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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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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출판사 사전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정세랑 작가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에 실린 단편들 중 하나, "이혼 세일"을 받아 읽고 적은 글입니다-



  지금까지 읽어 본 정세랑 작품 속 인물들은 참 담백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독자인 내게 자기 속을 완전히 까뒤집어 보여주지는 않는 듯한 느낌. 그래서 작중 인물이 어떤 역경을 겪고 있든 나는 그 감정의 진창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을 수 있었고, 설령 그 안에 잠시나마 발을 담그게 되었다 한들 빠져나오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개는 경쾌한 톤으로 끝났기 때문에 더욱, 읽고 나서도 마음이 짓눌려 힘들다기 보다는 한때 친했지만 이제는 멀어진 오랜 친구를 응원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작중 인물들의 행복을 빌게 되고는 했다.

  이혼 세일의 주인공 이재도 비슷하게 담백한 느낌을 준다. 이재는 워낙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친구다. 상처가 됐을 법한 일도 대수롭지 않은 투로 넘기며 오히려 친구를 위로해줄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겐 없는 탁월함을 가진 친구.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듯했던 이재가 갑작스럽게 이혼 소식을 전하며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가라지 세일처럼 '이혼 세일'을 연다. 친구들은 각자 이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이혼 세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혼 세일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예의 '정세랑 소설'들처럼 가뿐하게 손 탁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엔딩인데, 이번엔 좀 다르다. 주인공 이재는 그다지 전면에 드러나지도 않아 어떤 인물인지 짐작만 하게 되는데도, 어째 이 이재의 결정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담담하게 탁 털고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기까지 이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절망과 용기가 필요했을까. 모든 걸 다 결정한 후 그제야 친구들에게도 밝혔을 정도로 홀로 단단한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이재는 무엇을, 이재는 왜. 예전처럼, 분명 나는 이재의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이번엔 어째 읽고 난 후 점점 더 그 결정의 무게를 가늠해보게 된다. 

  굉장히 짧은 이야기인데, 생각해 볼 지점이 많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눠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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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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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같이 매사 쉽게 비관해버리는 사람에게도 실낱 같은 희망과 멈추지 않을 용기를 주는 책. 왜 나는 이제껏 알지 못했나 슬프고 분해서 눈물이 났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과거와 접속하고, 현재를 직시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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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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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에야 그렇게 나를 고갈시켜가며 일하기 싫은 마음이 더 크지만, 어쩌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가 싶다. 고갈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채우고 배워야 하니까. 카피라이터이면서, 나처럼 남자 이름을 가진 여자인 저자 김민철은 구석구석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쉽게 쓴 책이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대단한 인사이트는 없지만, 읽는 내내 나도 더 읽고 더 듣고 더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 많이 써보고 읽어보고 해봐야지. 뭐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내 어딘가엔 그런 경험들이 촘촘히 기록으로 남을 테니. 


그래서 방금 만년필을 질렀다...???!?!?!


결론은 지름의 합리화.ㅋㅋㅋ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 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중국의 시

자신의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깨어 있으면서 결국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한 시지프의 공간이 바로 지중해였던 것이다. (86-87)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모든 선택의 결과물인 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 선택들이니까. (91-92)

음악과 나 사이에 생긴 결정적 순간은 평생 그 음악에 달라붙는다. 떨어지지 않는다. 더 강렬한 경험이 와도 처음의 그 경험은 지워지지 않는다. (119)

다만, 여행할 때 우리의 귀는 다른 식으로 열린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라면 지나쳐버렸을 어떤 음악이 평생 간직하고 싶은 행운으로 느껴지고, 평소라면 발걸음을 재촉했을 연주자 앞에서 기꺼이 눈물을 흘려버린다. (130)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130)

여리고 미숙하거나
닳고 바래거나
모든 나이에는
그 나름의 색깔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색깔이 있다. (184)

그러니 나에게 `배운다`는 말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장밋빛 현재를 위한 말이 된다.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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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언니 부자특강 - 평범한 월급쟁이 부자되는 공식
유수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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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라면 학을 떼는 나에게도 이 책은 꽤나 재미있었다. 결혼하고 돈 관리에 관심이 부쩍 늘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정말 쉽게 쓰인데다가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소비는 심리라는 얘기, 또 가슴뛰는 일을 찾다가 가슴만 타들어간다는 얘기는 평소 종종 생각했던 부분이라 깊이 공감했다. 스스로를 '부자언니'라고 칭하며 시종일관 이 언니 말을 들어라 언니가 알려줄게 하는 것이 처음엔 심기에 거슬릴 수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 '언니'라는 사람이 이뤄놓은 부가 만만한 게 아니라서..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언니 말에 집중하고 있더라. 실상은 본인 브랜드가치를 올려 사업체 고객을 더 모집하고 수입을 더 올리려는 의도에서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숨겨진 속내야 어쨌든 적어도 표면상 이 책에서 '언니'는 정말로 친한 동생에게 하듯 자상하고 때론 날카로운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읽다보면 어느새 '어머어머 맞아요 언니' 하며 끄덕이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선 호기심에 언니의 재무컨설팅 업체 홈페이지에도 방문해보고, 이 언니가 운영한다는 카페에도 가입했다. 결국 고객이 되어야 카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걸 보고 금세 흥미를 잃긴 했지만, 생전 재무설계가 뭔지도 모르다가 이 책만 보고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 같더라. 다 읽고서 동생에게 이 책 사진을 보내줬다, '이건 니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돈은 많았으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 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른다면 이 책을 읽고 마음의 준비부터 차근차근 해나가길 추천한다. 물론 실천은 본인 몫이다.

