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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정돈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진실에 투척하겠습니다" 김진명 작가님이 책 첫장에 자필로 쓴 말이다. 정말 멋진 말이고, 정말 필요한 말, 듣고 싶은 말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 민주화 운동, 제주 4,3 사건, 천안함 사건 등 여러 사건이 터졌는데, 어느 누구 하나 진실을 밝히고 않고 있다. 권력 앞에 받을 불이익때문에 앞장서서 밝히고, 끝까지 진실을 찾아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역사를 바로 잡고, 진실에 다가간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반가웠다.

김진명 작가님은 내가 좋아 하는 작가분들중 한 분이다. 20대 초반에『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을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적 상상으로 멋진 작품이 나왔고, 그 안에 숨겨졌던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많이 놀라면서 김진명이라는 이름이 뇌리 깊이 박혔다. 그후, 『천년의 금서』,『글자전쟁』,『고구려』등 여러 작품을 읽었는데, 김진명 작가님의 작품들은 스케일 크고, 스토리 전개가 빠르고, 반전과 극적인 사건들이 많고, 긴박하게 진행되서 몰입도가 높은 책이다. 이번 신작인『예언』역시 나의 기대를 충족하는 책이다.
『예언』은 1983년에 실수로 인해, 항로를 벗어나서 소련 영공을 대한항공 민항기가 날고 있었는데, 소련이 격추해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KAL 007 격추 사건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사건 발생했을때는 나는 막 걷기 시작 했을 때라, 내 기억에는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사회 생활을 오래 했는데, 한 번도 관련된 사건을 들어본 적도, 관련 자료를 본 적도 없어서 부끄러웠고, 그러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왜 자국민이 200명 이상 사망한 이 사건을 알지 못했을까?
냉전 체제와 미국과 소련이 힘 겨루기를 하고 있을때라고는 하지만, 자국민이 소련의 전투기에 격추되었는데, 전두환 정부는 나서서 진상 규명하고, 사과 받고, 원인 규명 및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왜 이 사건을 숨기려 했는지 화가 났다. 그 사건이 난 날의 뉴스에 피격 사건이 도배되는 것이 아닌, 전두환 대통령이 동네 청소하는 모습이 첫 뉴스로 방송을 탔다는 것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련이라는 말도 못하고 제3국의 전투기라고 표현 했다니, 전두환 정부나 여론이나 모두 실망스러웠다.
"도대체 이따위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럼 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란 말이오?"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비겁해야만 하는가 말입니다."
"이게 뭐가 비겁한 거요? 오히려 용감한 행동이지"
"후후, 모여서 고함이나 치고 국기나 불태우는 게 용감한 거라고요? 그게 대한민국이 할 수 있는 다라고요?
"그럼 어떻하겠소? 상대는 소련인데."
"센 놈들이란 뜻인가요? 그럼 약한 놈이 때리면 마주 때려도 센 논이 때리면 얻어맞고 꼼짝하지 말라는 건가요? 놈들이 우리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우리 국민을 죽였는데도 모여서 고함만 치는 게 나라요?
p.115
주인공인 지민은 고아원에서 자라다가, 동생 지현이 미국으로 입양가서 헤어졌다. 그리고, 14년만에 처음으로 동생이 미국에서 대학 들어가서 오빠를 만나겠다고 한국으로 들어오다가 KAL 007 피격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지민은 분노한다. 이 사건에 저항은 커녕 사과도 받지 못한 정부와 전두환에게 분노하고, 전두환을 찾아가서 맹비난을 쏟아 붇는다. 경호원에게 짖밟히고, 얼굴이 찢어지고, 구타가 계속 되지만 전두환을 향해 외친다.
"전두환 이 개새끼야! 힘없고 불쌍한 국민들은 잘 죽이더니 대통령이란 새끼가 우리 국민 수백 명을 죽인 소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해! 네가 그러고도 대통령이야?
국민이 몇백 명이나 죽었는데 대통령이란 놈이 항의하러도 못가! 가다가 죽더라도 모스크바로 날아가 봐.
광주에서 착하고 약한 국민들은 그렇게 많이 처죽이고 로스케놈들한테는 한마디도 못하고 이런 게 대통령이라니! 이런 게 나라냐?"
"이 개새끼야, 국민 수백 명이 죽었는데도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네 상판대기가 9시 뉴스에 제일 먼저 나오게 하는 네가 정말 사람새끼냐!"
p.118
이 장면은 속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이런 일이 이름과 내용만 바뀐 채,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굉장히 중요하고, 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국민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민은 직접 소련으로 가서 KAL 007을 격추 시킨 전투기 조종사를 찾아 죽이려는 계획을 짠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수소문 해도 찾기 어려웠던 그를, 예상하지 못한 곳에 마주친다. 그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그를 마주한 순간 그 역시 상부의 지시에 따르는 나약한 존재이고, 가정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비겁한 가장이라는 사실과 진심을 담은 사과에 몸에 지녔던 총은 무력화 되고, 결국, 총을 겨루지 못한다. 그는 이제 지시를 내렸던 고르바초프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고르바초프를 사살하려 했으나, 삼엄한 경비로 여의치 않게 되었는데, 지민을 뒤에서 도와줬던 문이라는 종교지도자의 주선으로 여러 나라 주요 인물들과 고르바초프를 접견하는 행사에 참가하게 된다. 지민은 용기를 내서 KAL 007 사건 이야기를 꺼내고, 정식으로 왜 격추 했는지 묻고, 사과까지 받아낸다. 그리고, 문은 고르바초프에게 공산주의 출현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이 사건도 누구의 잘못이 아닌 이 공산주의라는 제도 때문이라고 말하며 공산주의 종언을 선언하도록 권유한다.
『예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국가의 역할, 대통령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작가가 결국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진정한 복수란 마음 비워내고, 용서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힘의 논리가 아닌, 불의를 보면 맞서서 저항하고, 역사를 왜곡하지 말고 역사의 진실을 바라 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