을 다시 정부가 인수하면서 재공영화되었다. 하지만 영국 국민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연이은 열차사고가 벌어졌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부가 사유화의 혜택을 입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공적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 들어가 주식배당으로 귀결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영국 화물 철도는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되었고, 열차운행은 25, 여객 차량은 3, 선로유지는 3개 기업으로 분리되는 등 총 100여개의 회사로 쪼개졌다. 하청까지 합치면 1,000여개의 기업이 생긴 것이다. 납세자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었고, 도로와의 경쟁에서 철도는 밀렸다. 민영화가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는지, 아니면 비효율과 무책임만 양산하는지 영국의 사례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번역된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선>이 고발하는 영국 철도 민영화의 폐해는 참고할 만하다.

 

재벌과 정권의 위험한 거래막기 위한 철도노조의 싸움

2013,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한 철도노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싸움은 국민의 철도, 철도의 공공성을 위한 싸움이다. 또한, 필수인력을 제외한 모든 철도노동자를 2천만원짜리 비정규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벌과 정권의 위험한 거래를 막기 위한 비정규직 예방투쟁이기도 하다. 지난 1023일 노동당 강북당협은 <철도의 눈물>의 저자 박흥수 기관사를 모시고 강연회를 열었다. 강북당협처럼 저자의 풍부한 자료와 생생한 입담을 노동당 당원협의회가 쏙쏙 빼먹었으면 좋겠다. 당장 각 당협에서 저자와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철도노조와의 연대에 나서보자! 지하철9호선 환수, 단일요금체계로의 전환, 지하철 운영기관 통합 등 지방선거 공약도 고민해보자! 시장맹신주의자들에게 2015년은 철도민영화 완수의 원년이란다. 자본과 권력이 인간다운 삶을, 공동체적 사회를 탈선시킨다면 우리의 사명은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저들의 성공이 우리의 불행이며, 저들의 실패는 우리에겐 행복한 실패이다. 2년 남았다.

 

<더 볼만한 자료>

캔 로치 감독, 영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2001, 영국 철도민영화를 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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