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에서 길을 찾다 - 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
강소연 지음 / 시공아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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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예술에 관심은 많으나 배움의 기회가 없다보니 이런 저런 책을 자주 구입하기도 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한다.

몇 달 전 ‘미술에게 말을 걸다’ http://aladin.kr/p/pMYyq를 구입하면서 ‘혼자보는 미술관’ http://aladin.kr/p/PMQh1과 이 책 명화에서 길을 찾다까지 같이 구매하게 되었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와 혼자보는 미술관은 책소개와 목차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이 책은 도서명만 확인하고 자세히 보지 않고 덜컥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생각과는 전혀 다른 책이 나의 손에 닿았다.

 

책을 받고 자세히 살펴보니 매혹적인 우리 불화 속 지혜 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지은이가 강소연 이라는 분이다. 저자가 낯설지 않아 저자소개를 찾아보니 어쩐지 ‘사찰불화 명작강의’ http://aladin.kr/p/yJHmN의 저자이다.

 

사찰불화 명작강의를 읽고서 책에 나왔던 그림들을 직접 보기 위해 여러 사찰들을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는데 이 책은 또 어떤 느낌을 줄 지 궁금해졌다.

유럽 중세시대 그림들이 신화나 성경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서 그렸다면 동양(특히 한, 중, 일)의 그림들은 불교와 관련된 그림이나 조각이거나,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산수화가 많은 걸 보면 사람사는 세상에서 예술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불화를 소개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불경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보충 부교재로 불화를 첨부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사람들이 궁극의 행복과 자유를 열망하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실천적 행위를 하였는지를 불교의 십바라밀의 덕목으로 목차를 설정하고 열가지 이야기 제목으로 구성하였다.

희생, 결심, 정진, 평온, 인내, 욕망, 지혜, 선정, 방편, 자비로 구성된 열가지 이야기는 각 주제마다 희생<안락국태자경변상도>, 결심<지장시왕도>, 정진<수월관음도>, 평온<관경16관변상도>, 인내<심우도>, 욕망<감로도>, 지혜<석가모니팔상도>, 선정<달마도>, 방편<법화경변상도>, 자비<다라니경변상도, 관세음보살32응도>의 작품들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내어주니 책속에 푹 빠져 즐거이 읽을 수 있었다.

다만 정말 많이 아쉬운 것은 책에 소개된 불화들 중 많은 그림이 우리나라에 있지 못하고 일본이나 미국에 보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전 법주사에 갔을 때 팔상전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한바퀴 휘 돌아보고 나왔는데 이 책을 읽었더라면 석가모니팔상도를 제대로 보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들고 지금까지 다녔던 사찰들을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열렬한 신도는 아니지만 불교신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불경하나라도 제대로 공부한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불경을 검색해가면서 구입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입해놓고 아직 시작을 못한 숫타니파타 사경(http://aladin.kr/p/7JJ3S)을 시작할 때가 되었고,  읽다가 중도에 그만두었던 불자로서 산다는 것(http://aladin.kr/p/CGeSW)을 다시 읽을 때가 되었다고 결심한다.

불교에 좀 깊이가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재미있겠지만 전혀 깊이가 없다보니 나오는 용어들을 검색해가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해졌다.

이후 다른 불경공부를 생각해서라도 미리 찾아본다.

○ 부처 : 범어(梵語) Buddha(佛陀)의 약칭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 진리에 도달한 사람의 뜻이고, '여래'라고도 한다. 석가여래·비로자나여래·아미타여래·약사여래·미륵여래등이 있다.

1.[석가모니불]-석가여래(釋迦如來 :Sakyamuni).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한 것으로 사찰에서 대웅전이 있으면 석가모니불을 모셨다고 생각하면 된다.

2.[비로자나불]-비로자나여래(大日如來 :Mahavairocana)

사찰에서 대적광전, 대명광전, 비로전, 화엄전이 있다면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였다고 보면 되는데 비로자나부처님의 수인은 오른손으로 세운 왼손의 검지를 감싸쥔 지권인(智券印)으로 이것은 이(理)와 지(智), 중생(衆生)과 부처(佛), 어리석음(迷)와 깨달음(悟)이 본래 하나라는 의미를 상징한다

3.[아미타불]-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Amitayus,Amitabha)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서방극락정토로 왕생케하는 부처님으로 무량수전, 수광전, 극락전, 미타전, 아미타전에 모셔져있다.

