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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도종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다람쥐와 밤을 나눠먹고, 집게벌레, 나방 등 벌레들에게 집을 내주고, 꽃이 너무 예뻐서 출근하기 싫어하고, 우는 새를 걱정하고, 라일락과 민들레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벌이 집을 잃을 것을 걱정해서 벌과 달콤 살벌한 동거를 하는 사람... 도종환 시인이다.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로 유명세를 탄 시인이지만 나는 국회의원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했다. 미디어를 통해서 본 그는 강단있고, 바른말 하고, 차갑고, 강한 이미지 였는데, 글을 통해서 본 그는 다른 사람이였다.

<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에서는 산방에 살면서 자연과 교감을 나누는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꽃과 나무, 곤충, 동물 들을 보면서 떠오를 생각들이 문학적인 표현으로 포장되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처럼 편안함을 주는 책이고, 살면서 느낀 점들과 좋은 시와 글귀를 인용해서 풍성한 책이다.

도종환 작가님은 2년이라는 짧은 신혼생활을 끝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전교조 활동으로 강제로 쫓겨 나기도 하고, 옥살이도 하고, 사회적 인정과 비난을 한 몸으로 받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 그런지 글에도 깊이가 있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 범사에 감사해 하며, 쉽게 노여워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내려 놓은 삶의 자세가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인간의 삶을 초월한 수행자같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시인 도종환이 아닌, 인간 도종환에 대해 많이 알게되었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 깊었던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하면, 산방에 살다보니 꽃과 나무가 많고, 자연스럽게 벌이 모이고 벌집이 생겼다. 지인들은 벌집이 고가이니 팔아라, 벌이 쏠 수 있으니 벌집을 치워라 하지만 도종환 시인은 그냥 둔다. 원래 자신 보다 먼저 산에서 살았던 것이니 벌들도 자신들의 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이런 것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며, 배려라고 생각했다.
나를 돌아봤다. 몇 해 전에 경치 좋은 산속 펜션으로 여행 간 적이 있는데, 벌레가 많은 것을 보고 다시는 산속에 있는 곳에 숙소를 잡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아름답다 한 경치에 이 벌레도 포함 되는 것이였고, 그 곳은 그들이 사는 곳이고, 항상 있는 곳인데, 손님인 내가 가서 주인 행세를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어느날 시간에 쫓겨서 지방에 행사를 가는데, 식사를 하고 가면 지각하고, 식사를 하지 않고 가면 허기질 것 같아서 우동을 시키고 시간이 허락된 만큼만 먹고 남기고 늦지 않게 행사장에 도착한다. 작가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다 먹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구를 탓하지도, 불평하지도 말야한다고 한다. 인생이란 주어진 만큼 살다가 가는 것이고, 허락된 만큼 사는 것이라고 한다. 조금 부족해도 큰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서운해 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가는 불평을 했을 상황인데 마음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법정스님이 떠올랐다.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이 법정스님을 닮아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깊은 사색을 통해 마음의 그릇을 키운 사람들은 닮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삶에 지쳐 힘들때,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질때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모든 것을 달관한 모습을 보면 원망, 좌절, 욕망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차 한잔 같은 마음의 여유를 준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