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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용체제론 ㅣ 우리시대 학술연구
정이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3년 11월호
신자유주의 분절노동시장을 넘어
사회적 노동시장으로
『한국고용체제론』/ 정이환 / 후마니타스 / 2013년8월 / 17,000원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 변수는 노동시장
언제부터인가 총선이나 대선과 같이 큰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주요 이슈로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아마도 IMF 이후부터 이러한 현상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듯한데, 이른바 호시절이던 1987~1995년에는 ‘일자리’나 ‘고용안정’보다는 ‘임금’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신자유주의 시대의 핵심 변수는 노동시장의 문제이고, 우리 삶은 ‘일자리’, ‘고용안정성’ 등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 된다. 그래서 이 시대를 ‘불안정 노동’의 시대라 하지 않던가.
삶에 대한 노동시장의 규정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시대에 정이환 선생의 『한국고용체제론』은 실천적으로 긴요한 책이다. 사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기대하고 기다린 책이기도 하다. 정이환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고용체제’ 연구자다. 이미 이 분야에 관해 많은 책을 저술한 바 있다. 한국의 제조업 노동시장이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한 그의 박사논문 『제조업 내부노동시장의 변화와 노사관계』(1992년)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2006년에는 『현대 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을 통해 서구 다른 나라의 노동시장과 우리 노동시장을 비교사회학적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이 책의 논지는 이번 『한국고용체제론』에서도 반복해서 주장된다. 또한, 2011년에 출간된 『경제위기와 고용체제』를 통해서는, 서구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한국과 일본의 고용체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면밀히 검토했다.
한국의 고용체제, 신자유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분절적이다
원근법에서 모든 시선이 소실점으로 모이듯이 정이환 선생의 연구의 목적은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밝히는 것으로 수렴된다. 이 책은 주로 고용과 노동시장 측면에서 한국 노동체제의 특성을 해명하려 하며, 이를 ‘고용체제’라는 용어로 정리한다. 경영학의 ‘노동시장’ 연구와는 달리 사회학에서는 ‘노동시장’을 순수한 경제적 공간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행위자들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체제’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논지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의 고용체제는 ‘신자유주의적 분절 고용체제’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분절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성격이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에는 동시에 나타난다. 분명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노동시장 전반에 시장원리가 강하게 관철된 것은 사실이지만, 87년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일정하게 지켜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국의 기업내부노동시장은 전체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제어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지만, 내부자와 외부자의 근로조건에 현저한 격차를 만들어 낼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차 노동시장의 규모도 작고, 중대 기업 노동자 비율도 낮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고용체제’의 성격을 드러내는 점인데, 그럼에도 저자는 하도급 관계를 통한 1차 노동시장 부문의 강한 지배력으로 인해 ‘분절 고용체제’의 성격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저자는 비교연구를 통해 한국 고용체제를 대륙유럽형이나 북유럽형과는 멀고, (시장규정적인) 미국형과 (기업중심적인) 일본형의 성격이 동시에 나타나는 ‘미국형과 일본형의 혼종형’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종성’은 단순한 섞임이 아니라, ‘한국형’ 체제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 고용체제의 행위자를 규율하는 작동 원리로 강한 시장 중심성, 기업 중심성(내부노동시장과 재벌체제), 가부장주의, 그리고 ‘기업 내 노사간 각축’을 제시한다. 여기서 얘기하는 기업 중심성은 한국의 ‘노동시장 분절’이 주로 기업내부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은 1차, 2차로만 나뉘어 있지 않고, 기업규모별로 다층화 되어 있고, 기업별로 파편화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근로조건은 ‘고용형태’보다 ‘기업 규모’가 훨씬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계급적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나
여기서 ‘계급주체 형성’을 중심에 놓고 연구하는 또 다른 사회학자 조돈문 선생의 논지를 떠올리게 된다. 조돈문 선생은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매일노동뉴스)이라는 저서를 통해 한국의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왜 실패하는지를 분석한다. 강한 신자유주의 (1차,2차) 노동시장이라는 참호로 둘러싸인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분절된 기업내부노동시장의 현실을 볼 때 일방적 자본지배력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실패하는 것은 어쩌면 이미 예견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조돈문 선생은 정규직과의 연대의 수준을 가능한 만큼으로 한정하고 비정규직 운동은 장기적 관점에서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요구조건의 완전쟁취보다는 ‘조직의 보전강화’에 활동의 방점을 두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는 비정규직 투쟁의 궁극적 목표는 ‘운동주체 형성’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을 볼 때 일견 용감해 보이기도 하고, 타협적으로 보이기도 한 이러한 제안은 척박한 비정규직의 마지막 선택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이환 선생 역시 다른 책에서 분단노동시장이 노동계급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급형성’은 단순히 ‘노동시장’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시스템이나 구조의 힘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한국의 고용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성격’과 ‘분절적 성격’을 모두 가진 것이라면, 처방도 두 가지를 공히 겨누어야 하지 않을까? 조직적 자원의 고갈 속에서 ‘반신자유주의 구호’만으로는 헛스윙만 날릴 뿐이며, 정규직 노동운동의 방어적 저항만으로는 노동운동의 미래도, 그 자신이 이룩한 과거의 성과도 이어나갈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실천적으로 증명됐다. 기업별로 파편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노동조합의 조직적 저항수단 역시 기업별로 파편화되어 있다면 이거야말로 저항의지의 포기가 아닌가. 그런 점에서 금속산업 내 기업지부의 해소, 그게 어렵다면, 분권화 되었으나 조율되는 교섭패턴과 산업적 기준마련을 통해 산업 내 기업규모별 불평등을 줄이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로서 노동조합의 유의미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저자가 제시하는 현재의 ‘한국 고용체제론’ 역시 ‘87년 노동체제’와 마찬가지로 불안정한 과도기적 체제일 뿐이다. 당장 노사관계를 통해 노동시장을 급속하게 재편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지금의 노동시장을 재편하기 위한 행위자의 주체적, 구체적 노력은 장기적으로도 필수적이다. 우리 노동운동은 이를 위한 지렛대로 ‘숙련문제’와 ‘임금체계’를 고민해 봐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하고 풀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노동시장의 구축을 위한 단초가 마련되지 않을까 한다.
<더 읽을만한 책>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미셸 알버르 / 소학사 / 1993년10월 / 6,000원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1,2』/ 윤진호 외 / 한울 / 2010년, 2012년
『제도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캐쓸린 씰렌, 신원철 역 / 모티브북 / 2011년12월 /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