4.[약사여래불]-약사여래(藥師如來 :Bhaisajyaguru-vaiduryaprabharaja)

모든 질병과 무지의 병까지 고쳐주는 부처로 이 불상이 안치된 불전을 약사전(藥師殿)이라고 한다. 대게 왼손에 약병이나 약합, 약단지(무가주)를 들고 있고 오른손으로는 삼계인을 짓고 있다.

5.[미륵불]-(彌勒佛)

도솔천이라는 하늘 나라에서 보살로 있으면서 56억 7천만년 뒤에 이 세상에 나타나 못다 구제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불로 미륵전에 있다.

○ 보살 : 보살(菩薩) 범어 Bodhi-Sattva(보리살타 : 菩提薩)의 약칭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는 동시에 부처의 자비행(慈悲行)을 실천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자 노력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을 의미한다. 보살은 귀하고 자비로운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몸에 많은 장식을 한 여성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몸에는 하늘을 날 수 있는 천의(天衣)를 걸치며 목걸이·귀걸이·팔찌·영락 등의 장신구와 손에는 연꽃·정병(淨甁)·법륜(法輪)·구슬 등을 들었고 얼굴은 아름답고 온화하다

1. [관음보살]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하는 보살. 관음보살이 봉안된 불전을 관음전(觀音殿) 또는 원통전(圓通殿)이라 함.

2. [문수보살·보현보살]

대승불교에서의 보살의 실천적 특성이 강조된 보살이다. 문수보살은 반야의 가르침을 선양하는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상징하는데 손에 여의주나 칼, 청련화(靑蓮花)를 들거나 청사자를 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보현보살은 그 공덕을 여러 곳에 골고루 나타내는 행(行)의 보살로서 흔히 부처님의 행원을 상징한다. 흔히 연꽃을 들고, 사자나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3. [대세지보살]

극락세계의 보처보살(補處菩薩)로서 관음과 함께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나타나는데, 보관에 보병(寶甁)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4. [지장보살]

대지(大地)의 덕을 의인화한 보살로 지장전(地藏殿)·명부전(冥府殿)에 봉안되어 있다.

시왕전(十王殿)등의 이름으로 명칭하는데 손에 육환장이라는 주장자를 들고 계신다.

지장전은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전각이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지옥중생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협시인 도명존자 및 무독귀왕 이외에도 염라대왕을 위시한 지옥의 시왕상(十王像)을 봉안하고 있어 명부전(冥府殿)이라 더 많이 불린다. 지옥시왕(地獄十王)은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사후세계의 지배자인 야마왕이 불교에 들어와 지옥을 다스리는 염마왕이 되었다.

그것이 중국의 도교 영향을 받아 10가지 지옥과 그곳의 왕을 설하는 시왕사상으로 발전하면서 오히려 시왕 중에 한 분으로 변모하였다. 시왕의 각 명호는 진광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태왕,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 등이다.

○ 십바라밀 : '바라밀'이란 대승불교의 보살이 중생과 함께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 수행하는 열가지 실천 덕목이다. '바라밀'은 범어로 'Paramita'의 음역으로 '바라밀다(波羅密多)'라고도 쓰고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도(度)라 번역한다. 그 뜻은 저언덕(Param)에 이른 상태(ita)라고 하며 완전히 이룬(完成) 것이라고도 한다. 끝없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현실의 중생세계와는 반대로 사랑과 지혜로 가득찬 깨달음의 세계를 바로 저언덕(彼岸)이라고 한다.

1.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

몸과 마음으로 남에게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이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며(財施),어리석은 사람에게 법을 베풀며(法施),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無畏施)것이다. 이와 같은 3가지 행이 보시의 근본이 된다.

2.지계바라밀(特戒波羅密)

인간의 생활 규범 즉 윤리적 덕목으로 戒는 특히 생사해(生死海)를 건너는 묘한 법이므로 지계바라밀이라 한다.

3.인욕바라밀(認辱波羅密)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혀서 물질적으로는 내핍을 정신적으로는 자기의 모든 욕망이나 욕구를 참고 이기는 것을 인욕이라 한다.

4.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

끊임없는 노력이다. 참기 어려움을 참고 어려운 일을 행하되 조금도 쉼이 없이 꾸준이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5.선정바라밀(禪定波羅密)

진리를 바르게 사유하며 조용히 생각하여 마음을 한곳에 모아 산란치 않게 한다는 것은 즉 삼매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의식을 모두 초월하여 순수하고 안정된 경계에 몰입하는 것을 선정이라고 한다.