이미 우리 부부는 담당 재무설계사가 있는지라 이 책을 통해 '언니'와 인연이 닿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침 우리 설계사님과 주식 공부를 시작하려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된 건 시기가 참 잘 맞았다. 막연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투자에 좀 더 친근해질 수 있었고, 사례들 속 구체적 금액을 통해 동기부여까지 더 되었다. 부자언니의 추천 독서 목록도 곳곳에 포진해 있어 공부할 마음이 자연스레 생김. 다음 목표는 장하준이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책에도 나오듯,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이 아니다. 속물적인가? 그게 뭐 어떤가! 부자가 되고 싶다. 아니, 될 것이다. 이 글은 독후감이자, 앞으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게으른 부자는 없다.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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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대형판)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6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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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이성 친구'에 대한 삽화와 짧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단편 그림책'이라고 해도 되겠다.


각 이야기가 너무 짧으니, 밑줄로 기록하기보단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두 편을 필사해 둔다.




1.


세상에,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사랑에 빠져 있었을까. 세상에,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서로를 믿었을까. 세상에,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멍청했을까. 사랑에 빠지면 다들 그렇게 멍청해 지는 건지. 우리는 온갖 놀이를 하며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다. 당시에 내가 가장 재미있어 하던 놀이는 이런 것이다. 못생겼거나 그저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 봐, 당신이 나를 만나는 바람에 놓쳐 버린 사람이야.> 그러나 그 놀이에는 한 가지 방해 요인이 있었다. 용모가 지나치게 수려한 남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런 경우에 나는 즉시 그 놀이를 중단했고,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완벽하고 섬세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신중하다는 그 점 때문에 불안을 느끼곤 했다. (24)


어느 노천카페의 녹색 차양 아래, 눈을 지그시 감고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커플이 앉아 있다. 남자는 다리를 꼬았고, 한쪽 팔을 옆에 앉은 여자의 어깨 뒤로 둘렀다. 옷차림이나 장신구도 제법 여유있어 보인다. 이들이 바라보는 반대편에는 시장통처럼 사람이 우글우글하다. 바쁜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둘만의 여유를, 놀이를 즐길 줄 아는 커플. 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실은 남자의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그들 관계의 종결을 암시하는 듯하다. 여유를 과시하는 듯한 남자의 앉은 자세도 어쩌면 자기보다 훨씬 나은 상대방을 놓치기 싫어 부리는 허세였는지도.




2.


 우리의 행복은 우주처럼 한이 없었다. 우리는 그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큰 소리로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누구에게 알리지? 우리 친구들 가운데 그 행복의 깊이를 헤아릴 줄 알고 그것의 찬양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생각한 우리는 그 행복을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보기로 했다. 나는 우리의 행복을 주제로 몇 쪽에 달하는 글을 썼다. 그녀는 그 글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로르는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나를 완전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는 크나큰 의혹을 품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36)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개미가 더듬이를 맞대 의사소통을 하듯 사람도 번잡한 말 대신 텔레파시처럼 즉시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순간적인 접촉만으로 모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면... 말은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글은 좀 덜하지만 마찬가지. 커뮤니케이션이란 피곤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개미들처럼 화학적으로 하나가 되는 듯한 소통을 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남편과의 대화가 그나마 가장 그것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 그래도 말로도 글로도 심지어 그림으로도 공유할 수 없는 각자만의 영역이 있을 수밖에. 굳이 억지로 나를 전부 알리려 할 필요도, 반대로 상대를 속속들이 알 필요도 없다는 걸, 우리는 부부이지만 결국엔 남이라는 걸,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한 번 되새겼다.



3.


이 책은 어제 시댁에 들렀다가 가져온 것이다. 남편의 총각 시절 방에는 책꽂이가 부족할 만큼 책이 많다. 구경을 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책, 읽고 싶은 책들을 몇 권 골랐고,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딱히 장 자끄 상뻬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저 책이 얇아서, 출퇴근길에 후루룩 읽기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오늘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다 읽어 치웠다.


책날개를 넘기고 이어 색지 두 장을 넘기자 오른쪽 귀퉁이에 이런 게 써 있다:

"2004년 8월 12일

@@로부터"


8월 12일은 남편의 생일이다.



연필로 휘릭 갈겨쓴 필체는 분명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름이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처음엔 좀 헷갈렸지만 이내 알아냈다, 이 글씨체는 남편의 글씨체라는 것을...

하긴 남자에게 생일 선물로 이름을 적어 책을 선물하는 (이성애자)남자가 흔하진 않을 터... 게다가 책 제목은 "속 깊은 이성 친구"이니 이건 빼박캔트 구여친 유물이다ㅠㅠㅠㅠ 내가 내 손으로 이런 걸 발굴해오다니 나참. 비상금 끼워둔 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4.


남편은 회사 직원들이랑 "팀워크를 다진다"더니만 방금 직원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취해서 모셔다 드리는 중이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이런 전화를 받게 될 줄이야. 내가 이 책을 발굴해낸 걸 알기나 알까...


굳이 말하진 않을 생각이다. 그치만 책은 잘 보이는 곳에 꺼내둬야지.


꿀물이나 타놔야겠다.  (201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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