6.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

'혜(慧)', '명(明)', '지혜(知慧)'라 번역하며, 이 지혜는 선정에 의하여 얻어지는 과덕(果德)이다. 모든 것을 사량분별하는 통속적 지혜가 아니라 선정에 의해 얻어지는 직관지(直觀智)를 두고 하는 말이며 그것은 결코 듣고 배워서 얻어지는 지혜와는 판이하다. '법의 실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로 이 '반야'를 얻어야만 성불하며, '반야를 얻는 이'는 부처님이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 또는 어머니'라 일컬으며, 또 이는 '법의 여실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 절대,무념, '무분별지(無分別智)'가 바로 그것이다.

'무분별지'란 생각해서 판단되는 것은 아니며 그냥 갖추어져 있는 본래의 지혜이다. 이것은 '반야의 지혜'라 하며, 이는 반드시 상대 차별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7.방편바라밀(方便波羅密)

수단과 방법을 말하는데 보살이 방편으로 여러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제도하는 일로 여기에는 6바라밀의 행에 의하여 모든 선근(善根)을 중생들에게 돌려주어 저들과 함께 위없는 보리 (菩시)를 구하는 회향방편선교(廻向方便善巧)가 있다.

8. 원바라밀(願波羅密)

보살행의 근본이 되는 서원이며 모든 보살행에서 물러섬이 없이 부지런히 그리고 그 서원을 굳세게 실천해 가기 위해서 가지는 보살의 바램이다. 따라서 보살의 바램이란 큰 마음의 실천 즉 중생 제도의 바램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또 이것의 성취를 위하여 발하는 끊임없는 서원을 말한다.

9.역바라밀(力波羅密)

보살의 선정에 들기 위해 갖추는 힘이다. 잡념이나 망상에 휘말리지 않고 악마의 유혹에도 능히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을 말한다.

10.지바라밀(智波羅密)

모든 사상과 도리에 대하여 분별 판단하는 것, 즉 만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아는 지혜는 생사윤회하는 이 언덕(此岸)을 지나서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배가 되므로 '지바라밀'이다.

○ 반야 : 일반적 판단능력인 분별지혜가 아니라 깨달음을 통해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의미하는 불교교리이다.

범어로는 프라즈나(prajna)이며,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를 말한다.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分別智, vijnana)와 구별짓기 위하여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며, 달리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도 한다. 이 반야의 사상은 대승불교에서 확립된 것이다.

○ 다라니 : 지혜나 삼매 또는 산스크리트어 음을 번역 없이 외우는 진언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대승 소승의 승(乘)은 수레라는 뜻으로, 고통과 어리석음의 사바세계에서 중생을 깨달음의 피안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에 부처님 말씀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경향이 생김에 따라 이와는 달리 보살도를 주창하며 부처님의 근본정신에 돌아가고자 하는 불교가 발달한다. 후자의 불교는 자신들이 믿는 교법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대승이라 부르고, 전자를 낮추어 소승이라 부른다. 대승이란 큰 수레로, 온갖 중생을 모두 태워 피안으로 이르게 하는 교법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소승이 대승교리의 기초가 되고 있으므로 근본사상은 같이 하고 있지만, 대개 소승은 자기 한 사람만의 해탈을 목적으로 삼는 데 비하여, 대승은 자기와 타인의 이로움을 함께 추구하는 보살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승이 개인적 수행과 해탈을 주장하는 데 비해, 대승은 사회적 대중적 이타행을 중요시합니다. 또한 소승이 현실적 고통을 발판으로 하여 그것의 극복과 해탈의 과정을 밟는 데 비하면, 대승은 우리 본성의 이미 깨달은 성품 자체에 믿음을 두고 출발합니다. 깨달음의 진리에서는 자타가 둘이 아님을 보고, 개인과 국토를 함께 성숙시킨다는 입장이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소승은 인간의 미혹에서 출발하고, 대승은 깨달음과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주로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등 남방국에 전해진 불교는 소승 쪽이고, 우리나라 중국 일본 티벳 등 북방국에 전해진 불교는 대승에 속합니다.

요즘은 소승불교라하지 않고 원시불교라 부른다고 합니다.

출처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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